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야 사는 세상

2020.04.30 03:33

최인혜 조회 수:2

멀어져야 사는 세상

전북수필문학회 최인혜

 

 

  큰아들 내외가 손자를 데리고 왔다. 어린 손자가 할머니를 부르며 내게 달려오려는데, 며느리가 얼른 아이를 붙잡았다. 손 씻고 세수랑 한 다음에 할머니한테 가야한다며 욕실로 데리고 갔다. 아무 생각 없이 손자를 안으려고 팔을 내밀던 내가 뻘줌했다가 얼른 정신이 들었다. 나도 가구점에 있다가 왔으니 당연히 손도 씻어야 하는데 아들네가 온다는 소식에 준비 없이 맞이했으니 내 잘못이 크다.

 

  나도 얼른 손을 씻었지만, 아들은 서로 접촉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손주보다 할머니가 면역력이 약하니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울컥했다가 생각해보니 나도 가구점에서 상당 시간 있었으니 안심할 상태가 아니다.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가구점에서 혹시라도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릴없이 손자를 저만치 앉혀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운한 생각보다는 내가 덥석 붙들지 않은 게 퍽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세상이 송두리째 달라져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아들네도 오래 있지 않고 돌아갔다. 아이도 나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게 싫었고, 멀리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요즘에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만나던 사람도 만나지 못한 채 전화 안부나 주고받으니 마음이 아예 멀어지는 듯하다. 그래도 일단 멀리 떨어져야 안전하다니 마음이 더욱 삭막해지는 요즈음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고 어울려 사는 지극히 사회적인 동물인데, 서로 접촉이 어려워지더니 지금은 되도록 만나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예의인 세상으로 변했다.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은 악수조차 하지 못하고 주먹을 쥐고 손등을 살짝 부딪치는 것으로 악수를 대신했다. 우리가 영화나 여행길에서 보면 서로 양 볼을 번갈아대며 쪽! 소리를 내는 ‘비쥬(Baiser)’ 인사를 하던 유럽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의  급증에 놀라 이 인사를 금지했다고 한다. 바이러스에 관습도 바뀌고 새롭고 낯선 문화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숱한 생명을 잃고 엄청난 비용을 들이며 힘든 나날을 보내는 게 인류다. 과학의 발달로 우주를 넘나들며 호기롭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세계 최강의 국력과 공통화폐인 달러의 발행국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50만 명의 감염자가 나오고 5만 명 넘는 국민이 죽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초기에 호기롭게 큰소리 치던 트럼프 대통령이 요즘 쩔쩔매는 걸 보면 힘으로 안 되는 일이 많은가 보다.

  과학자들은 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물에 기생하다가 인간을 숙주로 삼을 수 있게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여 동물의 개체가 줄어드는 바람에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자연은 언제나 밸런스를 맞추어 존재해야 하는데 인간이 그 균형을 파괴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런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무서운 일이다. 지구라는 행성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밀가루 포대 속의 밀가루 한 분자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그 작은 곳에 사는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멋대로 흔들었으니 벌을 받아도 싸지 않겠는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사자성어에 공감할 수밖에…. 나이 먹은 우리야 많이 남지 않은 생이니 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대에는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방송에서 보면 오늘의 사태를 두고 지금이라도 자연을 순리대로 되돌려 놓아야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종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제라도 그동안 잘못한 일들을 사죄하는 뜻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자연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중에 나쁜 조상으로 불리는 것보단 좋은 길이라는 말이다어쩜, 나중에 우리 손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구를 버려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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