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연봉

2018.11.28 05:12

정남숙 조회 수:7

할머니의 연봉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일을 하고 보수(報酬)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0년 전, “선생님, 이제 아이들 한 번 가르쳐 보시죠?

 귀향하여 농장을 가꾸며 틈틈이 서원(書院)에 들러 한자사범(漢字師範)과 훈장(訓長)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원장님이 권하셨다. “아직은” 하며 가르칠 실력(實力)이 아니라며 겸손을 떠는 나에게 충분하다며 '노인복지관(人福祉館)'에 한 번 가 보라고 했다. 노인복지관에서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노인복지관을? 일을 해?' 나는 속으로 ‘내가 왜 복지관엘 가’ 하며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남편이 하는 사업에 일손을 거들면서도 내 몫을 따로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활에 지장이 없었기에 불평 없이 살 수 있었고,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할머니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할머니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 중 이 분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까지 다방면으로 모르는 게 없었다. 다른 사람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느냐고 묻는 나에게, 그는 우쭐대며 노인복지관 얘기를 했다. 본인도 평범한 할머니였는데 노인복지관에 다니다 보니, 노래를 부르고, 춤을 배우는 것은 기본이며, 이런 상식적인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래요?” 하며 응대를 해주니 더욱 신이 나서, 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뉴스를 전해주었다. 별로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며, 전문가 수준도 아니니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되지만, 그와 헤어지고나면 괜히 얌전한 할머니를 부끄러움도 모르고, 주책을 떠는 떠들이로 만든 주범(主犯)이 노인복지관인 것 같아 그의 변화를 보며 노인복지관을 탓하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도 노인복지관에 관심이 없었고, 갈 일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 해, 재능(才能)나눔 자원봉사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마지막 날 지원서를 들고 노인복지관을 찾았다. 며칠 뒤, 다시 만난 복지관직원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추후 일정을 알려주었다. 단 한 번 나를 봤을 뿐인데 나를 기억하고 내 이름까지 불러주다니, 그 동안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노인복지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리고, 내 마음은 반가움과 신뢰감까지 덤으로 받아들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노인복지관 현관을 나서다 뒤돌아보니, 아무 의미 없이 일자리 자원봉사만 원해 들어갔던 복지관 건물이, 처음부터 나를 기다리며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변화에 나도 놀라고 말았다.

 

 나에게는 손자손녀 셋이 있다. 그 중 하나밖에 없는 손자가 여름방학을 끝나자, 출국을 며칠 남기고 인사차 전주로 내려왔다. 한 달 방학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손자다. 학비며 생활비 등에 제 부모의 등이 휠 테지만, 나는 할머니로서 의무감으로 적은 용돈만 통장에서 성의 없이 꺼내주며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손자에게

 “할머니도 연봉 받는다.  

당당하게 의시대며 연봉자랑을 했다. 내 연봉의 절반이라며 봉투에 두둑이 현금을 찾아 놓았던 것이다. 옆에 있던 제 어미가 ‘할머니 일 년 수고하신 보수’라며 허투루 쓰지 말고 할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할머니 수고와 사랑을 잊지 말라 덧붙인다.

 

내가 받는 연봉은, 1일 세 시간, 1, 열흘 30시간, 1년 중 9개월 동안만 일할 수 있는 노인 일자리에서 받는 보수의 총계를 말한다. 매월 십일조를 떼고, 남은 금액을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에, 첫 일자리 일 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손자손녀에게 할머니의 사랑으로 인심을 쓸 수 있게 해준 나의 귀한 연봉이다. 비록 손자에게 전에 주던 용돈보다 액수는 적을지라도, 내 수고로 받아 고이 모아온 돈이기에 전해주는 보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뿌듯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막내 손녀를 기대이상으로 축하 할 수 있어 내가 더욱 행복했고, 성적이 올라 좋아하는 큰 소녀에게도 용돈을 주려했으나 제 용돈도 충분하니 할머니 용돈으로 쓰라며 한사코 사양했다.  

 

 과거 노인들은, 젊었을 때 고생했으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말을 듣기 원했다. 그러나 요즘 노인들은 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모든 노인들은 일하고 싶어 한다. 원하는 노인들이 일할 수 있도록 노인들이 ‘1년 내내 일할 수는 없는지?’ 늙으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는 말이 있다. 품위 있는 노년의 보람찬 삶을 위해 일하는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일자리와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연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뒤늦게 노인복지관을 찾게 되었는지 때 늦은 후회도 해 보지만, 이제라도 연봉을 받으며 보람 있는 일자리를 마칠 수 있어 덕진노인복지관에 감사한다.

 

 내가 덕진노인복지관에 가입한지 1년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일자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회원으로 가입도 하지 않은 채 재능나눔봉사를 했다. 복지관 담당의 권유로 회원으로 가입하고 일자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수도 받을 수 있었다. 올해 초딩으로 첫 일자리에 참여하여 내 수고와 내 이름으로 받은 보수는, 액수와 관계없이 내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의미 있는 소중한 일이었다. 나의 연봉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덕진노인복지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 것만 같다.

                                                                      (2018.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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