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광년, 폴래리스 |
유 봉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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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빗겨 서는 초가을 저녁
유리창에 더듬이를 내린 여치 한 마리
갈색 반점 있는 녹색 몸이 잠잠하다
왜 초록 길을 벗어 놓고
투명한 유리창에,
웬일인지 묻지 않았다
3센티 길이의 더듬이가 더듬던
낯설고 차가웠을 너의 세상을
어차피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밤중 신열로 깨어서 한 칸 방을 더듬을 때
한 모금 물로 깨어나는,
가는 나의 더듬이가 더듬는
갑충의 각질 같은 어둠을 말할 수는 있다
그 밤에 네가 너의 몸을 파헤치듯
울며 노래하면
나는 무거운 커튼을 열고
저 820광년, 폴래리스를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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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광년, 폴래리스] · 유봉희 시인
절기상으론 지금 가을 중간쯤인지. 아니면 지나치는 늦가을인지.
이제 초가을이 아닌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건 다 하릴없고 따질 가치 없는 일.
가을은 가고 또 오는 법이니. 낙엽은 지고 다시 또 새 잎 피는 법.
구름은 흘러가야 다시 새 구름으로 몰려오는 까닭이다.
그러니 그대 가을 앞 지는 생의 온기 위로 두 무릎 꿇어 경배하라.
그대 맨 가슴 땅에 대고 낙엽에 한없는 입맞춤하라.
초가을 저녁 여치 한 마리 유리창에 와 여린 더듬이로 더듬는 낯설고 차가운 세상.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 그러나 한밤중 신열로 깨어 한 모금의 물로 허기를 달랠 때.
어느 먼 별의 일깨움 있어 조용히 무거운 커튼을 열면, 거기 820광년을 빛나는 폴라리스.
그리하여 여치와 나와 폴라리스가 만나 이루는 찰나.
폴라리스의 푸른빛으로 가슴을 적시며 이 한밤 지나가는 그 잔잔한 그리움을 본다.
나 또한 낯설고 차가운 세상 건너며 한밤중 깨어 더듬이로 세상을 더듬느니.
어둠을 찍어 세상 한 복판에 뜨거운 시를 써볼까.
우리 모두는 이 지구상 어느 낯선 곳 유리창에 더듬이 내린 여치는 아닐지.
그러나 활기찬 시간이 지나 풀 죽은 한 마리 여치여.
그대는 그 누구 투정에 오른 해삼 멍게 말미잘은 아니다.
- 대전일보 | 김완하 시인 · 한남대 문창과 교수 |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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