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행기(2-4)

2019.03.22 14:24

김학 조회 수:6

미얀마의 황금사원

-태국여행기②-



미얀마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미얀마를 버마라 부를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나라 이름이 바뀌고 아웅산 수지라는 여성이 정치 일선에서 이름을 날리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더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뿐이 아니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이 아웅산국립묘지를 방문했을 때 북한 공작원의 테러가 발생했었다. 당시 대통령을 수행했던 장차관, 수석비서관, 대사, 대통령 주치의, 기자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그 아웅산 장군 묘지 오른쪽에 ‘대한민국 순국 사절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 국민은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공부를 했던 조명택 수필가가 2006년에 미얀마의 수도 양곤으로 가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꼭 한 번 그 나라에 가보고 싶었다. 그 조 선교사가 가끔 보내주는 메일을 보면 우물을 파주거나, 교회를 세우고, 유치원을 건립하며, 고아원과 양로원을 운영하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시설이 미비한 학교에 책걸상을 만들어 주고, 텔레비전과 정수기 그리고 도서와 성경도 기증하는 등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 선교사는 한글학원과 컴퓨터교실 운영, 학원사역, 빈민가사역, 돼지나 소, 염소 등 가축분양, 한국유학 알선 등 상상 이상으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 선교사가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 뿌린 기독교의 씨앗이 머지않아 싹이 트고 자라서 미얀마에 울창한 기독교 숲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조명택 선교사는 첫수필집 『섬김의 향기』에 이어 2014년 8월 30일, 『내가 살아야 하는 진짜 이유』란 제목의 두 번째 수필집을 출간했다. 그 수필집을 보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미얀마에서 혈혈단신 선교사로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필집 화보를 보니 그의 활동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바쁜 그 와중에도 미얀마 말을 익혀서 양곤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미얀마에 가보고 싶겠는가?

불교의 나라인 미얀마에서 기독교 선교활동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 선교사는 이따금 귀국하면 그가 우리나라로 유학을 보낸 제자들을 순방하면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미얀마에 뼈를 묻고 싶다는 조명택 선교사는 늘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3월 1일부터 6일까지 5박6일 동안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 여행기회가 와서 선뜻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일정을 보고 나는 당연히 라오스나 미얀마에서도 하룻밤쯤 머물며 관광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잠은 모두 태국에서 자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태국관광 셋째 날, 우리 일행은 미얀마 황금사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미얀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태국 치앙라이에서 1시간쯤 버스를 타고 가니 미얀마 국경도시인 타킬렉에 닿았다. 버스는 태국에 남겨두고 미얀마 입국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미니트럭을 개조한 8인승 쏭태우를 타고 황금사원으로 달렸다. 우리나라의 승용차형 택시와는 전혀 달랐다. 모든 택시는 반 트럭으로서 짐칸 양쪽에 4명씩 8명이 탈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차를 택시라며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가이드에게 양곤에서 이 황금사원까지는 얼마나 먼 거리냐고 물으니 750km쯤 될 것이라고 했다. 전주에서 개성 정도의 거리가 아닌가? 나는 미얀마 땅을 밟았지만 조 선교사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말았다. 아쉽기 짝이 없었다.

황금사원에 이르러 사원의 불상을 보니 온통 황금색으로 도색되어 있어서 눈이 부셨다. 그 외모도 무척이나 웅장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불상 정면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입구에는 양산을 펼쳐든 소년소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황금사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한 사람씩 붙어서 양산을 펼쳐서 햇볕을 가려주고 1달러씩 받는다고 했다. 햇볕이 따가운 낮이어서 그런 서비스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이는 싫다고 거절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상급생쯤으로 보이는 소년이 달라붙었다. 그 소년은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았다.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고 했다. 나는 그 소년에게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라고 덕담을 건네주었다. 그런 뒤 2달러를 주었다. 1달러만 주어도 고마울 텐데 2달러나 주었으니 그 소년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 소년과 사진도 몇 장 찍고 헤어졌다. 나는 그 소년이 미얀마의 큰 인물이 되기를 빌었다. 황금사원을 두루 구경하고 다시 태국으로 나왔다. 이제 라오스로 간다고 한다. 황금의 삼각지대 골든 트라이앵글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로선 하루에 세 개 나라를 돌아다니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 날이다.

