앞서가는 사람들/정용진 시인/코리안 저널
2014.10.12 22:40
앞서가는 사람들/정용진 시인/코리안 저널
"나는 인생의 밭을 가는 허름한 농부"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우리 내외는 돋보기를 걸치고 마주앉아 손에 박힌 장미가시를 빼내주며 서로를 위로하지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고요”로스엔젤스에서 하이웨이 5번을 타고 남쪽으로 2시간 정도 내려가다 보면 샌디에고 조금 못 미쳐 훨부룩(Fallbrook)이란 조그만 도시가 나온다. 보석처럼 푸르른 태평양해(海)와 구비구비 흐르는 계곡의 시냇물, 나지막한 구릉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대 가경(佳景)을 이루는 이 전원도시엔 장미농장을 가꾸며 영혼(靈魂)의 시(詩)를 쓰는 시인(詩人)이 살고 있다. 정용진 시인.. 20에이커가 넘는 광활한 산등성 평지 위에 2에이커의 그린하우스를 지어놓고 장미를 기르는 그를, 흔히들 장미시인이라 부른다. 노란 장미, 흰 장미, 분홍 장미, 붉은 장미, 보라색 장미, 레이디 다이애나 장미..... 6만여주(그루)의 장미나무에서 각양각색의 색깔과 향기로 피어나는 꽃들은 주인이 짓는 영혼의 노래를 들으며 꽃 봉우리를 맺는다.
영혼을 노래하는 장미시인
‘잠든 영혼이 눈을 뜨는/ 이른 아침/ 장미의 뜨락을 거닐면/ 소록소록/ 마음을 열며/ 피어오르는 사랑의 숨결/ 더러는/ 눈길로 말하고/ 더러는/ 향기로 부르며/ 삶의 진실과 번뇌를/ 고백하는/ 여신의 숲엔/ 생명의 늪으로 빨려드는/ 무수한 영혼의/ 빛과 소리들....../ (시 장미 밭에서의 일부, 정용진 지음)' 그의 시(詩)가 말하듯 그는 장미를 기르며 삶의 소중함과 영혼의 신비를 깨닫는다고 한다. "이른 아침 온실에 들어서면 밤새 이슬을 머금은 장미꽃들이 함초롬히 나를 맞아주는데 그처럼 아름답고 싱그러울 수가 없어요. 농원을 가꾸다가 어렵고 고달픈 일이 생겨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마음속에 쌓여있던 고통과 번뇌가 일순 사라지는 듯 한 느낌을 갖게 되지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다 그렇겠지만 장미를 통해서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거든요.” 시인의 눈으로 보아설까. 그는 꽃들도 인간과 닮은 면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 속에 생노병사와 희로애락이 있듯이 꽃들에게도 삶과 죽음, 희열과 고통이 있어요. 똑같은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었는데도 곧은 가지 위에 당당하게 뽐내며 피어있는 꽃이 있는가하면 가지가 휘고 꺾여 보기 흉한 꽃도 있고, 매혹적인 향기를 발산하며 유혹하는 꽃이 있는가하면 종이꽃처럼 무향무취해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꽃도 있지요. 이런 꽃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을 생각하게 돼요. 우리의 삶에도 결코 플러스만의 인생이나 마이너스만의 인생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삶의 철학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집념으로 일군 장미농원
정 시인이 훨부룩에 에덴 장미농장(Eden Rose Farms)의 간판을 세운지는 20여년 전의 일이다. 경기도 여주농고와 성균관대학 법대를 졸업한 그는 71년 미국으로 유학 왔다. 한국에서는 법관이 될 작정으로 법대에 들어갔으나 미국에 유학 와선 우드버리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대학수업 후엔 잠시 그로서리 사업을 하다가 로스엔젤스 근처 온타리오에 30에이커의 채소밭을 일구고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배추, 무, 열무, 고추 등의 채소를 재배했다. 그 때가 1977년.. 채소 기르는 재미는 꽤 솔솔 했다. 학창시절에 배운 농업기술을 살려 캘리포니아 사막 땅을 옥토전(沃土田)으로 개발해서 품질 좋은 채소를 길렀고 수확도 좋았다. 한 때는 그로서리점마다 서로 그가 재배한 채소를 원해서 공급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 댱 시는 일본인들이 재배한 왜무만 있을 분 한국인들의 이민이 늘어나는데 한국 채소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한국 농장 이었다. 