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김길남
2009.12.05 13:36
동행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혼자 가는 길이라 같이 앉을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혼자 앉게 되면 넓어서 편하지만 몸집이 큰 사람이 앉으면 불편하다. 남자는 어깨가 넓어 같이 앉으려면 서로 한쪽으로 약간 기울게 앉아야 할 때도 있다. 작은 여자가 앉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내 뜻과는 전혀 다르게 뚱뚱한 남자가 와서 앉았다. 오늘은 편히 서울까지 가기는 틀린 것 같다. 선택하여 앉는 것이 아니므로 별 수 없었다. 우연히 같이 앉게 되는 사람이 하루의 운수를 좌우한다.
오늘은 몇 시간만 같이 가는 사람이라 조금만 참으면 된다. 등산친구는 하루를 같이하고, 외국을 여행할 때는 여러 날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동행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맞아야 즐겁고 편안하다. 회갑기념으로 중국 여행을 할 때는 시골 사람들이 많아서 잘난 체하는 사람이 없어 좋았다. 캐나다 여행을 할 적에도 같이 가는 사람들이 따뜻하여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KT미주지사장 가족과 미국대학교 교환교수 가족, 캐나다에서 개업한 치과의사 식구 등이 같이 갔는데 서로 위해주고 도와주려고 하여 참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럽을 여행할 때는 고급관리를 지낸 사람과 사장 몇이 같이 갔다. 거드름을 피우는 바람에 섞여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았다. 그만큼 동행하는 사람은 중요하다.
학창시절의 은사님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은사님을 만나 내가 한 평생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는 가르침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는 방철종 선생님이 나를 아껴 주셨다. 큰 뜻을 품게 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일기를 쓰도록 가르침을 주셨다. 5학년 때 시작한 일기는 평생을 썼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뉘우치고 올바른 길을 걸어 왔다. 가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 졸업사진도 그냥 주셨다. 내가 수필을 쓰고 대한문학에서 신인상을 받은 것도 은사님의 일기쓰기 가르침 덕이라 여겨진다.
또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신 김귀중 선생님도 잊을 수가 없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었는데 은사님께서 학비를 감면해 주시고 다시 배움의 길로 나오게 하셨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평생 농사꾼으로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은사님들의 은혜를 잊고 있다. 그 뒤 어디 계시는지 연락도 못하고 말았다. 지금은 연세가 높으셔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 같다. 늦게나마 삼가 영전에 죄를 빌고 싶다.
선택하는 동행인 중에는 배우자가 있다. 그 배우자는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잘 만나 행복하게 살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쁜 사람을 만나면 고생이 막심하다. 마음고생, 몸 고생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즘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이혼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어찌 한 번 맺은 인연을 쉽게 끊을 수 있겠는가. 세계 3대 악처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샨티페가 있다. 남편의 언동이나 학자로서의 생활을 이해 못하였다. 지식과 의식 수준의 차이가 있었고, 인간적인 근본 성격이 괴팍하며 자기중심적 아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부 싸움 중 퍼붓는 아내의 독설에 응대를 하지 않으니 화가 난 크샨티페가 설거지 물통을 들어 던지자,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천둥이 친 뒤에 비가 오는 법이지. 그건 자연의 진리라네.”
라 했다 한다. 해학적인 진리와 철학이 묻어나는 이야기지만 그 순간 참느라 얼마나 고뇌가 심했을까.