태국과 형제의 나라, 라오스

-태국여행기③-

태국의 북부 치앙마이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치앙라이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백색사원에 도착했다. 황금색 불상과 사원만을 보다가 백색사원을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백색사원의 건물이며 탑들이 온통 하얀색 일색이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건물이 잘 어우러져 몹시도 산뜻했다.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 백색사원은 태국의 아티스트 찰름 차이가 설계하여 1997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건축물이라고 했다. 찰름 차이는 부처의 순수를 흰색으로 표현했으며, 본당으로 가는 둥근 다리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뜻한다고 했다. 지붕위의 코끼리와 나가, 백조, 사자 등 네 마리의 동물은 지구와 물, 바람, 불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또 아우성치는 듯 손을 휘젓고, 죽은 듯 무표정한 사람의 얼굴 등은 기괴하기 짝이 없어 마치 아비규환의 지옥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다리 위의 건물은 바로 극락을 의미하는 본당이다.

눈부시게 하얀 사원은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져 몹시도 아름다웠다. 이 백색사원을 지은 찰름 차이는 개인 돈으로 이 사원을 지었다는데, 앞으로도 계속 조금씩 짓는다고 하니, 태국에 갈 때마다 이 사원을 찾아보면 자꾸 달라지는 백색사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백색사원 한쪽에 세워진 허원비(許愿碑)는 비록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 것 같았다. 백색사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어서 사진 한 컷 찍는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불교의 나라를 둘러보니 안경 낀 관광객은 많은데,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안경 낀 불상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관광객들은 가는 곳마다 불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를 하고, 향로에 향불을 피우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를 이어 전해온 불심(佛心)을 엿볼 수 있었다.

백색사원을 둘러본 뒤 태국과 형제의 나라라는 라오스로 갔다. 황금의 삼각지대 골든트라이앵글은 미얀마, 태국, 라오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바라본 세 나라의 모습은, 지도상으로는 세 나라지만, 우리의 눈엔 한 나라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우리는 메콩강에서 모두 안전조끼를 입고 롱테일 보트를 탔다. 우리 일행 17명을 태운 보트는 황토색 메콩강 강물을 헤치고 신나게 미끄러져 갔다. 여러 대의 보트가 달리다 보니 마치 보트 경주를 하는 것 같았다.

보트에서 내려 라오스 돈사오성 국경마을을 둘러보았다. 또 타킬렉시장을 구경하다가 까무잡잡한 라오스 맥주를 마셨다. 그 라오스 맥주는 우리나라 맥주와 달라서 더 마시고 싶지 않았다.

카렌족 마을에 줄지어 늘어선 시장을 구경했다. 상점마다 비슷비슷한 상품들을 팔고 있었다. 어떤 상점에서는 여인들이 직접 베를 짜고 있기도 했다. 이 마을 여성들은 목을 길게 늘이려는 듯 누리끼한 쇠줄로 목을 칭칭 감고 있었다. 보기엔 무척 불편할 것 같은데 그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의 룸메이트 이상선 씨는 이곳에서도 여러 가지 상품을 샀다. 아들이 특별히 부탁한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는 확실히 쇼핑의 명수였다. 들르는 곳마다 무언가 물건을 샀다. 어디선가는 3만 원짜리 짝퉁시계를 사서 왼쪽 팔목에 차고 다녀 웃음을 자아냈다.

라오스 관광을 마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태국의 치앙마이로 돌아와 또 2시간 동안 전통 마사지를 받았다. 따뜻한 물로 발을 깨끗이 씻겨주고 시작한 마사지는 피로를 풀어주는데 그만이었다. 날마다 받는 마사지라서 그런지 이번 태국여행은 마사지를 받으러 온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한국식당에서 태국산 돼지 삼겹살과 상추를 안주 삼아 한국산 소주를 곁들이니 기분이 참 좋았다. 비록 외국에 나왔지만 내 입맛은 한국에 있을 때나 다르지 않았다.

