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만 자는 가로등

2018.11.29 22:56

홍성조 조회 수:6

낮에만 자는 가로등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홍성조

 

 

 

 

 어둠이 깃든 시각에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어둠속에 빛을 뿜어대는 가로등 불빛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 볼수록 더욱 더 아름다웠다.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등대불 처럼 말이다. 뿌연 안개 속에 새하얀 빛을 사방으로 분사하는 것을 바라보니, 후광을 등에 업고 있는 천사처럼 보였다. 인생길을 점쳐주는 주술사와도 같았다. 주위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가로등은 더욱 더  돋보였고, 나의 앞길이 저 불빛처럼 환하게 빛나기를 빌어 보았다.

 

 지난번 우리 아파트 동대표회의에서 아파트 북쪽 담장 길을 따라  천 미터 길이의 황토 길을 조성하기로 결의했다. 예전에는 흙과 자갈로 어지럽게 되어있는 그 길이 비만 오면 수령이 되어 다니기가 매우 불편했다. 공사는 바로 시행되었고 가로등도 설치되었다. 그 길이 만들어진 뒤 새벽 5시쯤이면 주민들이 앞 다투어 걷기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빨간 황토길로 되어 있어 걷기에도 무척 편했다. 점점 동이 트기 시작하면 가로등은 태양빛에 밀려 잠을 자기 시작한다. 관리실에서 스윗치 하나 내리면  모든 가로등이 꺼진다. 일전에 어느 신문에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강의가 끝난 뒤 강의실 전등을 끄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응당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이 나갈 때는 불을 끄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내 것이 아니라고 무관심한 요즘 젊은이들을 보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할 수 없이 대학당국이 내놓은 고육책이리라.

 

 오후 6시쯤 가로등이 켜지면 그때부터 가로등은 자기 임무를 시작한다. 낮에 가로등은 실컷 잠을 자고, 인간이 자는 동안 가로등은  불침범을 선다. 또 밤중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는데도 일조를 한다.  새벽기도에 다니는 어르신, 새벽 청소를 하는 환경미화원, 이른 아침 산책하는 선량한 주민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반려자이다. 허지만  도둑들은 제일 싫어하리라.

 

 가로등은 아파트의 파수꾼이다. 가로등끼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한다. 가로등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해찰도 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자기 임무를 마친다. 세찬 강풍에도 몸을 움츠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마디 불평도 없다. 오로지 주민들의 안전만을 위할 뿐이다. 새벽녘에는 밤사이 고생한 탓으로 피곤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주민들의 안전을 지켰다는 뿌듯한 보람도 느낄 것이다.

 

 기존 가로등의 수명은 9년이다. 유통기간이 지나면 힘이 빠져, 눈이 침침하여 가물가물 할 것이다. 그 때는 다른 동료들로 교체해주어야 한다. 9년 동안의 주민 치안을 지켰다는 보람에도 불구하고 힘이 빠지면 인간들은 가차 없이 바꿔버린다. 인정사정없이 말이다. 인간들이 너무 매정하다. 그동안의 정이 있는데도 말이다.

 

 만일에 가로등이 밤에 깜박 졸았다면, 어떠했을까? 우선 야간 운전자들의 교통대란이 발생할 것이고, 절도나 강도들이 제 세상처럼 활개를 칠 것이며, 사람들이 공포심을 느껴 거리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침묵의 밤, 암흑의 밤이 될 것이다.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다. 이런 가로등에 대한 고마움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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