현대그룹을 창설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정주영 회장은 현모양처를 만나 현대가를 이끌어 가는데 큰 힘이 된 분이다. 그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고 도량이 넓어 시동생은 물론 많은 아들딸들을 소리 없이 거느렸다 한다. 생활이 검소하여 옷차림을 보고 가정부로 오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대가 한창 번성할 때는 대가족이 아침 5시에 서울 청운동 집에 모여 식사를 했는데 그 밥상을 손수 차렸다는 것이다. 반려자를 잘 만나 일생을 행복하게 산 증거다. 아마 아내의 내조가 없었으면 그렇게 큰 기업을 이루었을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나는 26세에 아내와 결혼하였다. 올해로 50년째라 내년이면 금혼식이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고 고생도 많이 시켰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 농촌으로 시집을 와서 서툰 농사일도 해야 했고, 밥하는 법도 모른 채 시집을 와서 살림살이를 하느라 고충이 심했다. 얄팍한 월급봉투를 가지고 아들딸 다섯을 대학까지 가르치느라 애썼다. 부족한 아이들 용돈에 보태려고 한복 바느질까지 하였다. 그래도 내 호주머니는 항상 용돈이 두둑이 들어 있었다. 남자가 나가서 쓸 돈이 없으면 기가 죽는다는 까닭이었다. 물론 가볍게 쓰지는 못했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고맙기 짝이 없다. 나는 동행을 그런대로 잘 만난 것 같다.
하늘이 맺어준 동행 중에는 자손들이 있다. 아들딸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부모의 가정교육에 달려 있다. 다섯이나 둔 자녀들이 다행히 제 나름대로 성장하여 사회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니 부모로서 마음이 든든하다. 자식이 여럿이면 그중에 잘 못된 아들도 있기 마련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하는 일이 연속 실패만 하여 고생하는 아들도 있다. 그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무엇이 부족하여 그렇게 되는지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요즘은 전화도 하지 않고 오고가지도 않으니 모르는 게 약인가?
손자들도 10명이나 되는데 모두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다. 위로는 대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다. 그런대로 공부도 잘 하는 편이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초‧중‧고등학교도 열심히 잘 다니고 있다. 아픈데도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라 더 좀 잘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살면서 배우자를 만나는 것 같이 중요한 일은 없다.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우리나라 사람으로만 치더라고 수 만분의 1이고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헤아려 보면 수백만 분의 1이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선택한 사람이 아내인데 잘 못된 만남도 많으니 참 운명적이다.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도 내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자신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존재인가. 사람마다 좋은 점도 있고 부족한 면도 많있기 마련이다. 모두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자라는 면을 서로 채워주고 양보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동행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게 되면 또 어떤 동행을 만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2009. 12. 6. )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혼자 가는 길이라 같이 앉을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혼자 앉게 되면 넓어서 편하지만 몸집이 큰 사람이 앉으면 불편하다. 남자는 어깨가 넓어 같이 앉으려면 서로 한쪽으로 약간 기울게 앉아야 할 때도 있다. 작은 여자가 앉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내 뜻과는 전혀 다르게 뚱뚱한 남자가 와서 앉았다. 오늘은 편히 서울까지 가기는 틀린 것 같다. 선택하여 앉는 것이 아니므로 별 수 없었다. 우연히 같이 앉게 되는 사람이 하루의 운수를 좌우한다.
오늘은 몇 시간만 같이 가는 사람이라 조금만 참으면 된다. 등산친구는 하루를 같이하고, 외국을 여행할 때는 여러 날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동행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맞아야 즐겁고 편안하다. 회갑기념으로 중국 여행을 할 때는 시골 사람들이 많아서 잘난 체하는 사람이 없어 좋았다. 캐나다 여행을 할 적에도 같이 가는 사람들이 따뜻하여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KT미주지사장 가족과 미국대학교 교환교수 가족, 캐나다에서 개업한 치과의사 식구 등이 같이 갔는데 서로 위해주고 도와주려고 하여 참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럽을 여행할 때는 고급관리를 지낸 사람과 사장 몇이 같이 갔다. 거드름을 피우는 바람에 섞여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았다. 그만큼 동행하는 사람은 중요하다.
학창시절의 은사님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은사님을 만나 내가 한 평생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는 가르침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는 방철종 선생님이 나를 아껴 주셨다. 큰 뜻을 품게 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일기를 쓰도록 가르침을 주셨다. 5학년 때 시작한 일기는 평생을 썼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뉘우치고 올바른 길을 걸어 왔다. 가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 졸업사진도 그냥 주셨다. 내가 수필을 쓰고 대한문학에서 신인상을 받은 것도 은사님의 일기쓰기 가르침 덕이라 여겨진다.
