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나무
2008.09.27 20:57
미인 나무
세코이아 국립 공원에서
하늘 높이 솟아있는 나무들을 보고
나는 탄성을 지르고 그들이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간 세월이 지난 뒤
그 나무들은 키 큰 백인미인들처럼
나에게 더 이상 매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가 사는 동네에 서있는
행운목의 알몸을 보고나서 부터다
사시사철 땅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
무슨 슬픔과 아픔이 있길래
저리도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했는데
어느 날인가 폭풍이 휩쓸고 간 아침에
나무는 겁탈당한 여인처럼 흰몸을 드러내고
상처난 가지들을
수없이 떨어져 죽은 참새들 시신 위에
늘어뜨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그 나무가
수많은 자식을 거느린
미인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꽃도 피우지도 않는 나무
그리움도 슬픔도 아닌 가지들을
독수리의 날개처럼 늘어뜨리고
팔 벌려 수많은 생명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밤이면 가지숲에 꽃등을 달고
새들이 꿈을 꾸며 잠들게 하는
작은 우주인 그녀가 바로
미인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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