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머니들의 목포 나들이

2019.10.11 17:05

호성희 조회 수:9

꽃할머니들의 목포나들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호성희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정읍역에 도착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시작되었다고는 해도 할머니들에게는 선들선들하니 찬기가 느껴질 정도로 기온이 낮았다. 이른 새벽 급하게 나오느라 미쳐 겉옷을 챙기지 못한 내게 봉애 형님이 ‘자네 춥겠네!’ 내가 여벌 옷 하나 더 가져왔다며 유명 메이커의 재킷을 내주었다. 딸이 생일 선물로 사준 옷이라며, 내겐 좀 작은데 자네 입으면 맞을 것 같다면서 건네주었다.

 

 “그거 명품이니 자네 입어도 어울릴 거야, 하시며 맞으면 자네 줄게 입을 텐가?

 “생일 선물이라면서 저를 주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 그거 말고도 또 있으니 마음에 들면 입어도 돼!

 “감사해요. 형님, 잘 입을게요!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모처럼 꽃할머니들이 나들이 계획을 세우고 목포시티투어를 목적으로 14명의 할머니들이 정읍역에 모였다. 목포까지는 기차를 타고 갈 요량으로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출발 시간이 아직 충분히 남았는데 다들 미리 나와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모두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소풍날 모인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기까지 하다. 간식으로 마음 넉넉한 언니가 떡을 해와 나눠 먹었다. 아침을 못 먹고 나간 터라 꿀맛이었다.

 

  기차에서 먹을 주전부리를 각각 봉지로 준비해온 비비안나 형님 덕분에 입이 마냥 즐거웠다.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자주 보는데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도 모처럼 나온 할머니들의 일상 탈출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언제 비가 왔느냐 싶을 정도로 하늘이 맑고 깨끗하게 개었다. 시기동성당 꽃할머니들의 목포 나들이가 기대되었다. 천일약국 형님이 앞장서며 ‘오늘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해!1일 가이드로 나섰다. 평소 활달한 성격의 천일약국 형님은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다. ‘모처럼 나온 나들이길이니 즐겁게 놀다 가세!’  꽃할머니들의 일상탈출이었다.

 

  요즘은 각 지자체마다 버스로 지역관광지를 투어 시켜주는 시티투어가 활성화되어 있다. 지역 관광 사업으로 지자체 홍보도 하고 관광수입도 올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1인당 만 원씩이면 시티투어버스 승강장에서 승차하여 가이드가 목포 이곳저곳 유명 관광지를 안내해준다고 알고 승강장에 모였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버스를 타고 관광하기로 계획하고 왔는데 그날은 월요일이라 투어가 쉬는 날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역 근처 관광안내소에 들러 여행사 소형버스를 빌려 탐방하기로 했다. 다행히 기사분이 정읍과 인연이 있으신 분이라 우리 일행은 다행이었다. 기사님은 신나는 트로트 음악을 틀어주며 ‘누님들, 날을 잘못 받아 오셨어요!’ 오늘은 쉬는 데가 많아서 가볼 만한 곳이 없어요. 천사대교 다녀서 수산물이나 사서 가지고 가셔야겠네요. 시장도 오늘은 쉬는 곳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식당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생명을 잉태하고 힘을 모으고 이었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땅 맛을 본 벼들이 푸른빛을 띠고 있고, 들녘으로 펼쳐진 태양열 전기판들이 공원을 이루고 있는 풍경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농촌 풍경들이다. 모처럼 내린 비로 온 산하는 더욱더 싱그러웠다. 스쳐 지나는 길가에 핀 노란 꽃들이 녹색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처음 지나 보는 천사대교는 압해도와 암태면을 연결하는 연륙교로 국내 최초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교량으로 총연장 10.8km이며, 201944일에 개통했다고 한다.

 

 한껏 기대했던 꽃할머니들의 목포투어는 날을 잘못 선택하여 수포로 돌아가고 싱싱한 생선과 건어물 쇼핑으로 만족해야 했다. 평균 나이 7학년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의 일상탈출은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나들이다. 다음에 다시 한 번 목포시티투어버스 운행 일자를 잘 알아보고 예약해놓고 14명이 다시 오자고 약속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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