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서재 만들기

2019.10.11 07:42

정성려 조회 수:4

나만의 서재 만들기

신아문예 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정성려

 

 

 

 

 요즘 나는 나만의 서재를 꾸밀 생각에 밤마다 까만 천장에 그림을 그린다.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대를 이어 살아온 오래 된 한옥을 허물고 새집을 지을 때처럼 부풀어 있다. 셋째딸이 몇 개월 후에는 결혼을 한다. 그러면 넓은 집에 남편과 둘만 살게 된다. 당연히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세월이 너무 빨리 도망 간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다. 어머님과 딸 넷, 그리고 우리 부부, 일곱 식구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살 때는 요즘 핵가족시대에 보기 드문 대가족이었다. 일곱 식구가 오랜 세월 함께 살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딸들도 하나씩 출가하면서 우리 부부 둘만 남게 되었다. 세월 참 빠르다.

 

 우리 집은 방이 세 개다. 막내가 지난해에 결혼한 뒤, 우리 부부와 셋째딸이 각각 방2개를 사용하고 1개는 옷을 보관하는 드레스 룸으로 사용한다. 셋째가 결혼하면 방 한 개가 또 남는다. 그 방을 서재로 꾸며 사용할 생각이다. 방마다 각자 책장이 있다. 그래도 책들이 넘쳐 방을 정리하다보면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문인활동을 하다보니 쌓이는 것이 책이다. 주기에 맞춰 발간되는 동인지나 작가님들의 주옥같은 글을 모아 엮은 수필집과 시집들이 우편으로 배달되어 온다. 수필수업이 있는 날은 금방 출간된 따끈따끈한 새로운 수필집들을 교수님께서 주신다. 돈으로 계산하면 수강료보다 책값이 더 많다. 이런 책들이 모여 책 부자가 되었다. 나름 작은 도서관과 복지관, 북 카페 등에 기부도 했다. 그래도 많은 책들이 나의 재산이다. 방마다 있는 책장에 꽂아 두지만 많아서 책장 옆에 쌓아 놓기도 할 정도다. 문득 생각나는 책을 찾아보려면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한참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언젠가는 서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어린 시절, 옹기종기 우리 세 자매가 좁은 방을 함께 사용했었다. 그 시절은 어느 집이건 마찬가지였지만 요즘처럼 아파트가 아닌 넓지 않은 전통 기와집이었다. 우리 집도 그런 기와집이었다. 우리 세 자매가 사용하는 방은 넓지 않은 작은 방. 방에는 고작 책상 하나와 옷장이 전부였고, 책가방 세 개는 책상 옆에 나란히 놓아야 했다. 책가방은 항상 그 자리였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세 자매가 눕는데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나란히 잘 놓아야 했다. 그 시절 동화책이나 문학서적은 생각지도 못했고, 교과서와 노트뿐이지만 책꽂이에 칸을 정해놓고 동생들과 함께 사용했다. 책상은 막내동생이 차지했고, 큰동생은 접이식 밥상을 펴놓고 공부했다.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땐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세자매가 책상을 동생에게 양보하며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공부했다. 가끔 자매가 없이 혼자인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부럽기도 했다. 혼자 독방을 차지하고 여유롭게 사용하는 친구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서재는 벽장이었다. 아버지는 서당공부를 많이 하셨다. 지금처럼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서 서당 훈장님의 책을 보고 인쇄가 아닌 필사를 한 것이다. 벼루에 물을 붓고 까만 먹을 갈아 붓으로 어려운 한문을 깨알 같이 써서 책으로 엮어 공부를 하셨다. 깨알 같이 쓴 많은 책들이 아버지의 재산이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정의 가보가 되었다. 가끔 그 책을 보면 아버지가 너무도 자랑스럽다. 낮에는 논밭에서 힘들게 일을 하시고 밤에는 벽장문을 열고 책을 꺼내어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아버지는 서당공부를 많이 하신 덕에 철학적인 부분도 잘 아셨던 것 같다. 해가 바뀌어 정초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러 오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따분해 하며 거절을 하셨지만 지인들이 사정을 하시면 어쩔 수없이 벽장에서 책을 꺼내어 봐주셨다. 때로는 동네 사람들이나 지인들이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아버지에게 작명을 부탁하러 오기도 했다. 나를 비롯하여 동생들과 사촌동생들 이름까지 모두 아버지가 지어 주셨다. 우리 딸들도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부천에 사는 둘째딸 집에 갔다. 꽤 넓은 아파트다. 서재를 둘러보았다. 사위가 사용하는 서재다. 아담하게 꾸며 놓은 서재는 욕심이 날 정도였다. 새 아파트라서 더 멋스러워 보이고 심플하고 좋았다.

 언제부터 내가 서재에 관심을 가진 걸까? 오래 전에는 관심도 없던 게 서재였다. 아니 책을 읽는 것조차도 게을리 했던 나였다. 10년 전 우연한 계기로 수필과 만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작가들의 책이 쌓이고 수필을 알고 난 뒤부터인 것 같다. 나만의 서재에서 조용히 떠오른 글감을 실타래처럼 줄줄 끌어내어 멋진 글을 쓰고 싶다.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서재로 옮기고 책상도 새것으로 들여놓고 싶다. 방에 있는 책과 책장도 서재로 모두 옮길 것이다.

 잠시 중단하고 밀쳐놓은 캘리그라피 도구들도 서재로 옮기고. 나이 들어 일을 놓으면 여유 있고 편하게 글을 쓰고 붓글씨도 쓰며 지내련다. 나만의 서재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나만의 서재에서 멋지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 날을 생각하니 그냥 기분이 좋다.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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