또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신 김귀중 선생님도 잊을 수가 없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었는데 은사님께서 학비를 감면해 주시고 다시 배움의 길로 나오게 하셨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평생 농사꾼으로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은사님들의 은혜를 잊고 있다. 그 뒤 어디 계시는지 연락도 못하고 말았다. 지금은 연세가 높으셔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 같다. 늦게나마 삼가 영전에 죄를 빌고 싶다.
선택하는 동행인 중에는 배우자가 있다. 그 배우자는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잘 만나 행복하게 살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쁜 사람을 만나면 고생이 막심하다. 마음고생, 몸 고생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즘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이혼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어찌 한 번 맺은 인연을 쉽게 끊을 수 있겠는가. 세계 3대 악처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샨티페가 있다. 남편의 언동이나 학자로서의 생활을 이해 못하였다. 지식과 의식 수준의 차이가 있었고, 인간적인 근본 성격이 괴팍하며 자기중심적 아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부 싸움 중 퍼붓는 아내의 독설에 응대를 하지 않으니 화가 난 크샨티페가 설거지 물통을 들어 던지자,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천둥이 친 뒤에 비가 오는 법이지. 그건 자연의 진리라네.”
라 했다 한다. 해학적인 진리와 철학이 묻어나는 이야기지만 그 순간 참느라 얼마나 고뇌가 심했을까.
현대그룹을 창설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정주영 회장은 현모양처를 만나 현대가를 이끌어 가는데 큰 힘이 된 분이다. 그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고 도량이 넓어 시동생은 물론 많은 아들딸들을 소리 없이 거느렸다 한다. 생활이 검소하여 옷차림을 보고 가정부로 오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대가 한창 번성할 때는 대가족이 아침 5시에 서울 청운동 집에 모여 식사를 했는데 그 밥상을 손수 차렸다는 것이다. 반려자를 잘 만나 일생을 행복하게 산 증거다. 아마 아내의 내조가 없었으면 그렇게 큰 기업을 이루었을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나는 26세에 아내와 결혼하였다. 올해로 50년째라 내년이면 금혼식이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고 고생도 많이 시켰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이 농촌으로 시집을 와서 서툰 농사일도 해야 했고, 밥하는 법도 모른 채 시집을 와서 살림살이를 하느라 고충이 심했다. 얄팍한 월급봉투를 가지고 아들딸 다섯을 대학까지 가르치느라 애썼다. 부족한 아이들 용돈에 보태려고 한복 바느질까지 하였다. 그래도 내 호주머니는 항상 용돈이 두둑이 들어 있었다. 남자가 나가서 쓸 돈이 없으면 기가 죽는다는 까닭이었다. 물론 가볍게 쓰지는 못했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고맙기 짝이 없다. 나는 동행을 그런대로 잘 만난 것 같다.
하늘이 맺어준 동행 중에는 자손들이 있다. 아들딸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부모의 가정교육에 달려 있다. 다섯이나 둔 자녀들이 다행히 제 나름대로 성장하여 사회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니 부모로서 마음이 든든하다. 자식이 여럿이면 그중에 잘 못된 아들도 있기 마련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하는 일이 연속 실패만 하여 고생하는 아들도 있다. 그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무엇이 부족하여 그렇게 되는지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요즘은 전화도 하지 않고 오고가지도 않으니 모르는 게 약인가?
손자들도 10명이나 되는데 모두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다. 위로는 대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다. 그런대로 공부도 잘 하는 편이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초‧중‧고등학교도 열심히 잘 다니고 있다. 아픈데도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라 더 좀 잘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살면서 배우자를 만나는 것 같이 중요한 일은 없다.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우리나라 사람으로만 치더라고 수 만분의 1이고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헤아려 보면 수백만 분의 1이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선택한 사람이 아내인데 잘 못된 만남도 많으니 참 운명적이다.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도 내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자신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존재인가. 사람마다 좋은 점도 있고 부족한 면도 많있기 마련이다. 모두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자라는 면을 서로 채워주고 양보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동행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게 되면 또 어떤 동행을 만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2009. 12.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