하지만 호시절도 잠시.. 장사가 잘되자 너도나도 채소밭을 경작하는 바람에 한인들끼리 경쟁이 붙었다. 같은 민족인 한인들과 경쟁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5년 가까이 운영하던 채소 농장을 처분하고 장미 밭이 있는 아름다운 훨부룩에 이사했다. “83년도에 왔는데 전(前)주인인 미국인이 취미로 하고 있던 장미 밭을 샀기 때문에 처음에 시작할 때는 농장이 조그마했지요. 집사람과 함께 대여섯 명의 일꾼을 데리고 열심히 일궜어요.” 부부가 억척으로 일한 결과 장미나무는 6만주로 불게 되고 고용인도 열다섯 명이나 되는 대 농장으로 불어나서 인근 농장주들을 놀래켰다. 놀고 있는 땅에는 대추나무, 단감나무(700주), 후지사과나무 등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과실수를 심어 과수원을 만들었고 무궁화도 기르며 고국에의 향수를 달랬다. "사람들은 장미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즐기지만 척박한 땅을 거두어 나무를 심고 풍성하게 꽃을 피우게 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아요. 장미는 기온과 병충해에 민감해서 손이 많이 가거든요. 원래 노동이란 것이 다 힘들지만 원예는 무척 힘들어요. 책도 많이 읽어야 되고 지식과 경험도 많이 쌓아야 되지요.”집에서 나무를 길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야생목이 아닌 장미와 같은 꽃나무를 가꾸는 일은 만만치 않다. 간혹 나무든 채소든 무엇을 심어도 풍성한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그린썸(greem thumb)을 주위에서 볼 수 있지만 어디 아무나 그린썸이 되랴. 그들도 그만큼 신경을 써주고 정성을 쏟아주기에 그린썸이 되는 것이다. 정 시인의 장미농장은 최신식 첨단시설을 갖춘 농장이다. 환경에 민감한 장미를 위해 통풍장치가 설치되었고 온실 내부는 항상 섭씨 15도 정도로 유지시켜 준다.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스프링클러가 물도 뿌려주고 해충약도 뿌려준다. 거름을 주고 가지를 쳐주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꽃이 알맞게 꽃 봉우리를 맺으면 가지를 잘라 한데 묶어서 화매 조합에 넘겨준다. 장미가지를 자를 때 가끔 사나운 가시에 찔릴 때도 있지만 정 시인과 연세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그의 부인 정선옥 여사는 여직 기쁜 마음으로 농원을 가꿔왔다. "장미는 사랑의 꽃이 아닙니까. 발렌타인 데이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날에 연인이나 남편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팔에 안겨주는 꽃이 장미이고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결혼식의 신부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꽃이 장미입니다. 우리가 정성들여 재배한 꽃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는 생각을 하면 고생은 되더라도 기쁘지 않을 수 없어요.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우리 내외는 돋보기를 걸치고 마주앉아 손에 박힌 장미가시를 빼내주며 서로를 위로하지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고요.” 에덴 장미농장을 경영하면서 그는 조상이 다른 여러 민족의 사람들과 교류를 맺어왔다. 그가 본 민족성을 살펴보면 꽤 흥미 있다. 조그만 질문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실히 대답해주는 네델란드인, 오전엔 자기 농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남의 농장 일을 도와주는 덴마크인, 이웃에 경사가 났을 때면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기뻐해주는 그리스인, 농기구와 부속품을 꼭 일본제만 사용하는 일본인들..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일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3650송이의 장미꽃을 사간 미국인이라고 한다.
