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이 불타고 있다/김길남
2009.10.31 07:16
내장산이 불타고 있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불이야!”
소리를 지를 번했다. 첫눈에 들어온 빛깔이 너무도 붉어 정말 불이 난 것 같았다. 올해 단풍이 다른 해에 비해 고와서 그러는지 틀림없이 불이 난 것 같았다. 같이 간 일행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참 잘 왔다고 탄성이었다. 일찍 갔기에 아직 9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서 표를 사고 있었다. 아름다운 단풍을 보려는 마음은 누구나 같은 모양이다.
전국의 산들을 고루 찾아다닌 팀이라 부지런하기도 하여 아침 8시에 전주를 출발했다. 주차가 어려우리라 짐작하고 남보다 먼저 갔다. 그런데 위 주차장은 벌써 만원이어서 음식점 앞에 겨우 차를 세웠다. 들어가는 입구의 단풍은 아직 볼 것이 없었으나 매표소를 지나니 아주 달랐다. 길가의 단풍은 물론이고 산기슭의 단풍이 불이 난 것 같았다. 완전히 불이 붙은 것은 아니고 70% 정도 타고 있었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조물주가 조화를 부려 붉은 물과 노랑 물, 갈색 물을 고루 들이지 않았으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해에도 와 봤지만 올해의 단풍이 더 불타는 것 같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서래봉을 향했다. 단풍나무가 빨간 손바닥을 흔들며 어서 오라고 반겼다. 사이사이에 서 있는 전나무도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우리를 맞았다. 시원한 공기가 뱃속까지 들어와 도시에서 찌든 찌꺼기를 걸러 내는 것 같았다. 상쾌한 등산로다. 정상에 서니 산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온 산이 불타는 모습이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불이 붙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우리에게 주신 조물주께 감사했다. 어디 어디 단풍이 곱다 해도 이 내장산 단풍만은 못하다. 설악산 단풍이 아름답다 하나 산과 조화를 이루어서 그렇지 단풍 자체만 치면 내장산을 따라올 수 없다.
바위틈이지만 손바닥만 한 자리를 찾아 둘러앉았다. 정상주를 부어 건배를 했다. ‘우리 모두 내장산 단풍을 위하여’ 하고 한 잔씩 마셨다. 온 몸이 쩌르르 했다. 얼큰히 취기가 오르니 내가 신선이 된 것 같았다. 신선은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지내니 오래오래 산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시끌시끌한 세상을 잊고 이런 곳에서 산다면 마음고생 할 일은 없을 게다.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 같았다. 신선이 되어 이런 곳에서 꼭 1년만 살았으면 좋겠다.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비켜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불타는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고간다. 경상도의 억센 말소리도 들리고 아랫녘의 된 소리도 난다. 충청도의 느린 가락도 사이사이 섞인다. 이 말 저 말, 이 소리 저소리가 섞여 합창을 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구경나온 어른도 있고, 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도 있다. 온 가족이 같이 오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고, 애인끼리 손잡고 걷는 모습도 보였다.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아름다운 곳을 찾아 몸과 마음을 쉬는 것은 내일을 위해 좋은 일이려니 싶다.
옛날에 승용차가 없을 때 기차로 백양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백양사에 간 일이 있었다. 경내의 단풍을 구경하고 약사암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 뒤 걸어서 내장사로 넘어 왔었다. 유군치에서 내려다 본 단풍은 일품이었다. 그 때는 젊었으니 걸어서 넘는 데도 즐겁기만 했었다. 한 번은 아내와 같이 계곡에서 장군봉에 올랐다. 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자꾸 미끄러졌다. 한 발 옮기면 두발은 물러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어이 올라 신선봉을 거쳐 까치봉으로 내려 온 일도 있었다. 언제 찾아와도 아름다운 게 내장산이다.
같이 간 친구가 두리번거리며 단풍나무를 찾았다. 그는 10여 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다. 살았을 때 같이 와 사진을 찍었는데 그 나무가 보고 싶단다. 옛사랑이 그리워 찾고 싶은 것일 게다. 오래 된 기억을 더듬어 비슷한 나무를 찾았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내와 같이 찍은 사진과 견주어 보고 확인하고 싶어서다. 이제 그 나무를 찾으면 무얼 하나. 사람은 벌써 가고 없는데…….
설악산 불은 이제 꺼져가고, 치악산 불이 한창일 게다. 적상산 불은 내장산보다 더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남쪽의 피아골은 좀 있어야 한창이겠지. 이 산 저 산 불구경이나 하며 살았으면 싶다.
