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단상

2018.08.28 07:11

최기춘 조회 수:2

은발의 단상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최기춘

 

 

 

 

 거울에 비친 은발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60세까지만 해도 흰 머리가 별로 없었는데 고희를 넘긴 지금은 은발 머리로 변했다. 고희란 두보의 곡강시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비롯된 말이다. 두보가 활동하던 1200년 전에는 70세면 오래산 나이지만 지금은 평균 수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나이다. 그래도 나이가 70이 넘으면 달마다 늙는다고 한다. 갈 길이 그리 멀지않았음을 알 수 있는 나이다. 고희는 인생 4계절의 가을, 해질녘의 저녁노을,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과 비교된다.  

 

 가을 산에 올라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판을 바라보면 풍요로움을 느낀다. 이른 봄부터 농부들이 씨뿌리고 가꾼 땀의 결실이다. 가을은 수확의 기쁨도 크지만 왠지 마음 한켠이 허전해지는 계절이다. 가을밤에 우는 풀벌레소리는 유난히 구슬프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밝은 달빚을 바라보노라면 옛 생각이 많이 난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도 엉뚱한 옛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홀아비나 홀어미들은 옆구리가 더욱 시리는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한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한낮의 태양보다도 더 뜨거울 것 같이 이글거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에 묻힐 것을 생각하면 허망하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도 머지않아 나무와 작별하고 뿌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곱게 물든 단풍잎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봄부터 붙어 있다가 떨어지려면 이별의 아쉬움이 있을 법한데 작별할 때  이별의 아쉬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무와 잎은 이미 이별의 약속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즐거운 파티에라도 가려는 모습으로 곱게 차려입고 소슬한 가을바람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작별한다. 그간 꼼짝못하고 한 곳에서 붙어 지낸 한을 풀려는 듯 하늘높이 올라 너울너울 춤을 추며 유유자적 세상구경을 하려는 듯 긴 여행을 떠나는 방랑자를 연상케 한다. 고추잠자리와 경쟁이라도 하듯 공중제비를 돌며 어디론가 가버리는 녀석들도 있다. 제 갈 길을 못 찾고 자동차기 씽씽 달리는 도로위를 딩구는 낙엽들의 모습은 처량하다. 얌전한 새색시마냥 한 눈도 팔지않고 사쁜이 뿌리로 내려 앉아 효심을 다하려는 듯 알몸이된 나무의 뿌리를 감싸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뿔뿔히 흩어지는 것 같아도 제 뿌리에 내려앉은 낙엽이 많다. 그래서 낙엽귀근(落歸根)이라 했나 보다.

 

 낙엽은 봄과 여름엔 푸르름과 녹음으로 산에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린다. 가을이면 노랑색과 빨간색으로 멋진 수를 놓기도 한다. 뿌리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뿌리를 감싸고 누워 알몸으로 엄동설한을 외롭게 보내는 나무들에게 바스락거리며 옛날 애기도 해주며 따뜻한 이불이 되어 준다. 봄이면 섀싹을 티우는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기도 한다. 낙엽이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오묘한 섭리에 찬사를 보낸다.

 어린시절 곱게 물든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워 두었다가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봉투에 넣어 보내기도 하고, 창문을 바를 때 창문에 한 장 붙혀놓았던 생각이 난다. 낙엽처럼 살고 싶다. 멋있고 아름다운 무니를 그리며 살고싶다. 

                                                (2018.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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