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선물
2011.12.24 09:21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한다는 그 분의 말을 들었을 때다. 내가 잘 아는 그 분은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면 언제나 자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고 했다.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생일에 사서 예쁘게 포장하여 자신에게 선물을 한단다. 때로 조금 과한 투자이기도 하지만 자신은 그게 참 행복하다고 했다. 약간은 충격이었다. 자기를 위한 선물이라니. 그럴 수도 있구나.
한국의 여자들은 대부분이 나 같지 않을까 한다. 그저 가족을 위해서만 있는 존재쯤으로 생각하고 자신은 언제나 뒷전에 두고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딸아이가 몇 년 입고 난 옷이 지루해져서 버리려고 할 때, 내가 한번 입어볼게라며 버리기 아까워하는 마음. 자녀의 물건은 가능한 좋은 것으로, 내가 쓸 것은 대충 싼 것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우리네 여자들이 아닐까.
이제는 좀 털어내 보자. 올 크리스마스에는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 그 동안 미국에 와서 마음으로나 육체적으로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많이 힘들었다. 이민생활이란 게 그렇게 녹록치 않으니 말이다. 나무도 옮겨 심으면 몸살을 한단다. 일단 옮겨 심은 나무는 살아날 확률이 적다고 한다.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그것이 인간에게도 똑같은 현상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이민생활이다. 더구나 남편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헤쳐 나가야 하는 일들은 결코 쉬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아온 내게 귀한 선물을 하고 싶다.
한국에 있을 때는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방법을 생각하는 친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스트레스 받은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 왜 풀리지 않는지 물어 보기도 했다. 살다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속상할 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스트레스라니. 뭐가 쌓일 것이 있다는 말인가. 그저 순간순간 풀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왜 머리는 아파야 하고 가슴은 답답해야 하는지 마음에 와 닿도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웃과 다툴 일이 있을 수 있겠으나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내일 다시 멀쩡하게 다가가는 나로서는 가슴에 쌓일 일이 없었다. 웬만하면 이해하고, 좀 손해보고, 그냥 용서하면 무슨 문제일까. 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가. 사람들은 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게 살아야 할까.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엄청난 스트레스가 나를 휘두르고 있다. 밖으로는 이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모습에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웬만해서 풀어지지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한국에 있을 때였다면 그저 귓등으로 넘겼을 말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였을 문제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일들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남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임을 안다.
어린 딸과 둘이서 시작한 이민생활은 한국에서 그저 그만하게 살아온 나에게는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었다. 작은 못 하나 치는 집안일에서부터 생활해야 하는 경제적인 문제까지 모두 나의 몫이다.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이 아니다 여기는. 헤쳐 나가며 부딪혀나가야 할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작든 크든 모두 내 손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들인 것을. 이민 초기에 너무 많이 울어서 안구건조 증을 진단받았던 적이 있었다. 더 이상 울면 안 된다고 안과에서 눈물샘을 막아주었다. 이제는 제법 당당해져서 그런 것인지, 눈물이 메말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잘 울지 않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간 고생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겠다. 조금 과한 투자를 나에게 해도 괜찮겠다. 예쁘게 포장해달라고 해야지. 카드도 한 장 써넣어야겠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사랑의 말. 용기내서 계속 힘차게 살아가라는 응원의 말. 다 잘 될 거라는 격려의 말. 그 동안 정말 고생하며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말도 함께 예쁜 카드에 써서 넣어야겠다. “이영숙, 잘 했어.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잘 살았어. 이 선물 받을 자격이 충분해. 힘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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