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도 이런 친구가

2019.10.11 05:13

박제철 조회 수:4

내 곁에도 이런 친구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금요반 박제철

 

 

 

 

 

 가을하늘을 일러 청명(淸明)한 가을하늘이라 한다. 내 주변에는 가을하늘만큼이나 청명한 친구가 한 분 있다. 며칠 전 그 친구 집으로 교수님을 비롯하여 우리 금요반 문우가 대추를 따러 갔었다. 두 번의 태풍에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탐스런 대추가 많이 열려 있었다. 대추나무 아래 망을 깔고 일부는 장대로 털고 일부는 떨어진 대추를 주워 담았다. 그 친구,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났는지 이 나무도 따고 저 나무도 따라며 손수 장대를 휘둘러 대는 것이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대추를 공평하게 나누고 점심까지 준비하여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음식점은 한적한 시골마을의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든 비교적 작은 음식점이었지만 손님이 많았다. 손님이 많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별함이 있다. 그 친구, ‘맛있는 흑임자죽은 무한 먹을 수 있고, 식자재도 직접 길러 사용한다’며 자기의 음식점인 양 음식자랑 하기에 열심이었다.

 

 그 친구를 추켜세우는 것은 대추 따고 점심 사주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그 친구의 지금까지 삶에 대하여 잘 모른다. 어릴 때부터의 친구가 아니고 수필공부를 하면서 만난 친구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지금 보고 느끼는 것은 남에게 베풀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매년 가을에는 대추를 따서 나누는가 하면 초여름이면 하지감자, 한여름에는 양파를 캐고 나누는 즐거움도 같이한다. 어디 그뿐인가? 이른 봄에는 봄 향기가 물씬 풍기는 두릅을 따오기도 하며, 문학여행길에 오를 때면 잘 익은 홍시를 따와서 즐거움을 같이 나누기도 한다.

 

 엊그제는 고향마을 향우회가 있었다. 그 친구와 같은 고산면에 살고 있는 선배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하여 그 친구를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니, 동생이 어떻게 그 사람을 아는가? 그 사람 고산어우 보() 옆에 사는데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여! 그리고 고산면에서 무슨 크고 작은 행사만 있으면 열 일을 제쳐놓고 달려와서 사진 찍고 행사에 물질적 도움도 많이 주는 사람이여! 고산 사람치고 그 사람 모르는 사람 없고 부처님 가운데토막이라고도 하네.

 

 착하고 어진 사람을 일러 우리는 부처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불법이나 재물을 베푸는 것을 보시(布施)라 한다. 이러한 보시에는 남에게 베풀었다는 상()이 남아있는 유상(有相)보시와 베풀었다는 생각조차도 없는 무상(無相)보시가 있다. 유상보시는 거름을 과수에다가 흩어주는 것과 같고 무상보시는 거름을 한 뒤 흙으로 묻어주는 것 같다고 한다. 기왕에 하려면 무상보시를 해야 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무상보시는커녕 유상보시도 하기 어렵다. 설령 보시를 했다 해도 대가를 바라거나 내가 베푼 만큼 주지 않으면 원망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며, 나이가 들수록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은 자주 열어야 한다고 한다. 즉 남을 배려하며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것이 베풂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베풀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베풀고 싶지만 베풀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물건으로 베푸는 것만이 보시가 아니다. 말로 상대방에게 힘을 주는 것도 베풂이고 보시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하지 않던가?

 

  그 친구가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기부하거나 베풀어서 청명한 가을하늘이라고는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크고 작은 것을 베풀어도 베풀었다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어야 부처의 마음이라고 한다. 나눔의 즐거움을 알고 더 못 나누어서 항상 아쉬움을 같고 산다니, 그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 아닐까? 마을에서 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인연을 잘 만나야 한다는데 어찌 그런 친구와 인연이 되었을까? 그런 친구가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아직은 살맛나는 세상이고 행복이 아닐까 싶다. 티끌 하나 없는 가을하늘아래 티끌하나 없는 베풂의 한 수를 가르쳐준 김재교 문우가 고맙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2019.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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