시인과 농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장미 밭을 가꾸고 전날 잘라 묶어놓은 꽃들을 칼스베드 꽃시장에 배달하는 일을 매일하면서 이러한 사소한 일상의 하나하나는 시로 승화되어 뭇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킨다. "육신으론 농사를 짓고 영혼으론 시를 쓰는 셈이지요. 몸은 피곤해도 일을 끝마치고 책상 앞에 앉으면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안정돼요. 하루 종일 꽃과 씨름하며 꽃의 아름다움에 묻혀 살다보면 사람의 마음도 저절로 아름답게 변화되는가 봐요. 왜 사랑과 고독과 죽음을 노래하던 시인 릴케도 장미를 좋아했다지 않아요. 사랑하던 여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려고 가지를 자르다가 가시에 찔린 화농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자신을 ‘인생의 밭을 가는 허름한 농부’라고 표현하는 그는 최근에 ‘시인과 농부’라는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이미 81년에 시집‘강마을’과 뒤를 이어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를 펴냈고, 89년에 에세이집으로‘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재미작가 9인 에세이'를 펴냈기에 이번 에세이집은 6번째의 책이 된다. 그와 의형제를 맺은 시인 고은 선생이 ‘시인과 농부’ 서평에서 그의 시 세계와 에세이의 주제는 자연, 산, 시대에의 성실한 귀의와 인간 옹호이다’라고 평했듯 그의 시는 대부분 꽃, 바람, 바다, 섬 등 자연을 주제로 노래한 목가적 서정시이다. 과학문명, 물질문명에 짓눌려 정서가 메말라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속을 가다듬어주고 다독여주고 정화시켜주는 따뜻한 시들이다. 하지만 서정시를 쓰는 그가 지난날 유신정권에 대항에서 싸우던 사회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진종일/ 삶의 밭에서/ 불의를 가려내 듯/ 잡초를 추리다가/ 땀 솟은 얼굴을 들어 저문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영원의 기쁨/.....’ 밭에서 잡초를 추리듯 피안(彼岸)에서 불의를 가려내는 저항 운동가였던 그는 오는 2003년 한인이민 백주년을 맞이하여 ‘한얼의 횃불을 들며’라는 시를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의 서시로 발표했다. ...../님들은 민족의 얼이 십니다 민족의 힘이 십니다 민족의 뿌리 이십니다 그 기쁨 그 감격 그 영광을 이민 백년을 맞는 오늘 님들게 드리나니 기뻐하시옵소서...../
내게 이런 자녀를
‘내게 이런 자녀를 주시옵소서'라는 멕아더장군의 기도문을 좋아하는 그는 자식농사에도 정성을 쏟았다. 큰아들 지신(知新.제임스)씨는 UC어바인을 나와 미국경제신문인 ‘비지네스 와이어'의 수퍼바이저로 있고, 그의 부인도 워싱턴 디씨에서 명문 콜게이트 사립대를 나와 다른 미국 경제신문사 수퍼바이저로 있다. 작은 아들인 지민(知民.조셉)씨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월튼 비지네스 스쿨과 유펜 컴퓨터 싸이언스를 나와 이베이 프러덕트 매니저를 거처 지금은 트위터 프러덕트 매니저로 일하는 중이다. 그의 둘째 자부도 하버드대 화학과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변호사로 재원.. 증권회사인 골드만 삭스 부사장을 역임 하였으며 지금은 다른 증권회사 다지엔 콕스 애널리스트로 부사장이다. 특히 지민씨는 훨부룩 고교를 다닐 때 전교수석을 하고 그 학교 개교이래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던 수재다. 어떻게 하면 그처럼 공부 잘하는 자제들을 두었냐는 질문에 정 시인은 "능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공부에 취미가 없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부모가 모범을 보여주고 기본 틀만 잡아주면 성공은 언제나 가능하니까 너무 아이들을 닦달하지, 마세요.”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농장에서 하루 종일 땀 흘려일하고 저녁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아버지의 영향인지 두 아들들도 글쓰기를 좋아하며 3부자 문학도이기도 하다. 시대가 정보화하고 기계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정신문화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작금에, 자연 속에 묻혀 열심히 일하며 시를 쓸 수 있는 정 시인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이고 부럽다. 또 정용진 시인에게는 치악산 화전민 집에서 홀로10여년 이상을 사는 동생 정용주 시인과 여동생 정양숙 시인이 있다.
