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물고 온 봄(2)

2020.05.01 02:16

한성덕 조회 수:1

까치가 물고 온 봄 (2)

                                                                     한성덕

 

 

 

 

  제목으로 두 번째 글을 쓴다. 지금의 날씨로만 보면 ‘까치가 물고 온 봄’이 다소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지난 23일에는, 내륙을 중심으로 아침 기온이 최저 0~5도로 떨어져 쌀쌀했었다. 서울에서는 진눈깨비가 관측될 정도였다는데, 기상관측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사실, 전주지역도 바람이 강하게 불고 날씨가 꽤 쌀쌀했었다. 이런 환경에서 까치가 봄을 물고 왔으니 성급한 게 아닌가?

  까치의 겨우살이는, 앙상한 가지와 지내므로 자신의 모습이 다 드러난다. 성급하게 봄을 물고 온 걸 보면, 홀딱 벗은 발가숭이로 산다 싶어서 수치심이 많았던가 보다. 아니면, 새끼를 낳으려는데 따른 보호본능에서 둥지를 감추려고 그랬나? 제 딴엔 수치심도, 새끼를 감추려는 보호본능도 가질 만하다.

  까치가 영리하다기에 지능지수가 늘 궁금했다. 실제로 무슨 꾀를 부리거나 은혜를 갚을 만한 지능이 있을까? 하다가 ‘은혜를 갚은 까치’라는 동화를 찾았다. 까치는,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영리한 새다.

  옛날, 과거길에 오른 선비가 있었다. 산속을 걷는데 어미까치와 새끼들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큰 구렁이가 새끼들을 잡아먹겠다고 혀를 날름거리는 게 아닌가? 선비는 까치가족을 살려냈다. 밤이 되어 산속 주막에서 잠을 청했는데, 그 집은 낮에 죽은 구렁이의 아내가 만든 덫이었다. 한밤중에 숨이 막혀서 깨어보니 구렁이가 목을 칭칭 감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동이 트기 전 뒷산에서 종이 울리면 살려준다고 했다. ‘누가 종을 울리겠나?’ 싶어서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종이 울렸다. 약속대로 살아나 뒷산으로 달려갔더니, 선비가 살려준 까치가 죽어 있었다. 까치에게 은혜를 베풀었더니 그 까치가 은혜를 갚은 것이다. 구렁이에게 원한을 샀다가 죽을 뻔했다는 인과율에 따른 전래동화다.

  2008, 독일연구팀이 얼굴을 알아보는 거울시험에서 까치가 통과했다. 그게 뭐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거울테스트를 통과한 동물이 많지 않다. 사람,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 그리고 까치정도에 불과하다. 까치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안다. 사람도 18개월이 되어야 거울테스트를 통과하는데, 참 영리한 날짐승이다. 까치의 지능을 사람의 5~8세쯤으로 본다. 까치는 유일하게 도구를 사용하고, 먹이 주는 사람을 알아보며, 허수아비를 구분한다. 사람의 얼굴을 아니까, 자신을 위협하는 자를 기억하고 피하거나 보복한다.

  전에 시무하던 교회건물 뒤편에 서재 출입문이 있었다. 바로 앞에는 두 그루의 도토리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어 호감이 갔다. 이듬해는 출입문 처마 끝 물받이에 집을 짓는 게 아닌가? 긴 장대를 이용해 부수는데, 까치 두 마리가 난리였다. 마구 소리치고, 내 위를 쌩쌩 돌며, 단박에 머리를 쪼아댈 태세였다. 며칠 뒤, 까치집을 짓는 나뭇가지들이 서재 출입문에 수북했다. ‘누가 이런 짓을 다 하냐?’며 아무 생각 없이 치웠다. 며칠 지나서 또 그랬다. ‘설마 까치가?’ 와~, 작년에 드나들던 헌 집을 물어다가 그랬으니 제 딴에는 보복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나를 보기만하면 까치 두 마리가 나타나 사정없이 짖어대며 휙휙 날아다녔다. 그 소행에 적이 놀랐었다. 그 때는 평화동에서 살았으니 ‘평화동까치’요, 지금은 우아동에서 살고 있으니 ‘우아동까치’라고 할까? 평화동에서는 평화의 무드가 깨져서 까치와 전쟁하는 기분이었는데, 우아동에서는 까치도 우아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까치가 봄을 물고 왔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까치가 물고 온 봄이 조금은 성급해 보였지만, 봄은 역시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듯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경기가 살아나며, 온 나라에 생기가 도는 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봄이라면 성급할수록 더 좋다. 까치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까치야, 이런 봄을 어서어서 물고 오너라. 헌 집 아닌 새집 줄께!"

                                        (2020. 4.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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