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집

2018.08.26 18:59

김학 조회 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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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집

김학


나는 시골의 아담한 기와집에서 태어났다. 남향받이 네 칸 겹집인데, 우리 동네에서는 유일한 기와집이었다. 방은 세 칸이었고, 가운데엔 큰 대청이 있었다. 앞엔 긴 마루, 동쪽 작은방 앞과 대청 뒤쪽에는 작은 쪽마루가 있었다. 몸채 오른쪽 헛간채엔 외양간과 곡식을 보관하는 광 그리고 측간(厠間)도 있었다. 왼쪽 사랑채에도 방 세 칸과 대청이 있었다. 그 사랑채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동네사랑방이 되었다. 쇠죽을 끓이는 방이어서 방은 언제나 펄펄 끓었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조그만 방죽이 있었고, 그 방죽은 무궁화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그 곁 바깥헛간채엔 돼지우리와 측간 그리고 나무창고가 있었다. 우리 집은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안채 마루에서 앞을 바라보면 나의 모교 삼계초등학교와 산제당(山祭堂)이 보였다.
우리 집은 터가 넓어서 과일나무도 많았다. 커다란 배나무 두 그루를 비롯하여, 감나무, 앵두나무, 추자나무, 모과나무, 석류나무 등이 있어서 철따라 과일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여름이면 매미들의 노랫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고, 마당은 어미닭이 병아리들에게 먹이 주워 먹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장이었다. 병아리들은 마당에서 곡식 낟알, 풀잎, 벌레 등을 먹으며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똥개 누렁이는 몸채 부엌 앞에서 편한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병아리들의 산책 모습을 지켜보며 여유를 즐겼다. 외양간에서는 큰 암소가 한가롭게 되새김질을 하며 우리 집 마당 풍경을 감상했다.
나는 그 집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전주로 이사하는 바람에 그 집을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집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비가 내리고 눈이 와도 걱정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전주로 이사를 한 뒤부터 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셋방, 전셋집을 옮겨 다니며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셋방살이를 하다가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니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고향 기와집을 팔고 전주에 단독주택을 마련하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전주로 이사를 온 뒤 지금의 아파트에 정착하기까지 무려 열네 번이나 보금자리를 옮겨 다녔다.
고향에 살 때는 기와집 그 한 집에서만 정착생활을 했는데, 전주로 이사를 한 뒤부터는 유목민처럼 자주 이사를 다녔다. 아파트는 어느 곳이나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없는 주거지다. 빈터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기와집은 지금 옛날 그 자리에 없다. 옮겨지었기 때문이다. 그 많던 과일나무들도 행방불명이다. 집터는 그대로 그곳에 있지만 내가 살던 그 분위기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사진으로라도 남겨둘 걸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사람들에게만 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물들도 살 집은 있어야 한다. 누에는 비록 열흘을 살지만 고추란 집을 짓고, 제비는 여섯 달을 살지만 제비집을 짓는다. 까치는 한 해를 살다가 버리지만 까치집을 짓는다. 그들이 집을 지을 때는 저마다 온갖 힘을 따 쏟는다.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추를 만들고, 제비는 침을 뱉어 진흙을 반죽하여 집을 지으며, 까치는 열심히 풀이나 지푸라기를 물어다가 나무 위까지 옮기노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진다. 그렇게 힘들게 집을 짓는다. 다산 정약용은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했을까? 관찰력이 뛰어난 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런 글을 남겼을 게 아닌가?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집은 없는 법이다. 그 유명한 삼국시대를 돌이켜 보라. 위풍당당하던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왕궁이 어떻게 되었는가? 왕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그 궁터가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허무한 일이다.
내가 태어난 옛집이 사라졌다고 하여 안타까워 할 일은 아닌 성싶다. 그 집은 그래도 내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또 내 수필 속에 그대로 살아있으니 말이다.
(2014.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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