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무엇이기에/정장영
2009.02.03 06:42
손자가 무엇이기에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오늘은 일요일 아침, 아내는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다.
“잘 다녀오게나.”
대문을 나서는 아내에 대한 나의 인사다.
부모가 부부공무원이라 방과 후 귀가해도 의지할 곳이 없기에 엄마자리를 메워주기 위해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손자를 위해서 할머니가 5일간 봉사하러 간다. 토요일은 다행히 쉬는 날이라 새벽차로 내려와 토, 일요일을 전주에서 지내고 월요일 디시 상경한다. 이곳 에는 내가 있으니 먹을거리 준비와 살림살이 때문이다. 세간에 손자 돌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보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떠도는데 어느 할머니가 이렇게 손자를 위해서 희생할까? 누가 시켜서 하랴만 귀엽고 하나뿐인 손자를 위해서 피곤함을 모르고 하는 일이라 누가 말릴 수 있을 것인가? 본능적인 내리사랑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아들이 3형제지만 현재 손자는 ‘세헌’ 단 하나뿐이니까!
형님 역시 아들이 4형제나 되는데도 손자는 ‘대헌’ 하나뿐이다. 이는 모두 국가의 근시안적인 인구정책 탓이다. 다시 말해서 앞을 내다보지 못한 산아제한정책의 산물이다.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한때의 장려구호다. 이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출산장려금을 주고 셋째 이상 출산하면 추가 장려정책을 쏟아내며 법석을 떨지만 출산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대헌’ 역시 순리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머니께서 장손의 손자가 4형제나 되는데도 모두 딸만 두고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사회풍조가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집안행사 때면 증손자가 없으니 매우 서운하게 여겨 가끔 아쉬운 심정을 손부들에게 토로해왔으나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하루는 장장손부 하나를 설득하고 간곡한 당부를 하여 증손자(대헌)를 두게 되었다. 대헌은 두 누나가 중학교에 다니는데 늦둥이로 태어나 집안의 최고 귀염둥이가 되었다. 어머님 역시 생전에 증손자를 보시고 돌아가셨고, 장 손부 역시 늦게나마 외아들을 두게 되어 마음이 매우 흐뭇하고 다행으로 여겼다니 본능적인 기쁨이라 할 것이다.
올해부터 가족등록제가 시행하게 되었다. 명문거족 가문에서는 족보 만들기 사업이 성행한다. 문중에서 족보편찬위원으로 위촉되어 수단을 모으는데 젊은이는 별 영향이 없었으나 아들 없이 딸 만 둔 나이든 분은 말문이 부드럽지 못하였고 참여율도 낮았다. 옛날같이 양자도 쉽지 않아 족보상으로는 본인 이후 절손(絶孫)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족보상으로 절손 가계(家系)가 많아질 것 같다.
올해부터 호주제가 폐지되어 부계혈통원칙이 무너지고 여권(女權)이 신장되었다. 앞으로는 극소수의 경우겠지만 성(姓)을 ⑴혼인신고 때 남녀합의에 따라 정할 수도 있고, ⑵재혼 때 자녀는 부모양성(兩性) 가운데 선택으로, ⑶친 양자 입양 등으로 성이 변경될 수 있게 되어 씨족개념이 희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성(姓)없이 이름만 쓰는 미래사회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숭조(崇祖) 사상은 고취되어야 한다. 씨족이 번성해야 인구정책 추진도 효과적일 것이다.
과거 내가 젊은 교사시절 각종 세미나와 강습회 등에 참여했을 때
“미래지향적인 조기교육”이란 토론분과에서 미래학자들의 주장들이 ‘미국의 장래 예견’에서 미국은 민주주의국가이니 2, 3세대 후면 흑인정권이 출현할 것이라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흑인들은 산아제한 없이 아이들을 낳고, 신분상승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반면, 백인들은 애 갖기를 싫어하고, 현실만족으로 노력하지 않으며, 3D현상으로 흐르니 미국사회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학자들 주장이 올해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출산기피와 3D기피현상까지 생긴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출산장려정책이 터져 나와도 젊은이들이 양육과 사교육비 부담의 두려움 때문에 선뜻 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옛날 사람들의 생각은 “제 먹을 것은 타고 난다.” 식이었는데 격세지감이 든다. 자유주의라 지만 극단적인 개인주의 경향이 가져온 병폐다.
TV 환경스페셜을 보면 미물들이지만 생태계유지와 종족유지를 위해 갖은 노력으로 본능을 지켜가는 것을 보면 눈물겹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이 이기적 개인주의로 흘러가 종족유지본능을 버리려 한다. 개체유지본능만 고수하려하니 미물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 특히 이 민족은 희망이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 다 같이 깊이깊이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오늘도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는지 슬슬 전화나 해볼까?
