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그대에게

2020.05.02 23:13

최상섭 조회 수:5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교직생활 중에서 모든 교사가 흠모하는 학교장(學校長)을 지낸 L 친구는 새벽잠이 없어 4시가 되면 기상을 하게 되고 샤워를 한 후 지금 근무하는 직장에 출근하면 5시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을 매일 반복하며 성실함과 원만한 성격으로 정년퇴임 후 지금 근무하는 직장에서도 학교장이 되었다. 책임과 운영의 묘수를 조화시키려 애써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데 그런 생활이 5년째 접어든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나 역시 가끔 3- 4시에 잠이 깨면 이 시간에 무엇을 해서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군대시절 기상나팔 소리가 그렇게 싫었고, 깨소금 같은 잠을 단 30분 만이라도 더 자고 싶어 하면서 아쉬워했었다. 무심코 박차고 일어나 온몸에 찬물을 끼얹는 샤워부터 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야말로 호기(好期)를 잡았다 싶고 글쓰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사방이 까만 밤이고 고요가 엄습해 온다. 그러면서 초롱초롱해지는 정신은 머릿속에서 탱글탱글해져 무수히 많은 상념이 푸른 파도처럼 넘실댄다. 마치 빨랫줄에 매달려 봄바람에 춤을 추는 빨래처럼 대롱을 타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화두만 무성하고 정작 몸통을 찾지 못하고 한없이 깃털만 나부낀다. 이럴 때 나는 내 몸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측은한 사고들을 정리하지 못하는 글재주를 한탄하며 몇 번이나 절필하려 했는지 모른다.

 

 어제 두 번째 수필집 <청동화로>를 받았다는 O 친구는 허울 좋은 칭찬 몇 마디를 늘어놓더니 “요즈음은 울림의 메시지(Message)가 없는 수필은 독자들이 읽지 않습니다.”라며 고전 음악이 향을 발하는 내용이거나 건축의 예술성에 도전하여 미켈란젤로의 창작성이 글 속에서 굴뚝의 연기처럼 피어나는 수필을 쓸려고 준비 중이란다. 얼마나 수사가 풍부하고 멋진 말이며 정작 현대 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그런데 『울림의 메시지』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뜻대로 쉽게 나타날 수만 있다면야 누가 문사(文士)가 되려 하지 않겠는가 되묻고 싶다. 내 딴에는 다른 수필가들이 쓰지 않은 독특한 소재를 찾으려 혼신(渾身)의 노력을 다한다. 항상 호주머니에는 메모 수첩이 들어있고 사소한 것들도 다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둔다. 무엇에 쓰려는가는 나중 문제다. 그 별 것 아닌 것들을 밤이 되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며 내 안의 보석으로 저장해 둔다. 특별히 오랜 기간 나는 우리 '풀꽃'을 무척 좋아해서 보는 족족 HP로 촬영해 두고 풀꽃의 생태를 조사하며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우리 풀꽃에 관한 수필을 여러 편 쓰게 되었고, 인터넷상의 내 필명이 '야생화'다. C 시인의 독특한 소재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더욱 심취하고 야생화에 대한 글감을 찾도록 분주히 노력할 생각이다.

 

 

 

  첫 번째 수필집 <청동 주전자>에 나오는 “돌쩌귀의 아름다운 조화”라는 글을 발표할 때 내게 수필을 전수해 주시는 K 교수님은 처음으로 “최 선생 이제야 제대로 된 글감을 하나 찾았구먼.” 하시고 칭찬해 주셨다. 돌쩌귀는 한옥집에서 문을 달 때 여닫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장석이다. 문틀과 문짝에 한 번에 박아서 달아야 되고 도목수만이 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다. 이 돌쩌귀의 조화가 한옥집의 섬세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빼어난 진수의 하나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두 번째 수필집 <청동화로>에서는 서정적 수필을 쓰려고 노력한 내용의 수필들이 대부분 상재되었다. 김제에서 오랜 기간 문단 활동을 같이 한 J 시인은 “한 편 한 편이 시를 읽듯 정감이 넘쳐요.”라고 과분한 칭찬을 해 주셨다. 나 듣기 좋아라고 한 말이 틀림이 없지만 내가 의도한 부문은 상당한 효과를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일말의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도 그렇게 시를 쓰듯 감칠맛 나는 서정수필을 쓰고 싶다. 자연 친화적인 내용으로 쓴 수필들이 꾀꼬리와 후투티, 독수리의 비상, 새봄을 알리는 풀꽃들, 매화꽃의 고고한 맛, 난심은 얼마인가? *상선약수(上善若水), 풀꽃 천지, 풍경소리 등을 상재했다. 그리고 사람이 질병 앞에서는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싶어 평소 *신외무물(身外無物)의 주장을 많이 했었다. 과학과 의술이 크게 발달한 현대에서 세계의 재앙이 된 팬더믹((pandemic)한 ‘코로나19’ 앞에 우리 인간이 얼마니 무기력한 존재인가 싶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가의 총력 저지와 국민의 협조로 선진국으로부터 가장 피해를 적게 본, 의료 기술이 뛰어난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모든 국민의 자부심이 고무되는 대목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그 무서운 재앙의 질병이 사그라드는 느낌이어서 천만다행이다. 이제 바라는 것은 하루빨리 이 지구상에서 그 전염병이 사라져 모든 나라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재크린의 눈물'이란 수필을 상재해서 인간애를 승화시키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실고추 가루' 등 나름대로는 새로운 소재를 찾기에 분주했었다.

 

 분명한 것은 뼈를 깎는 각고(刻苦)의 노력 없이 좋은 작품이 쓰여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숙연하며 내 남은 인생 전생의 업보(業報)라고 여겨 진력할 것을 다짐해 두고 싶다.

 

 

  밤을 잊은 그대, 문곡(文谷)!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크게 새기며 고지(高地)를 향해 전력투구(全力投球)하게나. 그 길이 문곡이 걸어야 할 사명이요, 존재의 가치라 믿네.

(2020. 4. 30.)  

 

*상선약수(上善若水) : (원문 : 흘러가는 물같이 사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의역 : 흘러가는 물같이 사는 삶이 기장 이름다운 인생이다.)

* 신외무물(身外無物) : 군대 생활이 막 시작된 19713월 소위 봉급 27,400 원을 받아 집으로 송금했더니 선친(先親)께서 직접 편지로 화답해 주셨고 첫 서두로 쓰신 글이며 지금도 마음속의 보감(寶鑑)으로 여기는 사자성어(四字成語). 건강이 없는 만물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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