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락질하는 사람들

2019.03.23 15:05

최기춘 조회 수:12

호락질하는 사람들

                                                             최기춘

 

 

 

 

  농사를 짓고 살던 시절 우리 동네는 100여 호나 되는 큰 동네였다. 샘 건너, 바람 굴, 남밖에, 양반 모골, 뒷 고샅으로 여러 개 뜸으로 나뉘어 있었다. 인심도 좋고 이웃 간에 정도 돈독했고, 협동도 잘 되었다. 정월 대보름이나 칠월백중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당산제도 지내고 농악놀이를 하며 뜸 별로 줄다리기도 했다. 술과 음식도 자주 나눠 먹으며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다. 논에 물을 대려고 막은 보도 많았다. 윗 독도리 보. 아랫 독리 보. 배래미 보. 사남 보. 섬빠지 보가 있었다. 보매기는 많은 사람들이 협동으로 했다. 농사일을 할 때도 거름내기, 못자리, 모심기, 타작 등 힘든 일은 품앗이로 했다. 품앗이는 같은 나이 또래, 이웃, 같은 들에서 전·답을 짓는 사람끼리 등 각양각색이었다. 농한기 때는 사랑방에 모여 새끼도 꼬고 멍석도 만들며 온갖 놀이를 즐기며 재미있게 살았다.

 

 이렇듯 오순도순 재미나게 사는 동네에서 어울리지 않고 매사를 혼자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서 농사일을 고독하게 하는 사람을 호락질한다고 했다. 호락질하는 사람들은 농사일만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노는 사랑방에도 나오지 않는다. 마을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일에도 도통 모르쇠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락질하는 사람들은 특색이 있었다. 생활수준이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농기구도 웬만한 것은 다 갖추고 있어 남의 집에 빌리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농사일도 무슨 일이나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렇게 호락질하는 사람의 삶을 지금 생각해보아도 별로 좋지 않다. 그들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늙어서 배우자를 잃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은 보기만 해도 측은하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여행도 하고, 명절도 혼자 보내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혼자 사는 젊은이들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능력 없는 젊은이들은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와 같이 사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 한다. 능력 있는 젊은 청춘남녀가 연애나 결혼도 포기하여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면 농사짓던 시절 호락질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능력이 있어 혼자 살면 남의 간섭받지 않고 맘껏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것 같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은 만성질환, 우울증, 자살충동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혼자 살다 보면 결국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양이나 개와 같은 반려동물을 기른다. 늙고 병들어 오갈 곳도 없고 찾아오는 이도 없는 독거노인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집에 들어가도 아무도 반겨주는 이가 없을 때 반려동물이라도 있으면 다소 위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랑하는 가족들이 서로 반기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즐거운 나의 집」 이란 동요를 연상해보라. 가정을 포기하고 반려동물과 사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말리고 싶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이 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하고 후회하는 편이 좋다. 호락질하는 삶보다 더불어 사는 삶이 따뜻하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요즘 얄팍한 상혼이 혼자 사는 것을 부추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 생산에 대기업까지 앞장서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대기업에서는 이윤추구만 생각할게 아니라 혼족들에게 데이트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이벤트를 하면 기업 이미지가 크게 향상되려니 싶다.

 

 출산율이 떨어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미세먼지보다 더 걱정되는 문제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지만 결혼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사회 현상이 더 우려스러운 일이다. 혼족이 늘어나지 않도록 언론과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인 것 같다.   

                                                           (201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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