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었'

2010.10.26 04:18

오연희 조회 수:78

아버지 '었' 영이 떠난 몸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섬뜩할 만큼 차가운 턱 “이마도 만져보고 볼도 만져보고 그러세요” 저승사자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젊은 장의사의 한마디 마음속도 꿰뚫는 영험함에 놀라 모두들 슬며시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이생의 기운 드나들만한 구멍이란 구멍 모두 무명으로 채우다가 틀니 안 하셨섰..었...어요? 의아한 듯 묻는 장의사 (과거완료 ‘었’ 을 강조하느라 말을 더듬는다) 입맛이라도 쩝쩝 다시면 큰일이라는 듯 여지없이 틀어막는다 안 했어요. 느직하게 뒷북 둥, 울리는 엄마얼굴이 살짝 환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 태평양 건너 당신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어찌어찌 알아들은 마지막 말, 딸들을 황망하게 했던 아 아, 아버지 불속으로 드시는구나 앗 뜨거! 앗 뜨거!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동동거리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어린 딸을 앞세운 어느 엄마의 사연이 아니더라도 벌떡거리는 몸 애써 붙잡는 사람들의 손에는 소주잔이 돌아가고 오래 곁을 지켜온 딸들은 합죽한 아버지 웃음 기어이 붙들고 늘어진다 회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이면 족하시던 (당신이 한 게 뭐 있소? 타박소리 타작하듯 해대도 어허-, 외아들 눈감을 때 눈물 한 방울 없어 매정한 양반이라는 소리 들어도 어허-, 헛기침만 뱉으시던) 아버지 하늘과 땅 가지 못할 곳 없으시겠다 “한 달음에 만날 수 있을 테니 좋겠수!” 엄마의 마지막 핀잔에 어허- 벌떡 일어셨..섰...었겠다. -미주문학 201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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