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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놀라움이야말로
2016.12.24 05:12
삶의 놀라움: 플라톤의 놀라움이야말로
플라톤은 “놀라움(thavmazai)이야말로 철학의 시작”이라 했고, 문예도 놀라움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괴테는 “놀라움이란 인간이 지닌 최고의 몫이다(파우스트)”, “놀라기 위하여 나는 존재한다(신과 세계)”고 했다. 이렇듯 “놀라움”이란 바로 인생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체험이다. 장 폴 싸르트르는 “존재(存在)는 본질(本質)에 선행(先行)한다”고 하였다. 즉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에 만나고, 그 다음에 세계에 나타나고, 그 뒤에 비로소 정의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인간은 수시로 놀라움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극한 상황 밑에 있는 존재를 실존(實存)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존재하는 인간을 자각하여 가브리엘 마르셀은 “길 가는 사람(Homo Viator)”이라고 인간을 규정하였다. “길 가는 사람”은 “나그네”이다. 이 “나그네”는 순례(巡禮)의 나그네, 구도(求道)의 나그네이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생애 중에 삶의 놀라움을 가장 크고 가장 소중함을 많이 간직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실한 나그네다운 나그네로서의 삶다운 삶을 유지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는 길은 말씀을 말씀으로 바로 받아들이고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 방법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가까운 직선(直線)의 길이다. 직선으로 걷는 이 길만이 참 나그네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나누는 대화의 길이다. 현대는 고독한 세대이다. 고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이다. 이것이 말씀묵상과 기도이다. 말씀묵상과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밀담(密談)이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고독을 벗어나게 되고, 따라서 나그네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으로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삶다운 삶의 놀라움이다. 삶다운 삶, 놀라움다운 놀라움을 만나는 일이다. 참 나그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대화가 이루어지면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의 놀라움이 우리의 삶에 널리 전개된다. 뿐만 아니라 죄인이 씻음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움을 만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령에 천지창조와 같은 신비와 감격이 일어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되는 놀라움을 만나게 된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다. 가난한 자를 위하여, 외로운 자를 위하여, 고통 당하는 자를 위하여 참 나그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걷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 삶은 놀라움의 연속이어야 한다. 플라톤이나 괴테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놀라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런 삶을 살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도 놀라움다운 놀라움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열망에 불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평범한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그들이다. 다만 우리보다 먼저 애타게 놀라움을 그리워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그만큼 삶의 생명체들에게 놀라움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놀라움을 남의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기필코 내 것이 되어야 한다. 내 것이 되는 놀라움은 틀림없이 나를 변화시킨다. 변화되어지는 순간순간마다 놀라움의 희열(喜悅)이 나를 채운다. 그 희열은 우리의 언어로 설명이 되거나 값으로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성(絶對性)인 은혜(恩惠)에서 오기 때문이다. 은혜는 하늘에서 내리는 햇볕이나 눈이나 비와 같은 것이다. 산이나 들에 나가 햇볕에 몸을 쬐어 보라. 내리는 눈이나 비를 흠씬 맞아 보라.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몸에 변화가 일듯이 심령에도 변화가 인다. 이렇듯 은혜는 더 더욱 진실의 변화를 일으킨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으로 나를 감싸 준다. 그만큼 나는 하늘과 점점 가까워지는 희열을 경험한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여릿여릿/머얼리서 온다.//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호수처럼 푸르다//호수처럼 푸른 하늘에/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가슴으로, 가슴으로/스미어드는 하늘/향기로운 하늘의 호흡.//따가운 볕,/초가을 햇볕으로/목을 씻고,//나는 하늘을 마신다/자꾸 목 말라 마신다//마시는 하늘에/내가 익는다/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박두진의 <하늘> 전문
이 시(詩)는 하늘이 내게로 와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살면,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능금처럼 익는 은혜의 경지에 이르게 됨을 비유(隱喩)로 깨우쳐 준다. 참으로 경이롭다. 신묘한 기쁨이 솟구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14)- 이는 놀라움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부활의 근거와 약속인데, 이 글 첫머리에 쓰인 플라톤이나 괴테는 과연 몇 걸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와 손을 잡고 부활을 향한 나그네 길을 동행 하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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