마사지의 나라, 태국

-태국여행기④-

5박6일의 태국여행은 마사지만 받다가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흘 동안이나 날마다 2시간씩 마사지를 받았으니 말이다. 또 태국에서 나흘 밤을 잤는데 사흘 밤이나 Holiday inn Hotel에서 잤다. 관광객 본위가 아니라 여행사 위주로 일정을 짠 탓이다.

태국의 3대 폭포라는 와치라탄폭포를 보고 국왕과 왕비의 장수 기원탑을 구경했다. 왕과 왕비의 탑이 따로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생전에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렇게 탑을 분리해 놓은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거대한 탑을 두 개나 만들지 말고 하나의 탑에 왕과 왕비 부부를 모시면 예산도 절감되고 보기에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따라 높은 뾰죽 탑을 물로 청소하느라고 일꾼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 날 오전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산상의 사원 도이수텝을 둘러보고, 역대 란나왕조의 납골탑을 모셔놓은 수완득사원도 구경했다. 또 세계 최고의 수질을 자랑한다는 산캄팽 룽아룬 온천에서 온천욕을 했다. 온천은 시설이 낡아 온천기분이 들지 않았다. 온천탕은 모두 1인용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시골 목욕탕 수준도 되지 않았다. 이런 온천탕을 세계 최고의 온천이라며 외국 관광객들에게 소개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체험한 야외온천탕과 대중탕이 그리웠다.

마을 사람들이 우산을 만들어 파는 우산공예방을 찾았다. 그곳에 비하면 전주의 우산공방은 한 수 위가 분명했다. 우산의 모양새나 색상 그리고 제품의 질이 전주산 우산을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오후에는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몇 군데 판매장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또 네 번째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태국에서 마사지는 기업이나 다를 바 없었다. 치앙마이에서 받은 마사지는 네 번 모두 다른 업소를 찾았다. 그러니 태국의 수도 방콕을 비롯한 유명 관광지도 마찬가지로 마사지가 성행할 게 아니겠는가?

저녁식사를 한 뒤 귀국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너무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예정에 없던 뮤지칼 극장으로 안내되었다. 우리가 감상할 작품은 <MIracle(기적)>이었다. 예쁜 남녀 성악가들이 화려한 무대복 차림으로 아름다운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주었다. 화려한 공연이어서 그런지 객석은 빈틈없이 관광객으로 들어찼다.

마지막 장면이 몹시도 극적이었다. 어떤 미녀 출연자가 객석으로 내려와 하필 나를 지목하더니 무대로 안내하여 의자에 앉히고 미희들이 나를 빙 둘러쌌다. 어떤 무희는 내 안경을 벗기고 눈가리개를 씌우더니 나를 감싸 안으며 비벼대는 게 아닌가? 객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내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회갑기념으로 일본 후쿠오카에 갔을 때였다. 북해도 민속촌에 들렀다가 연극을 보게 되었는데, 그 연극에서는 남자 주인공 한 사람을 객석에서 뽑아서 활용하게 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도 내가 지명되어 무대로 올라가니 주인공 옷을 입히고 부채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 부채에는 내가 연극에서 해야 할 대사가 적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예기치 않게 일본에서 연극배우로 데뷔한 적이 있었다.

치앙마이국제공항에서 밤 11시 15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KE668호에 올라 55D에 앉았다. 귀국한다니 기분이 좋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할 때부터 회상해 보았다. 한두 번 출국한 게 아니지만 이번에는 내 지문(指紋)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남들처럼 심하게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내 손가락의 지문이 왜 제대로 찍히지 않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동행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늙으면 지문도 지워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두 손을 펼쳐놓고 지문을 바라보았다. 역시 손바닥의 지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역시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손바닥의 지문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여인천국, 싱가포르에서는 지금