(연락처 / 760-723-7673)■박양옥 *일부 수정 증보 편.
"나는 인생의 밭을 가는 허름한 농부"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우리 내외는 돋보기를 걸치고 마주앉아 손에 박힌 장미가시를 빼내주며 서로를 위로하지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고요”로스엔젤스에서 하이웨이 5번을 타고 남쪽으로 2시간 정도 내려가다 보면 샌디에고 조금 못 미쳐 훨부룩(Fallbrook)이란 조그만 도시가 나온다. 보석처럼 푸르른 태평양해(海)와 구비구비 흐르는 계곡의 시냇물, 나지막한 구릉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대 가경(佳景)을 이루는 이 전원도시엔 장미농장을 가꾸며 영혼(靈魂)의 시(詩)를 쓰는 시인(詩人)이 살고 있다. 정용진 시인.. 20에이커가 넘는 광활한 산등성 평지 위에 2에이커의 그린하우스를 지어놓고 장미를 기르는 그를, 흔히들 장미시인이라 부른다. 노란 장미, 흰 장미, 분홍 장미, 붉은 장미, 보라색 장미, 레이디 다이애나 장미..... 6만여주(그루)의 장미나무에서 각양각색의 색깔과 향기로 피어나는 꽃들은 주인이 짓는 영혼의 노래를 들으며 꽃 봉우리를 맺는다.
영혼을 노래하는 장미시인
‘잠든 영혼이 눈을 뜨는/ 이른 아침/ 장미의 뜨락을 거닐면/ 소록소록/ 마음을 열며/ 피어오르는 사랑의 숨결/ 더러는/ 눈길로 말하고/ 더러는/ 향기로 부르며/ 삶의 진실과 번뇌를/ 고백하는/ 여신의 숲엔/ 생명의 늪으로 빨려드는/ 무수한 영혼의/ 빛과 소리들....../ (시 장미 밭에서의 일부, 정용진 지음)' 그의 시(詩)가 말하듯 그는 장미를 기르며 삶의 소중함과 영혼의 신비를 깨닫는다고 한다. "이른 아침 온실에 들어서면 밤새 이슬을 머금은 장미꽃들이 함초롬히 나를 맞아주는데 그처럼 아름답고 싱그러울 수가 없어요. 농원을 가꾸다가 어렵고 고달픈 일이 생겨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마음속에 쌓여있던 고통과 번뇌가 일순 사라지는 듯 한 느낌을 갖게 되지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다 그렇겠지만 장미를 통해서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거든요.” 시인의 눈으로 보아설까. 그는 꽃들도 인간과 닮은 면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 속에 생노병사와 희로애락이 있듯이 꽃들에게도 삶과 죽음, 희열과 고통이 있어요. 똑같은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었는데도 곧은 가지 위에 당당하게 뽐내며 피어있는 꽃이 있는가하면 가지가 휘고 꺾여 보기 흉한 꽃도 있고, 매혹적인 향기를 발산하며 유혹하는 꽃이 있는가하면 종이꽃처럼 무향무취해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꽃도 있지요. 이런 꽃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을 생각하게 돼요. 우리의 삶에도 결코 플러스만의 인생이나 마이너스만의 인생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삶의 철학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집념으로 일군 장미농원
정 시인이 훨부룩에 에덴 장미농장(Eden Rose Farms)의 간판을 세운지는 20여년 전의 일이다. 경기도 여주농고와 성균관대학 법대를 졸업한 그는 71년 미국으로 유학 왔다. 한국에서는 법관이 될 작정으로 법대에 들어갔으나 미국에 유학 와선 우드버리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대학수업 후엔 잠시 그로서리 사업을 하다가 로스엔젤스 근처 온타리오에 30에이커의 채소밭을 일구고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배추, 무, 열무, 고추 등의 채소를 재배했다. 그 때가 1977년.. 채소 기르는 재미는 꽤 솔솔 했다. 학창시절에 배운 농업기술을 살려 캘리포니아 사막 땅을 옥토전(沃土田)으로 개발해서 품질 좋은 채소를 길렀고 수확도 좋았다. 한 때는 그로서리점마다 서로 그가 재배한 채소를 원해서 공급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 댱 시는 일본인들이 재배한 왜무만 있을 분 한국인들의 이민이 늘어나는데 한국 채소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한국 농장 이었다. 