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깨질 리더같은 농촌지도자룰

2004.12.14 11:29

정찬열 조회 수:249 추천:13

                    

                                                    
  김용택 시인이 쓴 '그 여자네 집'이란 시에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위로 보이는 집" 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도리깨질은 쉽고 재미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무척 힘든 일이다. 마당 가득히 보리모가지를 말렸다가 햇빛이 따갑게 내리 쬐는 여름 한 낮, 땀을 비오듯 흘리며 도리깨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보리타작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도리가 없을 터이다.
  보리타작뿐이던가. 쟁기질, 모심고 논 메는 일. 지게질은 또 어떤가. 아, 지게질. 생각만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턱 막혀오는 지게질. 농사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농사가 어떻게 힘든지, 노력에 비해 또 소득은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턱이 없다.  
  매스콤을 통해 농민들이 데모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오죽했으면 순하디 순한 농민들이 거리로 튀어나와 저렇게 격렬한 시위를 할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메인다. 나도 저들과 함께 농사를 짓던 농사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트랙터 등 농기계를 동원해 광주-목포간 국도를 점거하며 '쌀 개방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농민들이 떼를 쓰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올까 걱정되고, 물꼬를 잘라 물줄기가 제대로 흐르게 할 지도자는 없는지 답답하다.
  쌀 개방은 데모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농업개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진실을 얘기하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자유무역의 당위성, 경제성장의 대부분을 수출에 의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 그리고 내가 자동차와 반도체를 파는 것은 괜찮고 남이 쌀과 보리를 파는 것은 안 된다는 주장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논리와 다름없다는 사실 등을 차분히 설명하여 농민을 설득시킬 수 있는 소신 있는 지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랬다면 농민들이 저렇게 길거리에 나서지 않을 것이고, 칸쿤에서 아까운 목숨을 버리지도 않았을 게 아닌가.  
  이런 어려움을 우리만 겪고 있는 게 아니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필요한 것을 서로 사고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섬유쿼터가 풀려 명년부터 중국 제품이 물밀 듯 들어오게 된다. 당장 타격을 입을 곳이 알라바마주다. 목화 주산지이기 때문이다. 섬유 관계 중소기업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처럼 머리띠를 동여 메고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 농민들은 목화밭을 갈아엎어 과일나무를 심고 섬유공장은 건강 특수양말을 만들기 시작하는 등, 정부와 관계자들이 차분히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일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왜 이렇게 다른가.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부가 지난 10년 간 69조원을 농촌에 퍼부었다는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힘있고 줄 있는 사람의 배를 불리기 위해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진 않았나 되짚어 볼일이다. 앞으로 10년 간 119조원을 쓴다는데 그 돈은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농촌을 위한 종합대책은 서 있고, 농민은 함께 잘 살아보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다시, 문제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문제다.  
  여럿이 보리타작을 하는 경우 농악대의 상쇠처럼 반드시 리더가 있다. 그가 앞장서 "여기", "저기" 큰 소리로 때려야 할 곳을 지정하며 도리깨질을 해 나가면 사람들이 그를 따라 도리깨질을 한다. 리더는 강약과 속도를 조절하고 일꾼들의 힘을 돋구기 위해 구호를 선창하기도 한다. "여기, 어차," "저기, 저차" 그와 함께 일을 하면 신바람이 난다. 이렇게 흥이 나서 도리깨질을 하다보면 마당 가득하던 보리 타작은 어느새 끝나게 된다.
  오늘 한국 농촌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도리깨질 리더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 지도자면 농촌이 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농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 15일자  광주매일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