김 학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끝 섬들로 이루어진 도시국가다.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넓은 641평방킬로미터요, 인구는 고작 460만밖에 되지 않은 조그만 나라다. 하지만 1965년 8월 독립한 뒤 리콴유 초대 수상이 정치를 잘하여 오늘날엔 GNP가 3만 달러나 되는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였다.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전부터 싱가포르에서는 씹던 껌을 함부로 버려도 안 되고 침도 아무데서나 뱉으면 안 된다고 들어서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만큼 깨끗하게 환경을 잘 관리하는 나라구나 싶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싱가포르는 공원처럼 잘 가꾸어진 나라였다.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6월 7일 오후 7시 25분.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 이치훈 씨는 싱가포르는 젊은 부부가 아들딸만 생산활 수 있을 뿐 모든 것을 다 외국에서 수입하여 살아간다고 소개했다. 농산물, 수산물, 공산품 등 모두 수입한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또 여인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했다. 어느 나라 여인이나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그런 일을 주부가 하지 않고 방글라데시나 이웃 말레이시아 여인들을 고용하여 부려먹는단다. 우리 일행은 딸들을 싱가포르로 이민 보내야겠다며 웃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이야기를 계속 쏟아냈다. 2012년까지 싱가포르 택시들은 모두 우리의 현대자동차로 교체하게 된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싱가포르의 지하철은 모두 우리나라의 건설회사들이 시공했는데 확장될 지하철도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맡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땅굴파기 하면 삼성건설이 최고라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싱가포르는 동서의 길이가 42킬로미터요 남북이 23킬로미터다. 아주 조그만 섬이지만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중계무역항이다. 이 싱가포르에서는 담배 한 값에 만 원이고 소주 한 병에 2만 원이라니 어지간한 월급쟁이라면 금연과 금주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이드는 싱가포르 야경을 구경하려면 30달러씩 내라고 했다. 그러나 옛날 홍콩야경이 유명하다하여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 대동소이할 것 같아 그냥 호텔에서 푹 쉬기로 했다.

이튿날 오전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라는 쥬롱 새 공원(JURONG BIRD PARK)을 찾았다. 처음엔 모노레일을 타고 잘 가꾸어진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다양한 새들이 무리를 지어 노닐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뒤 새들의 공연장(POOLS AMPHITHEATRE)에서 갖가지 새들의 공연(Allstar bird show)를 구경하였다. 두루미, 잉꼬, 앵무새, 펭귄, 독수리 등이 나름의 묘기를 보여주어 관광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조련사들과 새들의 교감을 보면서 먹이를 미끼로 가르치면 새들도 묘기를 보여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쥬롱 새 공원에는 멸종위기에 있는 새 12종을 비롯하여 600종 9천 마리의 새들이 자유롭게 서식하고 있다고 했다. 쥬롱 새 공원은 새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문득 미국에서 보았던 인디언보호구역이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유일까?

이어서 싱가포르 국립식물원을 둘러본 뒤 40분쯤 버스를 타고 국경을 건너 말레이시아 조호바로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말레이시아민속공연을 관람하고 회교사원을 구경한 뒤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이튿날 우리 일행은 약 2시간 동안 싱가포르 시내관광에 나섰다. 머라이언 파크에서신축중인 거대한 빌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지면에서 최고 52도 기울어져 '21세기 건축의 기적'이라 불리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호텔이 착공된 지 2년여 만에 완공되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타워브리지,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싱가포르의 세계적인 랜드마크 건축물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이 빌딩은 우리나라 쌍용건설이 시공했는데 이 빌딩의 오픈 행사에는 여러 나라에서 취재기자만 무려 1,200여 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빌딩은 21세기 피사의 사탑이라고 부른다던가.

이 호텔은 지하3층, 지상55층에 3개 동의 객실 2,561개를 갖추고 있다. 지상에서 최고 52도 기울어져 올라가는 동쪽건물이 지상 70미터(23층)에서 서쪽 건물과 연결돼 55층까지 올라가는 들 입자(入)형 구조로, 현존하거나 설계‧시공 중인 세계 건축물 가운데 최고 난이도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52도의 건물 기울기는 '피사의 사탑' 기울기(5.5도)의 10배에 가깝다. 또 호텔 3개 동의 옥상을 연결하여 축구장 2개 규모의 거대한 공원을 만든 것도 특징이란다.

건물을 저렇게 삐딱하게 짓다가는 곧 무너질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던 싱가포르 사람들이 지금은 역시 한국 건설업체가 최고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운다고 한다. 이 공사비는 6억 8천 6백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9천억 원이니 우리나라의 해외건축물 수주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인가? 싱가포르에서는 우리나라의 주가가 날로 치솟는 것 같아 흐뭇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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