하지만 호시절도 잠시.. 장사가 잘되자 너도나도 채소밭을 경작하는 바람에 한인들끼리 경쟁이 붙었다. 같은 민족인 한인들과 경쟁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5년 가까이 운영하던 채소 농장을 처분하고 장미 밭이 있는 아름다운 훨부룩에 이사했다. “83년도에 왔는데 전(前)주인인 미국인이 취미로 하고 있던 장미 밭을 샀기 때문에 처음에 시작할 때는 농장이 조그마했지요. 집사람과 함께 대여섯 명의 일꾼을 데리고 열심히 일궜어요.” 부부가 억척으로 일한 결과 장미나무는 6만주로 불게 되고 고용인도 열다섯 명이나 되는 대 농장으로 불어나서 인근 농장주들을 놀래켰다. 놀고 있는 땅에는 대추나무, 단감나무(700주), 후지사과나무 등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과실수를 심어 과수원을 만들었고 무궁화도 기르며 고국에의 향수를 달랬다. "사람들은 장미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즐기지만 척박한 땅을 거두어 나무를 심고 풍성하게 꽃을 피우게 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아요. 장미는 기온과 병충해에 민감해서 손이 많이 가거든요. 원래 노동이란 것이 다 힘들지만 원예는 무척 힘들어요. 책도 많이 읽어야 되고 지식과 경험도 많이 쌓아야 되지요.”집에서 나무를 길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야생목이 아닌 장미와 같은 꽃나무를 가꾸는 일은 만만치 않다. 간혹 나무든 채소든 무엇을 심어도 풍성한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그린썸(greem thumb)을 주위에서 볼 수 있지만 어디 아무나 그린썸이 되랴. 그들도 그만큼 신경을 써주고 정성을 쏟아주기에 그린썸이 되는 것이다. 정 시인의 장미농장은 최신식 첨단시설을 갖춘 농장이다. 환경에 민감한 장미를 위해 통풍장치가 설치되었고 온실 내부는 항상 섭씨 15도 정도로 유지시켜 준다.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스프링클러가 물도 뿌려주고 해충약도 뿌려준다. 거름을 주고 가지를 쳐주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꽃이 알맞게 꽃 봉우리를 맺으면 가지를 잘라 한데 묶어서 화매 조합에 넘겨준다. 장미가지를 자를 때 가끔 사나운 가시에 찔릴 때도 있지만 정 시인과 연세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그의 부인 정선옥 여사는 여직 기쁜 마음으로 농원을 가꿔왔다. "장미는 사랑의 꽃이 아닙니까. 발렌타인 데이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날에 연인이나 남편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팔에 안겨주는 꽃이 장미이고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결혼식의 신부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꽃이 장미입니다. 우리가 정성들여 재배한 꽃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는 생각을 하면 고생은 되더라도 기쁘지 않을 수 없어요.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우리 내외는 돋보기를 걸치고 마주앉아 손에 박힌 장미가시를 빼내주며 서로를 위로하지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고요.” 에덴 장미농장을 경영하면서 그는 조상이 다른 여러 민족의 사람들과 교류를 맺어왔다. 그가 본 민족성을 살펴보면 꽤 흥미 있다. 조그만 질문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실히 대답해주는 네델란드인, 오전엔 자기 농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남의 농장 일을 도와주는 덴마크인, 이웃에 경사가 났을 때면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기뻐해주는 그리스인, 농기구와 부속품을 꼭 일본제만 사용하는 일본인들..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일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3650송이의 장미꽃을 사간 미국인이라고 한다.
