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냉이와 주꾸미 맛

2020.04.30 23:32

최인혜 조회 수:3

봄 냉이와 주꾸미 맛

                                            신아문예대학수필창작수요뱐  최 인 혜

 

                                                             

 

  매화가 피고 벚꽃가지도 부풀어 양지바른 자리에선 봉오리가 벙글기 시작하는 봄이다. 산에는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산수유도 한껏 피어 여기저기 노란 솜사탕이 보인다. 이 좋은 계절, 봄이 왔건만 세상은 봄을 맞은 것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했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전염병이 나돌아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 수가 1만 명에 달하고 사망자도 160명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처방을 내놓았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들끼리 대화하거나 기침을 하면 튀는 침방울로 전염하므로 사람 사이에 접촉을 줄이라는 것이다.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나갈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도 침방울을 흡입하지 않도록 하라는 권고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손을 씻으라는 당부도 있다.

  끔찍한 일이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정을 나누고 살아야 하는데, 그저 집에서 콕 들어앉아 있으라니 이건 큰일이다. 만나야 정이 생기고 마음이 통해서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자주 만나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하는 게 사는 재미인데, 변종 바이러스에 세상사는 재미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살려니 마음에 병이 생길 듯 싶다.

  잘난 바이러스 때문에 매주 나가던 노인복지관이 문을 닫았고, 수필 공부하러 다니던 신아문예대학 강좌도 쉰다. 노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리면 치명적이라니 노인 모임은 언제 다시 시작될지 짐작도 못 한다.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누군가 연락해 만나고 싶어도 혹시 외출했다가 바이러스라도 걸리면 그 뒷일이 너무 끔찍해서 친구한테도 전화 안부나 묻고 만나자는 말을 꺼낼 수 없다. 정말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3월을 지나 4월 첫날이다. 이맘때쯤이면 봄 주꾸미가 한창 맛있을 때다. 며칠 전 뉴스에는 예년보다 주꾸미가 많이 잡힌다고 했다. 싱싱한 주꾸미를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거나, 샤브샤브 국물에 넣었다가 먹을 적기인데 그걸 먹으러 가자고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아들에게조차 말을 할 수가 없다. 이 심란한 때 무슨 말이냐고 책망을 들을까 싶어서다. 그러다 보니 더욱 주꾸미 생각이 나고 직장에 다닐 때 주꾸미 샤브샤브를 먹던 일이 생각났다.

  오래전 G교육청에 근무하던 시절이다. 3월 마지막 토요일, 교육청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월말 보고서도 만들어야 해서 출근했다. 일하다 보니 장학사 몇 분도 나와서 각자 업무를 처리하느라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한창이다. 쉬는 날에 출근하여 일하는 때도 혼자라면 재미없고 일하기도 싫지만, 여럿이 하게 되면 동지의식도 생기고 외롭지 않아서 좋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출출했다. 벌써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시간도 넉넉하고 오랜만에 여럿이 함께 가서 맛있는 걸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멀지 않은 부안 수산시장 생각이 났다. 부안 수산시장은 손님이 먹을 생선을 사서 음식점에 가면 해달라는 대로 요리를 해주는 식당이 여럿이다. 살아 펄떡거리는 생선을 직접 사서 회를 먹고 매운탕도 끓여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견을 물었다.    

  초등 여장학사님은 서울 따님 반찬을 갖다 주려고 서울에 가야 한다며 사양했다. 나를 포함하여 초등, 중등 장학사 셋이 내 차를 타고 부안으로 달렸다. 가면서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뭘 사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더니 광어니 우럭이니, 세꼬시를 먹자느니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다 한 분이 그러지 말고 주꾸미 샤브샤브를 먹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마침 주꾸미 철이니 식당에 바로 가서 샤브샤브를 주문해서 꼬들꼬들한 맛을 보잔다.

  모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꾸미철의 별미에 침을 꼴깍거리며 식당에 도착했다. 상에 냄비가 올라오고 구수하게 끓는 된장 국물에 먼저 냉이를 넣어 향긋한 맛을 보았다. 된장 국물에 어우러진 냉이의 향기, 그 맛에는 겨우내 참았던 봄의 맛이 모두 숨어 있다가 터져 나왔다. 냉이로 입가심하고 주꾸미를 넣어 다리가 오그라들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라니….

  냉이와 된장, 주꾸미와 초간장의 환상 호흡은 자연스럽게 소주를 불러 권커니 잣커니 해가며 봄의 향기에 취하고 소주에 취했다. 세상 사는 이야기 속에 인정이 넘나들고 술기운에 용기를 얻어 평소 말하지 못하던 위험수위의 말들이 한참이나 오가다 보니 두 시간 넘게 점심을 먹었다. 음식점 앞의 수산시장에 들러 주꾸미를 두어 꾸러미씩 봉지에 넣어 차에 올랐다. 나는 조금밖에 마시지 않아서 술기운이 거의 사라진 듯했지만, 대리운전을 불러 교육청으로 돌아왔다.  

  거나했던 술기운 때문인지 두 분 다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질 않고 소리도 없다. 마무리가 덜 된 일을 마저 끝내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정신을 모으고 일에 집중했다. 두 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머리가 개운해지고 입안에 냉이 향기와 쫄깃한 주꾸미 맛이 감돌았다.

  그렇게 그해 봄은 된장국과 봄 냉이, 주꾸미 맛이 날 사로잡아 몇 번이나 부안 수산시장 횟집에 갔었다. 그리고 퇴직 후에도 지인들과 봄이면 그 맛을 찾아갔다. 그런데 올봄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에 짓눌려 여태 주꾸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동네 식당에도 선뜻 가기가 어려운데 부안 수산시장을 가는 건 더 엄두도 못 낼 일이다그 대신 신선한 주꾸미와 냉이를 구해 집에서라도 봄 입맛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주변머리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제발 내년봄에는 올 같은 재앙이 없기를 바랄 수밖에….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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