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족사진

2018.09.03 05:53

최정순 조회 수:4

어떤 가족사진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최 정 순

 

 

 

 

  새벽을 깨우는‘까똑까똑’카카오톡의 노래 소리에 눈을 뜬다. 스마트폰에는 30십여 개나 되는 앱이 깔려 있다.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카톡 친구까지 합하여 370여 명이나 된다. 왜 이렇게 많은지는 나도 모른다.    

 

  컴퓨터로 하던 일을 지금은 거의 스마트폰으로 한다. 메일도 읽고 메시지도 보낸다. 수첩에다 기록했던 애들 생일, 주소, 온라인번호 등을 Q메모앱에 저장도 하고, 중요한 자료나 사진 등은 갤러리 창고에 쌓아 놓았다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 쓴다. 그 중에서도 카카오톡은 나의 일상생활이다. 스마트폰과 처음 사귈 때는 손이 맞지 않아 많이 터덕거렸다. 사귀고 보니 이런 친구를 어디에서 만나리. 우리는 이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모르는 것을 물으면 척척박사에다 성격도 좋아 백 번을 물어도 한결 같다. 한 가지 장점이랄까 흠이라면 융통성이 없고 한 치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다는 점이다. 이 글도 내 딴에는 잘 쓴 것 같은데 무엇을 건드렸는지‘덮어쓸까요.’라고 한 번 묻더니 그냥 날아가 버렸다.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이곳저곳 다 뒤져봐도 흔적이 없다. 생각컨대 게으름을 빌미로 내 기억력을 갉아먹고 사는 놈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더 좋아하는 친구라 매일매일 붙어 지낸다. 이런 내가 스마트폰 인생인가?

 

  가끔 다른 사람 카톡방에 들어가 사진이며 좌우명을 읽는 재미로 무료한 시간을 심심치 않게 보낸다. 꽃이나 경치, 손자 손녀의 사진, 아니면 독사진이나 가족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올여름 같이 무더운 날 밍크목도리로 칭칭 감고 찍은 사진을 보며 김 언니한테‘지금 알라스카에 있는겨?’농담을 청했지만 지금까지 대꾸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K교수님 카톡방 앞에서 눈길이 멈췄다. 십 원짜리 동전만한 동그라미 안에 14명이나 되는 식구들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확대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하얀 양탄자 위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맨발로 3대가 서서 찍은 사진이다. 가족내력을 모르는 사람이 이 사진을 보았다면 이 분은 아들만 셋인가? 딸만 셋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하트모양을 그리는 모습, 반바지차림에다 야구방망이와 글러브를 낀 손자들의 모습,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잔잔한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보이는 모습, 할배 할매는 오른손과 왼손을 서로 포개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자식이란 울타리 가운데 기둥처럼 서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윤항기의 노랫말처럼‘나는 행복합니다.’를 연출하고 있는 장면 같았다.

 

 ‘가족사진’하면 상징적인 몇 가지가 떠오른다. 한복이나 양복차림을 하고, 근엄하게 안락의자에 앉은 부모님을 자녀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찍은 사진이 사진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런 사진을 응접실 중앙에 명화처럼 걸어 놓았었다. 그런데 K교수님 가족사진을 보고 더욱 놀란 것은 맨발이었다. 의자에 앉지도 않았다. 한복이며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도 하지 않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화사하면서도 편안한 복장에다 아주 자연스럽게 찍은 가족사진을 여지껏 본 일이 없다. 세련되어 보였다. 오죽하면‘가족사진이 정말 멋져요.’라고 카톡을 쐈을까. 이 이야기는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아들 중에 하나는 미국에서 산다던데 식구 14명이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까? 미리 계획된 일일까, 아니면 가족대사기념사진일까? 콘테스트에 출품을 목적으로 찍었을까? 부러움과 궁금증을 자아냈다. 사진 한 장 속에서 혈육으로 이어지는 끈끈한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를 맛에 비한다면, 향긋하고 달콤한 복숭아 맛 같다.  

 

  몇 년 전부터 사진을 찍으려고 날짜를 잡았건만 작은아들이 갑자기 출장으로, 큰손자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일 때는 추석에 할매집에 오지도 못했다. 가족 13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날짜만 잡다가 이제는 재가 넘어버렸다. K교수님 가족사진을 보면서 부러운 나머지‘가족사진은 이렇게 찍는 거야!’라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그 시절의 상황을, 천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보았다. 이산가족들이 빛바랜 가족사진을 들고 나와 혈육을 찾는 모습에서, 만약에 사진이 없었다면 그 상황을 무슨 말로 어떻게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사진은‘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란 꽃말을 가진 주목나무의 삶과 꼭 닮았다. 가는 세월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이다. 예를 들어 60년 전 사진이라면 그 순간부터 시간이 멈췄으니까. 고로 사진을‘함축된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범인을 찾을 때도 몽타주Montage를 만들지 않던가? 한 번은 여권사진을 찍으려고 아는 사진관에 갔더니 가게가 없어져 버렸다. 필름을 사고 현상을 했던 일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그렇다고 사진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주목나무처럼. 현대감각에 뒤떨어진 느낌이어서일까? 무슨무슨 스튜디오studio를 찾아야지 사진관이란 간판은 찾기 힘들다.    

 

  15년 전에 일산 호수공원 옆 프로방스라는 카페 앞에서 11명이 찍은 사진이 유일한 우리 집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잠자던 기억들이 고개를 쳐든다. 그 시절의 일들이 차근차근 되살아난다. 내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에 깔려있다. 이때는 막둥이 아들이 혼인하기 전이라서 둘째며느리와 아홉 살짜리 손녀 하랑이가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 몇 주 전에 손녀 하랑이가 제 아빠랑 여름손님으로 우리 집에 왔었다. 컴퓨터 화면사진을 보더니 왜 자기는 여기에 없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게 제 아빠냐고 묻더니만,

 “아빠는 그때도 배가 나왔다!

불룩 나온 자기 배를 들숨으로 숨기려는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응접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랑이 덕에 모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할머니 이름이‘ㅊ ㅈ ㅅ’이냐고 물었다. 안방 책상에 놓인『속 빈 여자』를 봤다며 병아리 이야기는 있는데 자기 이야기는 왜 없느냐고 했다. 얼른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궁색한 변명으로 얼버무렸다. 하랑이한테 한 방 얻어맞고 나니 더위에 지친 내 정신이 번뜩 깨어난 것 같았다. 이번 추석엔‘여름손님’이 오기 전에 바탕화면 사진을 하랑이 돌 때 찍은 사진으로 바꿔야 할까보다.  

                                             (2018.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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