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2019.10.06 05:24

김길남 조회 수:7

 우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수필강의를 듣고 오는 길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주룩주룩 내려 우산을 받고 걸었다. 안행로로 접어드니 어떤 남학생이 비를 맞으며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비를 맞으며 걸은 일이 생각났다. 우산이 없어 눈비를 맞으며 시오리를 걸은 일이 많았으니 그 고생이 어땠을까?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우산은 참 편리한 도구다. 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사람이나 물건이나 모두 가려준다. 비가 내릴 때 우산이 있으면 든든하다. 마음 편히 일을 보게 된다. 생활도구는 살아가는데 많은 이로움을 준다. 오랜 기간 살아오면서 자연이 주는 어려움을 도구로서 막았다. 어려움을 막아주는 그 역할이 참으로 소중하다.

 우산을 받고 걸으며 문득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들딸이 비를 맞을 때 나는 우산이 되어 주었던가? 튼튼하고 질 좋은 우산이 아니더라도 찢어진 우산이라도 되어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쥐꼬리 만한 봉급으로 5남매를 기르려니 아쉬움이 많았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그 일이다. 온갖 눈비를 막아주지 못한 것이 한이다. 그 아이들이 모두 성장한 뒤 들려준 눈비 맞은 이야기가 내 가슴을 쳤다.

 큰아들이 광주에서 대학교에 다녔는데 겨우 하숙비와 차비밖에 주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방에 가서 차 마시고 당구 치러 다닐 때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얼마나 기가 죽었을까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같이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어떻게 참았을까? 친구들이 외톨이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르고, 숙맥불변이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참고 견뎌준 아들이 고맙다. 우산없이 소나기를 맞힌 기분이다.

 큰딸이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때 서울에 사는 제 고모 집에 다니러 간 일이 있었다. 나들이를 하려니 학생복 외에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고모의 딸이 입던 것을 작다고 보내준 일이 있는데 그 옷을 입고 다녀 왔다. 그 집에서 준 옷을 입고 그 집에 갔으니 얼마나 기가 죽었을까? 다녀와서 기분이 안 좋고 우울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좋은 옷 한 벌 제대로 입히지 못한 게 미안했다. 항상 맑은 날이었으면 좋으련만 궂은 날이 많았다.

 그 시절은 너나나나 거의 비슷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용돈을 주지 못했다. 고정된 봉급으로 생활하려니 양식을 준비하고 반찬값을 주며, 등록금을 나누어 주면 남는 것이 없었다. 지금이라면 용돈을 두둑이 줄 수 있는데 그 때는 그렇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잘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들 눈비를 가려주지 못한 걸 생각하니 내가 맞은 비는 저리가라다. 나도 시대를 잘 못 만나 비를 많이 맞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양식이 떨어져 만주에서 나오는 뜬 콩깻묵을 배급 받아 삶아 허기를 면했다. 한국전생 때는 3일을 굶어보기도 했다. 끼니를 끓이지 못하니 중학교도 장기 결석을 했었다. 중학교 때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지 못해 점심을 굶었다. 일해서 돈을  벌려 해도 벌이를 할 곳이 없었다. 지금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라의 형편이 그러했으니 그 때는 그렇게들 살았다. 아무리 눈바가 거세어도 가려줄 우산이 없었다.

 아들딸들에게 하지 못한 일을 손자손녀에게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오는 손자손녀에게는 용돈을 낫게 주었다. 끝 손자들에게는 어린이날에 꼭 용돈을 보내주었다. 세배할 때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세뱃돈을 더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손자손녀들은 그 마음을 모를 것이다. 보모에게 못해 준 것을 저희들이 받는다고 생각하겠는가? 단지 나의 마음일 뿐이다.

 요즘은 아들딸에게도 용돈을 줄 만큼은 된다. 그런데 때를 놓쳤다. 후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잘 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할 뿐이다. 아이들도 손자손녀에게 훌륭한 우산이 되어주며 산다. 이제는 우산이 없어 비를 맞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2019.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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