(2008.12.15.)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오늘은 일요일 아침, 아내는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다.
“잘 다녀오게나.”
대문을 나서는 아내에 대한 나의 인사다.
부모가 부부공무원이라 방과 후 귀가해도 의지할 곳이 없기에 엄마자리를 메워주기 위해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손자를 위해서 할머니가 5일간 봉사하러 간다. 토요일은 다행히 쉬는 날이라 새벽차로 내려와 토, 일요일을 전주에서 지내고 월요일 디시 상경한다. 이곳 에는 내가 있으니 먹을거리 준비와 살림살이 때문이다. 세간에 손자 돌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바보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떠도는데 어느 할머니가 이렇게 손자를 위해서 희생할까? 누가 시켜서 하랴만 귀엽고 하나뿐인 손자를 위해서 피곤함을 모르고 하는 일이라 누가 말릴 수 있을 것인가? 본능적인 내리사랑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아들이 3형제지만 현재 손자는 ‘세헌’ 단 하나뿐이니까!
형님 역시 아들이 4형제나 되는데도 손자는 ‘대헌’ 하나뿐이다. 이는 모두 국가의 근시안적인 인구정책 탓이다. 다시 말해서 앞을 내다보지 못한 산아제한정책의 산물이다.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한때의 장려구호다. 이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출산장려금을 주고 셋째 이상 출산하면 추가 장려정책을 쏟아내며 법석을 떨지만 출산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대헌’ 역시 순리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머니께서 장손의 손자가 4형제나 되는데도 모두 딸만 두고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사회풍조가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집안행사 때면 증손자가 없으니 매우 서운하게 여겨 가끔 아쉬운 심정을 손부들에게 토로해왔으나 반응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하루는 장장손부 하나를 설득하고 간곡한 당부를 하여 증손자(대헌)를 두게 되었다. 대헌은 두 누나가 중학교에 다니는데 늦둥이로 태어나 집안의 최고 귀염둥이가 되었다. 어머님 역시 생전에 증손자를 보시고 돌아가셨고, 장 손부 역시 늦게나마 외아들을 두게 되어 마음이 매우 흐뭇하고 다행으로 여겼다니 본능적인 기쁨이라 할 것이다.
올해부터 가족등록제가 시행하게 되었다. 명문거족 가문에서는 족보 만들기 사업이 성행한다. 문중에서 족보편찬위원으로 위촉되어 수단을 모으는데 젊은이는 별 영향이 없었으나 아들 없이 딸 만 둔 나이든 분은 말문이 부드럽지 못하였고 참여율도 낮았다. 옛날같이 양자도 쉽지 않아 족보상으로는 본인 이후 절손(絶孫)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족보상으로 절손 가계(家系)가 많아질 것 같다.
올해부터 호주제가 폐지되어 부계혈통원칙이 무너지고 여권(女權)이 신장되었다. 앞으로는 극소수의 경우겠지만 성(姓)을 ⑴혼인신고 때 남녀합의에 따라 정할 수도 있고, ⑵재혼 때 자녀는 부모양성(兩性) 가운데 선택으로, ⑶친 양자 입양 등으로 성이 변경될 수 있게 되어 씨족개념이 희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성(姓)없이 이름만 쓰는 미래사회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숭조(崇祖) 사상은 고취되어야 한다. 씨족이 번성해야 인구정책 추진도 효과적일 것이다.
과거 내가 젊은 교사시절 각종 세미나와 강습회 등에 참여했을 때
“미래지향적인 조기교육”이란 토론분과에서 미래학자들의 주장들이 ‘미국의 장래 예견’에서 미국은 민주주의국가이니 2, 3세대 후면 흑인정권이 출현할 것이라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흑인들은 산아제한 없이 아이들을 낳고, 신분상승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반면, 백인들은 애 갖기를 싫어하고, 현실만족으로 노력하지 않으며, 3D현상으로 흐르니 미국사회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학자들 주장이 올해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출산기피와 3D기피현상까지 생긴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출산장려정책이 터져 나와도 젊은이들이 양육과 사교육비 부담의 두려움 때문에 선뜻 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옛날 사람들의 생각은 “제 먹을 것은 타고 난다.” 식이었는데 격세지감이 든다. 자유주의라 지만 극단적인 개인주의 경향이 가져온 병폐다.
TV 환경스페셜을 보면 미물들이지만 생태계유지와 종족유지를 위해 갖은 노력으로 본능을 지켜가는 것을 보면 눈물겹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이 이기적 개인주의로 흘러가 종족유지본능을 버리려 한다. 개체유지본능만 고수하려하니 미물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 특히 이 민족은 희망이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 다 같이 깊이깊이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오늘도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는지 슬슬 전화나 해볼까?
(200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