시인과 농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장미 밭을 가꾸고 전날 잘라 묶어놓은 꽃들을 칼스베드 꽃시장에 배달하는 일을 매일하면서 이러한 사소한 일상의 하나하나는 시로 승화되어 뭇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킨다. "육신으론 농사를 짓고 영혼으론 시를 쓰는 셈이지요. 몸은 피곤해도 일을 끝마치고 책상 앞에 앉으면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안정돼요. 하루 종일 꽃과 씨름하며 꽃의 아름다움에 묻혀 살다보면 사람의 마음도 저절로 아름답게 변화되는가 봐요. 왜 사랑과 고독과 죽음을 노래하던 시인 릴케도 장미를 좋아했다지 않아요. 사랑하던 여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려고 가지를 자르다가 가시에 찔린 화농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자신을 ‘인생의 밭을 가는 허름한 농부’라고 표현하는 그는 최근에 ‘시인과 농부’라는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이미 81년에 시집‘강마을’과 뒤를 이어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를 펴냈고, 89년에 에세이집으로‘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재미작가 9인 에세이'를 펴냈기에 이번 에세이집은 6번째의 책이 된다. 그와 의형제를 맺은 시인 고은 선생이 ‘시인과 농부’ 서평에서 그의 시 세계와 에세이의 주제는 자연, 산, 시대에의 성실한 귀의와 인간 옹호이다’라고 평했듯 그의 시는 대부분 꽃, 바람, 바다, 섬 등 자연을 주제로 노래한 목가적 서정시이다. 과학문명, 물질문명에 짓눌려 정서가 메말라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속을 가다듬어주고 다독여주고 정화시켜주는 따뜻한 시들이다. 하지만 서정시를 쓰는 그가 지난날 유신정권에 대항에서 싸우던 사회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진종일/ 삶의 밭에서/ 불의를 가려내 듯/ 잡초를 추리다가/ 땀 솟은 얼굴을 들어 저문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영원의 기쁨/.....’ 밭에서 잡초를 추리듯 피안(彼岸)에서 불의를 가려내는 저항 운동가였던 그는 오는 2003년 한인이민 백주년을 맞이하여 ‘한얼의 횃불을 들며’라는 시를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의 서시로 발표했다. ...../님들은 민족의 얼이 십니다 민족의 힘이 십니다 민족의 뿌리 이십니다 그 기쁨 그 감격 그 영광을 이민 백년을 맞는 오늘 님들게 드리나니 기뻐하시옵소서...../
내게 이런 자녀를
‘내게 이런 자녀를 주시옵소서'라는 멕아더장군의 기도문을 좋아하는 그는 자식농사에도 정성을 쏟았다. 큰아들 지신(知新.제임스)씨는 UC어바인을 나와 미국경제신문인 ‘비지네스 와이어'의 수퍼바이저로 있고, 그의 부인도 워싱턴 디씨에서 명문 콜게이트 사립대를 나와 다른 미국 경제신문사 수퍼바이저로 있다. 작은 아들인 지민(知民.조셉)씨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월튼 비지네스 스쿨과 유펜 컴퓨터 싸이언스를 나와 이베이 프러덕트 매니저를 거처 지금은 트위터 프러덕트 매니저로 일하는 중이다. 그의 둘째 자부도 하버드대 화학과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변호사로 재원.. 증권회사인 골드만 삭스 부사장을 역임 하였으며 지금은 다른 증권회사 다지엔 콕스 애널리스트로 부사장이다. 특히 지민씨는 훨부룩 고교를 다닐 때 전교수석을 하고 그 학교 개교이래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던 수재다. 어떻게 하면 그처럼 공부 잘하는 자제들을 두었냐는 질문에 정 시인은 "능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공부에 취미가 없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부모가 모범을 보여주고 기본 틀만 잡아주면 성공은 언제나 가능하니까 너무 아이들을 닦달하지, 마세요.”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농장에서 하루 종일 땀 흘려일하고 저녁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아버지의 영향인지 두 아들들도 글쓰기를 좋아하며 3부자 문학도이기도 하다. 시대가 정보화하고 기계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정신문화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작금에, 자연 속에 묻혀 열심히 일하며 시를 쓸 수 있는 정 시인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이고 부럽다. 또 정용진 시인에게는 치악산 화전민 집에서 홀로10여년 이상을 사는 동생 정용주 시인과 여동생 정양숙 시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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