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과 5분의 차이

2018.08.30 05:46

박제철 조회 수:3

20년과 5분의 차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

 어느 땐가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TV드라마에서 나왔던 대화의 한토막이다. 집안이 시끄러울 때면 주인공인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삶과 주검이 뒤범벅이 된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가를 다시 한 번 떠 올리게하는 데는 이만한 말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아이구 밀지 마세요! 이러다 넘어지겠네. 육이오 때 난리가 따로 없구먼. 여기가 난리네.

전북 임실에 소재한 고춧가루공장의 판매장에서 일어난 대화의 한 토막이다. 이 고춧가루 공장은 임실지역의 고추재배 농가와 계약재배를 하여 물량을 공급 받는다. 그 고추를 세척부터 건조 과정을 거처 고춧가루로 생산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소비자에게 공개하며, 최고 품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그것이 입소문을 타고 퍼져 전주는 물론 전국에서도 오고 전화 한 통화면 대한민국 어느 곳이던 택배로 보내준다.

 

 나는 지난해에도 그곳에서 고춧가루를 사왔다. 판매원이 오후에는 투어버스가 와서 혼잡하니 다음에 오실 때는 오전에 오라고 했다. 판매 첫날,  느긋한 마음으로 11시경 고춧가루 공장엘 갔다. 주차되어있는 차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얼른 차에서 내려 아내와 같이 판매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의 줄이 한참이나 늘어서 있으며, 판매장 입구에는 건장한 남자가 번호표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입장순서가 되어 판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에 30여 명을 들여보내고 그 인원이 거의 빠져나올 때면 다시 30명을 들여보냈다.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필요한 만큼 담아 계산하고 나오면 되었다. 그런데도 고춧가루가 떨어질까봐 서로 먼저 담느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정말 난리였다.

 

 고춧가루공장이 6.25때 난리장터기 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성싶었다. 한 가지는 혹독한 더위와 가뭄 속에 고추값이 많이 오를 거라고 앞을 다투어 보도하는 언론과, 또 하나는 공장이 쌓아올린 고춧가루의 품질 만족에 따른 소비자의 판단이다. 언제부터 입소문이 났는지 지난해에도 고춧가루가 일찌감치 소진되어 늦게 사려는 사람들은 살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번에는 그런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첫날부터 몰려들었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이렇듯 신용사회다. 신용이 없다면 아무리 고추 값이 오른다 해도 이렇게 소비자가 몰리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신용 하나 만으로 소비자가 직접 해외의 상품까지도 구매하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농부도 자기가 생산되는 농산품을 명예를 걸고 인터넷으로 사고파는 세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은행은 신용만 있으면 대출도 해준다.

 

 아내는 가끔 인터넷쇼핑을 한다. 나는 특히 옷은 쇼핑 물에서 사지 말고 직접 상가에서 입어보고 구매하라고 권하곤 한다. 예전에 할부로 물건을 구입했다가 교환하거나 환불받으려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바꾸어 주지 않았던 기억 때문이다. 허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다. 입어봐서 맞지 않으면 돌려보내고, 체형에 맞는 것으로 바꿔 보내라고 하거나 구매를 취소하면 된단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으며, 건강과 신용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고 한다. 신용은 개인이나 사회, 국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그런 경쟁력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귀갓길에 옥정호 주변 드라이브를 했다. 시선이 자꾸 길옆의 고추밭으로 가는 것은 왜일까? 고추가 탄저병도 없이 잘 된 것처럼 보였다. 괜히 언론보도에 현혹되어 비싼 고추를 산 것은 아닐까? 신용을 잃고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란 긴 세월이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위렌 버핏의 명언을 머릿속에 궁굴리면서 말이다.

                                                                                   (20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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