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아이들의 가을 나들이

2019.10.11 15:54

최인혜 조회 수:10

칠순 맞는 아이들의 가을 나들이

                 

    꽃밭정이 수필 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 창작 수요반 최 인 혜

                                                      

 

  태풍 ‘타파’가 서해안에 근접해오고 있다는 기상예보를 듣고도 우리 전주사범부속초등학교 2611명 동창생은 용감했다. 서울에서 25인승 미니버스를 빌려 타고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전주종합경기장에 아침 0820분에 도착했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터인데 모두 쌩쌩하다. 1년 만에 다시 만나는 날인데, 비가 온들 어떻고 바람이 분들 어떠랴.

  나를 비롯한 전주 친구 8명이 버스에 오르자 손을 잡아끌고 악수를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서로 안부를 살피느라 부산했다. 초등학교 동기동창들이 모이면 체면 같은 건 어디다 팽개쳤는지 찾아볼 수도 없다. 70노인들이 금세 어린이로 변해 엣날 별명도 나오고 웃음소리도 한없이 높아진다. 예뻐졌느니 살이 빠졌느니 훨씬 여유가 있어 보인다느니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차창밖엔 비가 억수로 퍼부어 바깥 경치를 볼 수 없어도 차 안의 풍경은 화기애애 그 자체다. 옆자리 친구와 어릴 적 이야기, 엊그제 이야기, 뒷자리의 친구를 돌아보느라 고개가 돌아가도 힘든 줄 모른다. 거의 한 갑자(甲子), 60년 세월을 거슬러 기억을 퍼 올려 웃고 떠드는 칠순의 아이들이다. 차 안은 어느새 그 시절의 교실로 변한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여기저기서 저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떠벌이느라 시끄러운 그런 교실 풍경이다.

  모두 즐겁고 신이 났지만, 장수군 출신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던 운전석의 기사님은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부산하게 흔드는 와이퍼 사이로 거북목을 하고 앞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태풍이 오는 빗속 길을 달리는 운전기사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철없는 아이들이 되어 떠드는 칠순 노인들 때문에 운전하기도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가 워낙 세차게 퍼부어 창밖을 볼 수 없으니 경치에 눈을 팔 일도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 친구 저 친구의 얼굴을 보면 새롭게 기억나는 이야기가 튀어나와 웃음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선유도란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도(仙遊島), 바다와 섬, 갈매기를 기대했으나 쏟아지는 빗줄기만 차창밖으로 보일 뿐이다. 내리는 비와 바람뿐인 선유도를 뒤로하고 당초 목적지인 비응항으로 향했다. 보이는 것은 퍼붓는 빗줄기였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60년 전의 사범부속학교 개구쟁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열리고 지난 기억이 조금씩 되살려지면서 재미있는 추억의 갈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다 보니 비응항에 도착했다.    

  비응항 횟집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친구들의 모습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은 그 작고 여린 사람들을 어른으로 자라게 하고,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했지만, 얼굴에 잔주름을 가득 그어놓고, 검은 머리를 백발로 만드는 조화를 부려놓았다. 걸음걸이가 불편한 친구, 장거리 여행에 허리가 아프다는 친구, 오래 앉아있었더니 다리에 쥐가 났다는 친구도 있었다.

  식당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보며 각자가 그 시절에 지녔던 특징과 기억 속의 모습을 오늘의 얼굴에 오버랩해가며 다시 이름을 부르고 손을 맞잡아 기쁨을 두 배로 더했다각자의 뇌리에 새겨져 있는 모습들에 “그래, 맞아, 저 친구 그 모습 그대로네?” 라며 이구동성 맞장구를 치고 깔깔거리는 우리는 천진난만한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전주에서 버스에 타지 못한 친구 2명이 승용차편으로 찾아오고 군산에서 친구 1명이 추가로 합류하여 전체 인원은 22명이 되었다. 남자가 14명 여자가 8명이었다.

 

  특히 ‘선주’라는 친구는 대화 가운데 어떤 친구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집의 특이한 구조와 친구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했다. 친구의 모습이나 성격상 특징을 짚어내기도 하고 무엇을 대접받았다는 것까지 소상하게 떠올렸다. 그 오랜 시간을 거슬러 세밀한 내용까지 그대로 풀어내는 재주에 감탄할 수밖에…. 우리는 그 친구를 ‘돋보기 눈’을 가진 친구라고 별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사물을 명확히 꿰뚫어 보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거의 사실에 가깝게 기억해내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인정해 주었다.

  전주 평화동에 사는 ‘이정기’라는 친구는 ‘숀 코넬리’라는 미국 영화배우를 좋아한다며 그 배우의 복장을 하고 모자까지 비슷하게 써서 멋을 부렸다. 평화동에 ‘이정기 빌딩’이라고 명패를 붙인 독특한 건물을 지어 유명해진 그 친구다운 모습이 퍽 재미있게 보였다. 70살이 되어도 남자들은 여자 동창들 앞에서 으스대고 싶어 하고, 여자들은 내숭을 떨기도 하는 공통의 심리를 엿보며 즐겁게 점심을 시작했다.

  드세게 내리는 비에 선유도와 비응항의 멋진 풍광을 하나도 감상하지 못했어도 우리는 즐거웠다. 횟집에서 전복죽과 간단한 회로 점심을 먹으며 정배주로 술 한 잔씩 건네고 받으며 서로 배려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절로 묻어났다. 졸업 57년 만에 보는 친구들도 있는데 모두 어렵던 세상을 잘 헤치고 나름 할 일을 거의 마무리해가며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는 이 고마움과 기쁨을 어찌 몇 줄 글로 다 전할 수 있으랴.  

  비응도를 떠나 전주로 와서 한정식집에서 전주사범부속학교 동기동창들의 합동 칠순맞이 축하 상차림에 둘러앉아 “백수까지 건강하게!”를 다 함께 목청껏 외치며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승합차 속에서, 식당에서 불과 몇 시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티 없이 맑은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은 금세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고, 서로의 정을 확인하고 나눌 수 있는 멋진 시간이었다.

  우리 전주 친구들이 정성을 모아 준비한 한식 떡 세트를 모든 친구에게 선물하고 매년 가을 여행을 하기로 결의한 대로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다짐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친구들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당부했다. 몇 번이고 다시 손을 잡고 아쉬워하는 가운데 버스 기사의 독촉 클랙슨 소리에 놀라 가까스로 서울 친구들은 버스에 올랐다. 남은 우리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내년에 다시 모두 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면서….

                                                                                            (2019.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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