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49)

2020.05.26 13:14

윤근택 조회 수:7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49)

                  -리베르탱고(Libertango)를 듣다가-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나는 지금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antaleon Piazzolla , 아르헨티나,1921~1992)의 경쾌한 곡, <<리베르탱고>>를 듣고 있다. 고백하건대, 내가 그분과 그 곡을 알게 된 지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듣게 되면, 그 곡 작곡가의 생애와 그 곡에 관한 숨은 이야기 등을 기어이 살펴보아, 지식(?)을 쌓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태 무얼 알아서 쓴 글은 거의 없다. 반대로, 한 편의 글을 쓴 이후에야 그 글과 관련된 지식이 아주 조금씩 늘어나게 된다. 이 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끝을 맺게 될 것이다.

  미리 독자님들께 밝혀두건대, 훌륭한 예술가 가운데는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은 예술가가 거의 없었으며, 훌륭한 스승 없는 빼어난 예술가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운()도 뒤따랐던 경우가 많다. 요컨대, 예술가도 연때(緣때)가 맞아야 한다. 이를 두고 불가(佛家)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고도 부른다. 그 무엇보다도 예술가 자신의 투혼이 밑바탕 되었다. 이렇게 뜸을 들였으니, 어디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한번 소개해 볼까나. 우선,남의 블로그 등에서 자료를 모아 재편집했음을 고백한다.

그는 192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가난한 노동자 지역에서 살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 겸 미용사였다. 그는 이웃 패거리에 끼여 제법 거칠게 자라났고, 후일 그러한 경험이 음악계에서 투혼으로 나타났다고 술회했다. 그의 놀이친구들 가운데는 헤비급 권투 세계 챔피언 록키처럼 나이가 훨씬 많은 이도 있었으며, 그들 중 절반은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성향을 가늠케 한다. 그가 음악과 처음 만난 것은 열살 때다. 넉넉하지 않은 그의 아버지는 독일에서 만든 반도네온(Bandoneon)이란 악기를 사다 주었다. 일종의 손풍금 같은 악기다. 그는 뉴욕에서 라디오 연주회에 나가서, 이 반도네온으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잎새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1934년 남미 탱고 음악 작곡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어떤 이가 어린 피아졸라를 최초로 발견하게 된다. 그 어린 것이 뉴욕에서 스페인어를 구사하며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걸 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이 어린 피아졸라를 출연시켜 반도네온을 연주케 한다. 피아졸라가 17세 되던 해

 온 가족은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만사 젖혀두고 음악공부에만 전념한다. 그는 음악을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젊은 피아졸라는 유명한 밴드 리더이자 작곡가인 이가 이끄는 악단에 들어가 반도네온 솔로 주자가 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후일 그는 고백한다.

음악은 여자 이상이지요. 여자와는 결혼을 한 다음 이혼할 수 있지만,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한번 결합하면 평생껏 사랑하고, 땅에 묻힐 때에도 같이 묻히게 됩니다.

드디어 피아졸라의 팔자고침이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하나 들고서 마침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댁을 당차게 방문한다. 피아졸라의 재능을 본 루빈스타인. 그는 자신의 친구,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하여 피아졸라는 첫 작곡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그 스승은 당시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였다. 그는 스승한테서 교향곡,피아노 협주곡, 실내악곡, 소나타 등을 섭렵하게 된다. 그러기를 10. 그는 32세가 되던 1953년에 스승의 추천으로 아르헨티나 작곡경연대회에 곡을 출품하게 된다. 그 곡은 올해 최고의 곡으로 선정되었으며,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된다.

그는 팔자를 다시 한번 고치게 된다. 그 길로 파리로 건너가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langer;프랑스;1887~1979) 밑에서 18개월 동안 공부하게 된다. 파리음악원 최고의 작곡과 화성악 교수였던 나디아 불랑제 여사. 그녀는 그 패기만만하던 피아졸라의 운명을 확 바꾸어 놓고 만다. 그녀는 제자인 피아졸라가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것이다. 후일 피아졸라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그때까지 작곡해 놓은 수많은 소나타와 교향곡을 겨드랑이에 끼고 선생님께 갔지요. 그녀는 괴물 같은 나의 악보를 보기 시작했지요. 잘 썼네. 그런데 이 부분은 스트라빈스키 같고, 또 이 부분은 바르코크 같고, 또 여기는 라벨 같은 걸! 그 어디에도 피아졸라는 없어. 알겠니?하고 간단히 평하더군요. 그 다음에는 나의 사생활에 관해 꼬치꼬치 물어대기 시작했죠. 무엇을 해왔으며, 무엇을 연주했으며, 어디 살다 왔으며, 결혼은 했는지 동거를 하고 있는지 등. 마치 FBI 요원 같았다니까요. 나는 탱고음악을 했다고 말하려니 너무 창피했어요. 결국은, 저는 카바레에서 일을 했어요.를 암시했죠. 그래도 나디아의 심문은 계속 이어졌죠. 피아니스트가 아니라고 했지? 그럼 무슨 악기를 연주했어? 나는 반도네온을 연주한다고 죽어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에 그 이야기를 꺼내면 반도네온을 창밖으로 휙 내던질 것만 같았어요. 선생님이 하도 집요해서 결국 모든 걸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나디아 선생님은 탱고를 연주해보라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몇 소절을 연주하자,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소리질렀죠. 어휴, 이 멍청이! 진작에 이야기 하지 않고서 . 바로 이게 피아졸라야! 그 순간,내가 10년 동안 작곡한 악보들이 단 몇 초만에 버려진 거죠.

