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김' 초등학교 탄생을 보면서

2006.09.26 02:33

정찬열 조회 수:32 추천:1

  미국 초등학교에 한인 이름을 단 학교가 최초로 탄생했다. LA 통합교육구 교육위원회는 지난 12일 초기 한인 이민자인 김호 선생의 미국 이름 ‘Charles H Kim’을 코행가에 새로 설립된 초등학교 이름으로 결정했다.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의 이름이 미국의 공립학교 이름으로 채택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올해는 한인 최초의 정규 초등학교로 하와이에 문을 열었던 ‘한인 남자 기숙학교(Boarding School for Korean Boys)’의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번 결정이 더욱 뜻 깊다.
  본명이 김정진인 김호 선생은 LA한인회의 전신인 한인 커뮤니티센터 설립자이다.  그는 191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활약한 농업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LA 한인사회의 지도자였다. 그는 한인최초의 백만장자였으며 유한양행을 세운 유일한과 함께 의약품 무역을 하면서 서재필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조국독립을 위해 ‘국민회’의 기금모금 책임자가 되어 상해임시정부 후원금을 마련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녀들이 조국을 잊지 않도록 한글학교를 세워 역사와 한글을 가르쳤다.
  알다시피 미국은 여러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사회다. 이번에 학교이름을 결정하는 데도 17개의 이름이 후보로 올랐다. 한국인 이름이 달린 공립학교를 만들어내자는 의견이 제시되자, 한인 커뮤니티는 이 일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1세들은 한인 이민사를 재정리했고, 1.5세와 2세들도 발 벗고 나섰다. 의원보좌관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들은 타 커뮤니티의 반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민역사를 공부했고, 이를 토대로 수차례의 회의를 거듭하며 꼼꼼한 계획을 세웠다. 타 커뮤니티의 이민역사도 살펴보고 그들을 방문하여 오피니언 리더를 만나는 등, 반발을 무마하고 설득하면서 찬성을 얻어내기 위해 발로 뛰었다.
   백인뿐만 아니라 라틴계 커뮤니티까지도 찬성하여 마침내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선정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찰스 H 김’을 학교명으로 결정했다. 다민족 사회 미국이 한 한인 이민선구자를 ‘미국적 롤 모델’로 받아들인 것이다.
  17개 후보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은 한인들의 결집된 힘의 승리라고 볼만 하다. 그러나 패자까지도 흔쾌히 결과에 승복했던 합리적이고 투명한 이름 선정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당한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할 줄 하는 미국 사회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국에서 신설 공립학교에 외국인의 이름을 붙이자는 제안이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00년 전 하와이 사탕수수밭 이민으로 시작된 미국의 한인사회는 오늘날 200만이 넘는 공동체로 발전했다. 3억 가까운 전체 인구에 비하면 수적으로는 미미하지만 한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필자가 본 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LA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이름을 딴 우체국과 고속도로가 생겼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 5월에는 ‘나비’라는 한국어 이름을 붙힌 초등학교가 생기기도 했다. 좋은 한국인의 이름이 미국사회에 한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아름다운 한국어가 덩달아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멕시코 이민자를 비롯하여 우리보다 더 오랜 이민역사와 훨씬 많은 인구를 가진 다른 커뮤니티를 제치고 공공기관에 한국 이민자들의 이름이 붙혀 지고 있다는 뉴스는 우리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이런 기쁜 소식들이 나라 안팎에서 더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2006년 9월 27일 광주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