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장퇴유의 다리
2008.12.08 11:41
백년도 훨씬 전 빨간 배 보이는
강물로 색칠하는 아르장퇴유의 강
센 강 선상화실에서 그림 그렸을 모네
지금도 저 강이 그리 꿈꾸던 낙원일지
가게월세, 공과금, 애들 학원비까지
제대로 씻어내지 못하는 수인된 삶
날마다 슬금슬금 강으로 기어간다
벽 타고 기어가다 멈춘 눈길
청명한 날 흰 모자 쓴 이 곁을 지나고
힐끔 우산 든 여인을 쳐다보기도 하고
일없이 거리를 배회해도 편안하기만하다
다리 위 지나간 기차의 뒷모습 따라
정화조 터널로 흐르는 욕망의 배설
경계에 숨어버린 아르장퇴유 다리
정지된 모습에 새겨놓은 오래된 잔영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
목숨 걸고 배팅하는 삶이 아닐지
성공하면 달디 단 파이 먹는 일이지만
실패하면 가지만 남은 고목나무
파산의 빨간 잎 메달아 놓는 일이다
처음 결정에 두 가지 답주지 않고
무심한 하늘만 지독하게 맑고 높다
하나 둘 떠난 불법체류와 일용직 고객
상품 가격상승으로 거리도 한산한 도시
힘들게 사는 딸 모습 보고 떠난 장모님
등 뒤가 을씨년스런 강을 보는 것 같다
메여오는 기차의 검은 연기 사라지고
퇴거 소송장 펄럭이는 윌셔 거리 지나
한숨 내쉬는 불빛으로 길 더듬어간다
아내의 귓속말 튕겨져 뚝뚝 끊어지고
가을 밤벌레 울음이 아득히 멀어지자
새벽은 왜 이리 성급한지 달아나 버렸다
아침에 앉아 해야 할 까마득하게 잊고
액자 걸린 벽 속에서 기차가 달려온다
떠난 기차를 강에서 내내 진동 울리는
보는 것도 행복인 고요로 둘러싸인 저 강
계간 <시작>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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