 피아졸라의 다음과 같은 회고도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아니, 줄줄 양볼에 눈물이 흐르도록 한다.

18개월은 마치 18년 같았어요. 처음에는 4성 대위법만 지겹게 했죠. 선생님이 그러시데요. 이걸 배운 다음에는 4중주곡을 작곡할 거야. 지금은 제대로 배워야 해. 다음에 그녀는 나를 진정한 피아졸라로 만들어 주었어요. 내 탱고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훌륭하다는 걸 가르쳐 주었죠. 나는 그저 쓰레기라고만 여겼는데요. 창피스럽게 여겼던 탱고에 관해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레코딩한 음반들을 선생님께 보냈죠. 나디아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 주셨어요.

네 곡들을 이미 라디오를 통해 많이 들었다. 네가 나의 제자인 게 자랑스럽구나.

1974, 피아졸라가 53세가 되던 해 그는 고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다. 이후 10여 년간 유럽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음악을 전세계 청중에게 소개했다.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음악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던 그. 그는 고국으로 돌아왔고, 19927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다시 한번 고백하건대, 위의 글들은 남의 블로그 등에서 자료를 챙겨 재편집하였다. 아니, 숫제 베끼다시피 하였다. 이제 내 나름의 생각과 말을 보탤 차례인 것 같다. 제목으로 설정한 리베르탱고(libertango), libertad(스페인어로서 자유를 일컫는다.)tango를 합친 말이다. 피아졸라 자신이 추구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상징하는 말인 듯싶다. 클래식과 재즈가 접목된 . 위에서도 밝혔듯이, 사실 그는 그러한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기 전에 이미 많은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그것은 오랜 습작기간에 산입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스승이었던 나디아한테서 꾸지람을 그렇게 듣긴 하였어도, 좋은 스승을 두루 거쳤던 점도 나는 유의한다. 하늘에서 거저 뚝 떨어진 재능이 아니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다. 피나는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어느 특정 스승만을 하늘처럼 신봉하지는 않았다는 사실. 때가 되면 현재의 스승을 버리고, 또 다른 스승을 찾아 홀연히 떠나갔음을 알 수 있다. 시사하는 바 크다. 모름지기 예술가는 현재의 스승을 버리고 기존의 질서도 허물어뜨릴 배짱이 있어야 한다. 아니, 배짱만으로는 곤란하다.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잘 새로운 문예사조를 낳곤 하였다. 자료를 살펴본 바, 위에서 소개한 나디아 불랑제는 아주 대단한 분이었다. 작곡가 겸 지휘자 겸 오르간 주자로 나타났으며, 피아졸라 뿐만 아니라 무려 600여 명의 뛰어난 음악가를 키운 분으로 되어 있었다. 그분은 음악가의 음악가로 불려지는 한편 여제(女帝)로까지 불려짐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알았던 분이다. 제자를 키우되, 아류(亞流)를 만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휴, 이 멍청이! 진작에 이야기 하지 않고서 . 바로 이게 피아졸라야!하며  반도네온 주자였던 제자를 격려했던 대목만 보더라도 그걸 알 수 있다. , 그 많은 현대음악가를, 그것도 훌륭한 음악가들을 배출했다니, 그 제자들 개개인은 나름대로 독특한 음악세계를 열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우리가 그들을 각각 훌륭한 음악인들이라고 부르고 있겠냐고?  수필작가의 길을 가는 나. 이 점도 새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적어도 함량미달의 후배작가만이라도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 해서는 아니 되겠다는 .  자료를 챙겨나가다가 또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아졸라는 그 유명한 곡, 리베르탱고말고도 <<Adios nonino(잘 가요 노니노; 아버지 잘 가요;Farewell father)>>란 곡도 적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노니노, 아버지의 애칭이란다. 빈곤한 생활로 인해 아버지의 죽음도, 장례식도 보지 못한 피아졸라. 그는 아버지를 애도하며 그 곡을 적었다고 한다. 오늘 밤 이 글을 적는 동안 그 곡도 거듭거듭 들었는데, 눈물이 마구 솟구쳤다.

   , 이제 내 이야기를 슬슬 싸말아 넣어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아 참,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하나 빠뜨릴 뻔했다. 천하의 작곡가 피아졸라일지라도, 그 누가 그 곡을 연주해주지 않았더라면 말짱 황이 아니었겠냐고? 사실 그 출세곡 <<리베르탱고>>는 연주하기에 꽤나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곡을 첼리스트 요요마(Yo-Yo Ma , 미국 국적, 1955~)가 연주하여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면서 널리널리 퍼지게 되었단다. 이 점도 수필작가의 길을 사반세기 걸어온 내가 놓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예술가는 연때가 맞아야 하며 시절인연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네는 곧잘 서간문 따위에다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하고서 기도하는 맘을 상대에게 전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엉터리 같은 작품을 빚어내고서 명품 값을 받고자 젠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일단, 그 무엇보다도 혼을 담은 시공(施工)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나머지는 독자라고 하는 이들, 청중이라고 하는 이들, 관객이라고 하는 이들 등 타인의 몫으로 돌리는 게 순리다. 끝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얼굴도 내밀지 않는 나의 독자님들을 또다시 두렵게 여기며 두서 없는 글 접기로 한다.

 

(2014.2.18. 초저녁에. 어느 연수원 사감실에서. 윤요셉)

 

(다음 계속)

 

    * 이 글은 본디 제목은 리베르탱고를 듣다가였으나,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이야기시리즈물에 새로 편입함.

*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있습니다.

*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있습니다.

 

*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있습니다.

* 글은 종합문예지이며 계간지인 <<自由文學>> 뒤따라오며 시리즈물로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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