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노숙자

2010.07.28 17:20

차신재 조회 수:62

내가 본 노숙자
              차신재

어두운 빈 주머니
무거운 발걸음 지치면
집 없는 고양이 어슬렁거리는
후미진 골목 어디 쯤
달팽이처럼 끌고 다니던 삶을
풀어 놓는다

지난 날
가족들과 몸 비비며 사는 동안
눈빛이 머물렀던 모든 것
체온으로 얼룩졌던 모든 것
헌옷처럼 훌훌 벗고 나왔을 때

어쩌면 푸른 휘파람
어쩌면 굽이치는 흙탕물로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그것은
홀가분한 자유였을까
절벽 같은 비애였을까

이전에 손잡았던 것들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밤과 낮
어쩌면 꿈과 생시처럼 선명해
세상 잣대 접어버린 가슴에도
가끔 파도가 일렁일 테지만

혼자 일어나
혼자 잠들며
안으로 안으로만 집을 짓는
그 삶 또한
가난하지만은 않은 듯

싸늘한 거리에
그림자 하나 등에 깔고서도
모든 걸 버린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무욕의 자유
오늘 본 노숙자의
때에 찌든 그 얼굴이 보름달처럼 화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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