( 2009. 10. 26. )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불이야!”
소리를 지를 번했다. 첫눈에 들어온 빛깔이 너무도 붉어 정말 불이 난 것 같았다. 올해 단풍이 다른 해에 비해 고와서 그러는지 틀림없이 불이 난 것 같았다. 같이 간 일행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참 잘 왔다고 탄성이었다. 일찍 갔기에 아직 9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서 표를 사고 있었다. 아름다운 단풍을 보려는 마음은 누구나 같은 모양이다.
전국의 산들을 고루 찾아다닌 팀이라 부지런하기도 하여 아침 8시에 전주를 출발했다. 주차가 어려우리라 짐작하고 남보다 먼저 갔다. 그런데 위 주차장은 벌써 만원이어서 음식점 앞에 겨우 차를 세웠다. 들어가는 입구의 단풍은 아직 볼 것이 없었으나 매표소를 지나니 아주 달랐다. 길가의 단풍은 물론이고 산기슭의 단풍이 불이 난 것 같았다. 완전히 불이 붙은 것은 아니고 70% 정도 타고 있었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조물주가 조화를 부려 붉은 물과 노랑 물, 갈색 물을 고루 들이지 않았으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해에도 와 봤지만 올해의 단풍이 더 불타는 것 같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서래봉을 향했다. 단풍나무가 빨간 손바닥을 흔들며 어서 오라고 반겼다. 사이사이에 서 있는 전나무도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우리를 맞았다. 시원한 공기가 뱃속까지 들어와 도시에서 찌든 찌꺼기를 걸러 내는 것 같았다. 상쾌한 등산로다. 정상에 서니 산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온 산이 불타는 모습이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불이 붙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우리에게 주신 조물주께 감사했다. 어디 어디 단풍이 곱다 해도 이 내장산 단풍만은 못하다. 설악산 단풍이 아름답다 하나 산과 조화를 이루어서 그렇지 단풍 자체만 치면 내장산을 따라올 수 없다.
바위틈이지만 손바닥만 한 자리를 찾아 둘러앉았다. 정상주를 부어 건배를 했다. ‘우리 모두 내장산 단풍을 위하여’ 하고 한 잔씩 마셨다. 온 몸이 쩌르르 했다. 얼큰히 취기가 오르니 내가 신선이 된 것 같았다. 신선은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지내니 오래오래 산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시끌시끌한 세상을 잊고 이런 곳에서 산다면 마음고생 할 일은 없을 게다.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 같았다. 신선이 되어 이런 곳에서 꼭 1년만 살았으면 좋겠다.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비켜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불타는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고간다. 경상도의 억센 말소리도 들리고 아랫녘의 된 소리도 난다. 충청도의 느린 가락도 사이사이 섞인다. 이 말 저 말, 이 소리 저소리가 섞여 합창을 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구경나온 어른도 있고, 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도 있다. 온 가족이 같이 오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고, 애인끼리 손잡고 걷는 모습도 보였다.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아름다운 곳을 찾아 몸과 마음을 쉬는 것은 내일을 위해 좋은 일이려니 싶다.
옛날에 승용차가 없을 때 기차로 백양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백양사에 간 일이 있었다. 경내의 단풍을 구경하고 약사암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 뒤 걸어서 내장사로 넘어 왔었다. 유군치에서 내려다 본 단풍은 일품이었다. 그 때는 젊었으니 걸어서 넘는 데도 즐겁기만 했었다. 한 번은 아내와 같이 계곡에서 장군봉에 올랐다. 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자꾸 미끄러졌다. 한 발 옮기면 두발은 물러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어이 올라 신선봉을 거쳐 까치봉으로 내려 온 일도 있었다. 언제 찾아와도 아름다운 게 내장산이다.
같이 간 친구가 두리번거리며 단풍나무를 찾았다. 그는 10여 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다. 살았을 때 같이 와 사진을 찍었는데 그 나무가 보고 싶단다. 옛사랑이 그리워 찾고 싶은 것일 게다. 오래 된 기억을 더듬어 비슷한 나무를 찾았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내와 같이 찍은 사진과 견주어 보고 확인하고 싶어서다. 이제 그 나무를 찾으면 무얼 하나. 사람은 벌써 가고 없는데…….
설악산 불은 이제 꺼져가고, 치악산 불이 한창일 게다. 적상산 불은 내장산보다 더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남쪽의 피아골은 좀 있어야 한창이겠지. 이 산 저 산 불구경이나 하며 살았으면 싶다.
( 2009. 10.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