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창작터
| 최선호의 창작실 | 내가 읽은 좋은 책 | 독자창작터 | 비밀글쓰기 | 회원신간 | 추천도서 | 문학자료실 | 일반자료실 |
<삶의 놀라움> 작가는 말로 하지 않고
2016.12.24 06:29
삶의 놀라움: 작가는 말로 하지 않고
작가는 말로 하지 않고 글로 작품을 쓴다. 글로 거짓을 지어내는 데도 그 글 속에 진실을 담고 있다. 그 진실로 사람을 감동시켜서 마구 들어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관을 철저히 변화시킨 예도 얼마든지 있다. 작가는 사실이 아닌 허구虛構: fiction로 감동적인 진실을 밝힌다. 진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도 진실을 뜨겁게 창조해 낼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지어낸 진실로 인류역사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기도 한다. 작가가 작품을 짓는 일을 창작創作이라고 한다. 14-16세기에 있었던 르네상스 이후 부터는 작가를 창조자creator로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창작도 창조와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지어내는 창작에 비할 수 없는 우주적 창조능력의 엄청난 말씀인 성경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에도, 특히 말씀을 선포하는 종교지도자들도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진리와 생명을 살리는 초능력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이 말씀을 가지고서도, 자신은 물론 사람들을 바르게 하거나 영을 새롭게 하는 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게 많이 있다. 한 치의 은혜로운 변화도 이룩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말씀에 대한 이해와 적용의 원만한 목표와 말씀 묵상을 묵상답게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이를 모르는 듯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매우 심각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섭리하고 계심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밀착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작가는 자기가 말하는 진실을 나타내기 위하여 작품 속에 등장인물을 설정한다. 설정된 작중인물이 나타내는 말과 행동 일체는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작가와 작중인물과의 사이에는 추호의 엇갈림이 없다. 아니, 작가와 작중인물과의 사이에는 조금치의 엇갈림이 존재할 수도 없다. 등장인물은 작가의 마음 그대로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등장인물에 대한 직접묘사와 간접묘사로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통하여 사건을 진전시킨다. 그래서 작품을 완성하고 인물탐구의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등장시키신 등장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변화되지 않는 운명이요 숙명이다. 인생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능력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책이 아니다. 말씀이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쓰리고 아픈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야말로 목숨과 바꾼 생명의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살아야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영광스럽게 성립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다. 등장인물이 해야 할 인생의 구실은 이것뿐이다. 이 말씀 이상을 살 수도 없고 이 말씀 이하를 살아서도 안 된다. 다만 등장인물에게 주어진 구실을 충실히 이행하며 살아야 한다. 말씀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섬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등장인물에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등장인물인 인간들이 엉뚱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이다. 그 한 예로 동성애를 들 수 있다.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交合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위기 20:13;18:22)는 말씀을 방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미 남녀가 결혼을 하여 자녀를 가진 가정의 부부들조차 동성애를 지지하고 열을 올리는 일을 이해조차 하기 어렵다. 이는 인류의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등장인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등장인물로서의 삶을 얼마나 힘이 넘치고 정당하게 사시었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분명하게 이행하는 데서 나온 영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름다운 삶의 지극한 절정이다.
작품 구성에 발단, 전개, 위기, 절정, 대단원이 있듯이, 삶에도 그와 같은 단계가 있다. 작품은 절정에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인간이 그려져 나타나야 한다. 새롭게 창조된 인간의 모습이 작품 속에 살아 움직여야 한다. 이와 같이 허구를 가지고 진실을 구하는 작가의 소유한 능력 이상의 말씀으로 목회사역, 선교사역, 구원사역을 하는 종교지도자들은 능력의 말씀에 힘 입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음의 인간상 구현에 작자의 경지를 넘어 선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얻어진 것이 믿음의 결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부, 세리를 불러 사람을 낚는 참 사람의 인간상을 구현하셨다. 사울을 불러 바울이 되게 하셨고, 십자가 한 쪽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하시었다. 귀신에 사로잡혀 정신적 육체적 병에 시달리는 막달라 마리아에 들려있는 일곱 귀신을 쫓아내시고 영적 자유로움을 덧입히셔서 새로운 여인으로 구원하셨다. 이는 오직 능력의 말씀이 베푸신 삶의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창작한 작중인물은 그저 작중인물일 뿐이지만.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131 | <삶의 놀라움> 성경말씀과 실용문만이 아니라 | 최선호 | 2016.12.24 | 16 |
| 130 | <글여울> 부활과 영생의 문을 열어 | 최선호 | 2016.12.24 | 5 |
| » | <삶의 놀라움> 작가는 말로 하지 않고 | 최선호 | 2016.12.24 | 13 |
| 128 | <글여울> 표절시비 | 최선호 | 2016.12.24 | 8 |
| 127 | 광복의 감격에서 평화통일의 감격에로 | 최선호 | 2016.12.24 | 6 |
| 126 | 넓은 벌 동쪽으로 | 최선호 | 2016.12.24 | 13 |
| 125 | <삶의 놀라움> 하늘나라는 크고 넓은 공간 | 최선호 | 2016.12.24 | 9 |
| 124 | <글여울> 동성결혼은 어불성설이다 | 최선호 | 2016.12.24 | 18 |
| 123 | <삶의 놀라움> 주여, 때가 왔습니다 | 최선호 | 2016.12.24 | 40 |
| 122 | 아인슈타인의 유언이 없는 이유 | 최선호 | 2016.12.24 | 4 |
| 121 | 가을의 서정 | 최선호 | 2016.12.24 | 12 |
| 120 | 플라톤의 놀라움이야말로 | 최선호 | 2016.12.24 | 10 |
| 119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 최선호 | 2016.12.24 | 17 |
| 118 |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 최선호 | 2016.12.24 | 9 |
| 117 | 하나님께 감사, 사람에게도 감사 | 최선호 | 2016.12.24 | 14 |
| 116 | 추수감사절 | 최선호 | 2016.12.24 | 14 |
| 115 | 사순절 Lent | 최선호 | 2016.12.24 | 5 |
| 114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최선호 | 2016.12.24 | 19 |
| 113 |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 최선호 | 2016.12.23 | 16 |
| 112 |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 최선호 | 2016.12.23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