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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울> 시순절 Lent

2016.12.25 07:19

최선호 조회 수:5

 

 

<글여울사순절Lent 

 

성회 수요일(Ash Wednesday), 이날은 사순절 첫째날 이다. 이마에 재를 바르는 날로 속죄의 뜻이 있다. ”재를 덮는 행위회개를 상징한다. 하나님께 두번째 응답하는  욥은 ”티끌과 잿더미 가운데서 회개한다(42:6) 고백한다. 포로이후 공동체의 회개기도로서, 다니엘은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9: 3). 구약성서가재를 쓴다는 것을 회개를 의미하는 것처럼, 성회 수요일에재를 이마에 바르는 행위 회개의 의미로 이해  있다따라서 성회 수요일은 유한한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깊이 성찰하는 날이다.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네 인생! 세상이 주는 영예와 물질의 유혹에 끌리지 말고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는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인데, 바로 이날부터 사순절을 지키기 시작함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인생을 매는 지극한 섭리가 스며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순절(四旬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구원사역을 위해 겪으신 십자가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 맺힌 고난과 무덤에서의 부활을 기억하며, 인생들에게 베푸신 절대적인 섭리와 사랑에 감사하는 경건한 절기로 부활절 전 40일간의 기간을 일컫는다. 이는 부활주일부터 거슬러 주일을 뺀 40일간이다. 이 절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는 인간들의 행사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종려나무 재로 이마에 십자가 그리기, 금식기도, 구제와 선행 베풀기, 절기내 6번의 주일예배, 종려주일, 고난주간, 세족식, 성금요일, 성찬예식 등의 절기예절은 죄악에 물든 인생들을 회개시키는 주님 은혜의 경험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절기에 우리는 인생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로 인해 은혜와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사는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이며, 이렇게 살다가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가…를 뚜렷하게 가슴에 새겨보고 싶은 절기이기도 하다.  
하늘 보좌를 떠나 세상에 오신 주님은 우리를 섬기셨고,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다. 나를 위해 희생하시었다

부모가 자녀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데는 그 자녀가 절대적으로 부모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함 같이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절대 필요하다.
그런데 주님을 향한 인간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환영하며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일에 동의하고 말았다.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자기 멋대로 계획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절대자에게 의지하려 하지도 않는다. 확실히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들은 고삐 풀린 송아지처럼 진리의 끈에서 풀려나고 있다. 멋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멋대로 날뛰고 있다. 마치 의()를 환영하는 듯 하다가 결국 의를 짓밟아 버리고 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그 환영의 인파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소리소리 지르며 환영했던 그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다 이렇다. 그러므로 주님은 모든 인생들이 어린아이와 같기를 원하고 계신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과연 어린아이와 같이 착하고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부모를 의지하듯 주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삶인가, 아니면 내 멋대로의 삶이었나.

주님을 등에 지고 예루살렘을 들어가는 어린 나귀새끼 같이 우리도 섬기는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값진 삶이겠는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이번 사순절에 분명히 찾아내는 
은혜를 경험해야 사순절다운 사순절을 지키는 우리가 되지 않겠는가! (최선호)

   

 

죽으심 . 다시 사심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가 더욱 뚜렷이 들린다. 2000년이 지났음에도 그 소리는 더 더욱 가슴을 조인다. 2000년 전 갈보리 산 그 꼭대기로 달음질 쳐 올라간다. 그때 거기 있던 망치와 대못은 온 데 간 데 없다만, 아직도 그때 못 박는 그 소리는 지금도 내 영혼을 내리치누나!

인류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한다.

날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분명히 알아차리라 한다.

언제나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심중에 모시고 살아라 한다.

대못처럼 박힌 내 죄의 뿌리를 뽑으라 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한다.

탕 탕 탕 탕 탕그칠 줄 모르고 들리는 이 소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그렇게 사시었구려/사신 게 아니라/33 년을/아예 죽어지내셨구려//사랑으로/불덩어리로/피 흘림으로/갈 데까지 간 끝자리/이보다 더 이상이 없는/그 뜨거운 눈물로/높이 들어 올린 생애//갈보리 산 위에/붉게 피었습니다졸시 <그 생애> 전문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3-26).           부활이란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자는 영생을 얻기 위해, 불신자는 심판을 받기 위해 몸과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일컫는다(11:24-26;고전15:54-56;고후4:14). 예수님의 부활은 신자의 칭의를 위해서이며(4:25), 성도의 참 소망은 자기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사는 것이다(고전15:12-15벧전1:3). 그러므로 기독교의 근본교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다(4:33;5:30-32).    

부활에는 여러 가지 양상이 있다. 인자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8:31), 성도의 영육의 부활(11:23,24;2:12), 의인과 악인의 부활(24:15) 등이 성경에 나타나 있다. 악인의 부활은 수욕의 부활(12:2)이며, 심판의 부활(5:29)로서 의인의 부활과 동시에 발생(24:15)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부활도 믿어야 한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고전6:14), 그리스도와의 연합(6:5;8:11), 부활의 첫 열매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고전15:20-23)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의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71:20;13:1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40).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고전15:22). 주 예수를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고후4:14).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이 말씀들은 부활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다.

부활을 성취하신 분으로는 삼위일체 성부 하나님(고전6:14), 성자 그리스도 예수님(6:40), 성령님(8:11)이 계시다.

성경에 나타난 부활사건으로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왕상17:17-24),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4:32-35),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왕하13:21), 야이로의 딸(5:35-43), 과부의 아들(7:12-15), 나사로(11:39,40,44), 예수의 임종시 성도들의 부활(27:52,53), 도르가(9:36-40), 유두고(20:9-12) 등이 있다. 이것은 부활의 확실한 증거이다. 부활한 성도의 몸을 보고 만질 수 있다(24:39), 다시 죽지 아니한다(20:36), 썩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이다(고전15:42-44),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다(고후5:1-4), 완전히 변화된 몸이다(고전15:52), 천사와 같은 몸이다(22:30).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의 절대 소망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 확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은 가장 큰 믿음이다.(최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