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가져다 준 불청객들/'이 아침에'미주중앙일보
2011.01.22 16:28
1-22-2011 일자
나이가 가져다 준 불청객들
조옥동/시인
새해가 되면 괜한 생각이 든다. 어려서는 한 살을 더 먹으면 빨리 선배가 되고 어른이 된다는 생각에 내심 좋아 했으나 언제부터인지 생각이 바뀌었다. 송구영신 예배시 남편으로부터 제일 먼저 생일축하를 받는다. 생일이 1월 1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출생하고도 몇 날이나 몇 달 뒤 또는 맨 마지막 달에 생일을 맞는 사람에 비하여 새해 첫날부터 나이를 먹는 억울함을 느낀다. 나이가 가져오는 불청객들 때문이다.
나이가 늘면서 찾아오는 백발은 옛사람 말대로 막대로도 가시로도 막을 수 없다. 대학교시절, 어떤 노교수의 정년 퇴임식이 있던 날, 한 학생이 떠나는 은사를 향해 노래를 불렀다. 은사의 머리가 은발로 변할 때까지 가르치신 뜻을 기리며 “젊은 날의 꿈들 한갓 헛된 꿈이랴/윤기 흐르던 머리 이젠 자취 없어라/......지난날을 더듬어 내게 은발 남기리” 하는 가사의 ‘은발’을 노래했다. 그때 “은발‘이란 말이 참 귀하게 느껴졌고 언젠가 나도 아름다운 은발이 되리라 생각했다.
남편은 40대중반이 되자 흰머리가 점점 늘어갔다. 젊은 시절 내가 반했던 그의 패기가 차차 누그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머리에 심겨지는 은발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남편에만 측은한 마음이 생겼었다. 이제 그 은발이 머리 위를 덮고 있다.
어려서는 남이 슬퍼할 때 눈물 없는 사람처럼 함께 울지 못해 민망스러웠다. 해방직후엔 연령의 제한이 없이 입학이 허가되어 특히 시골학교 신입생들은 나이차가 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엔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슬피 우는 졸업생 틈에서 가장 어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멋쩍어 쿡쿡거리다 서둘러 식장을 빠져나왔다. 연령과 눈물은 비례하는가 보다. 많은 학생들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상급학교 진학은 생각지도 못하는 설움들로 그들은 눈물의 졸업식을 한 것이다.
젊었을 때는 눈물이 인색할 만큼 냉철하고 이성적이라는 평을 얻은 반면 말이 적어 냉정하고 거만하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옅은 햇살도 눈물샘을 따갑게 자극하는 나이, 이젠 잎새에 이는 가는 바람 한 자락에도 눈물이 핑하고 돈다. 말랐던 눈물샘이 해가 지날수록 넘쳐흐르니 수문이 열린 것일까? 노화현상이겠지만 눈물 속에 젊음의 모난 뿔이 녹아지며 철이 나고 성숙하는가보다.
엊그제 오랜만에 화원에 들렸다. 과일나무와 정원수는 물론 비닐화원에서 방금 옮겨 온 화사한 모습의 화초들이 손을 내밀고 ‘나를 데려가 주세요.’ 말하듯 따뜻한 햇볕에 웃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안고 나오고 싶었다.
이만큼 문밖을 나서니 일일 노동자들이 담 벽에 기대서서 제발 데려가 일을 시켜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지나는 차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들 모두를 데려다 시킬 만한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도 저래도 눈물 때문에 주체스럽다. 새해 들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많은 뉴스들이 안쓰럽고 눈물겹다.
며칠 전 보스턴의 큰 딸 내외가 한 살 반이 된 손자를 데리고 다녀갔다. 벌써 그 녀석 생각에 혼자서 눈물이 핑 돌다가 웃다가 한다. 이 세상 안타깝고 슬픈 일도 많으나 그보다 감사한 일들로 눈물을 또 닦는다.
나이가 가져다 준 불청객들
조옥동/시인
새해가 되면 괜한 생각이 든다. 어려서는 한 살을 더 먹으면 빨리 선배가 되고 어른이 된다는 생각에 내심 좋아 했으나 언제부터인지 생각이 바뀌었다. 송구영신 예배시 남편으로부터 제일 먼저 생일축하를 받는다. 생일이 1월 1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출생하고도 몇 날이나 몇 달 뒤 또는 맨 마지막 달에 생일을 맞는 사람에 비하여 새해 첫날부터 나이를 먹는 억울함을 느낀다. 나이가 가져오는 불청객들 때문이다.
나이가 늘면서 찾아오는 백발은 옛사람 말대로 막대로도 가시로도 막을 수 없다. 대학교시절, 어떤 노교수의 정년 퇴임식이 있던 날, 한 학생이 떠나는 은사를 향해 노래를 불렀다. 은사의 머리가 은발로 변할 때까지 가르치신 뜻을 기리며 “젊은 날의 꿈들 한갓 헛된 꿈이랴/윤기 흐르던 머리 이젠 자취 없어라/......지난날을 더듬어 내게 은발 남기리” 하는 가사의 ‘은발’을 노래했다. 그때 “은발‘이란 말이 참 귀하게 느껴졌고 언젠가 나도 아름다운 은발이 되리라 생각했다.
남편은 40대중반이 되자 흰머리가 점점 늘어갔다. 젊은 시절 내가 반했던 그의 패기가 차차 누그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머리에 심겨지는 은발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남편에만 측은한 마음이 생겼었다. 이제 그 은발이 머리 위를 덮고 있다.
어려서는 남이 슬퍼할 때 눈물 없는 사람처럼 함께 울지 못해 민망스러웠다. 해방직후엔 연령의 제한이 없이 입학이 허가되어 특히 시골학교 신입생들은 나이차가 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엔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슬피 우는 졸업생 틈에서 가장 어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멋쩍어 쿡쿡거리다 서둘러 식장을 빠져나왔다. 연령과 눈물은 비례하는가 보다. 많은 학생들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상급학교 진학은 생각지도 못하는 설움들로 그들은 눈물의 졸업식을 한 것이다.
젊었을 때는 눈물이 인색할 만큼 냉철하고 이성적이라는 평을 얻은 반면 말이 적어 냉정하고 거만하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옅은 햇살도 눈물샘을 따갑게 자극하는 나이, 이젠 잎새에 이는 가는 바람 한 자락에도 눈물이 핑하고 돈다. 말랐던 눈물샘이 해가 지날수록 넘쳐흐르니 수문이 열린 것일까? 노화현상이겠지만 눈물 속에 젊음의 모난 뿔이 녹아지며 철이 나고 성숙하는가보다.
엊그제 오랜만에 화원에 들렸다. 과일나무와 정원수는 물론 비닐화원에서 방금 옮겨 온 화사한 모습의 화초들이 손을 내밀고 ‘나를 데려가 주세요.’ 말하듯 따뜻한 햇볕에 웃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안고 나오고 싶었다.
이만큼 문밖을 나서니 일일 노동자들이 담 벽에 기대서서 제발 데려가 일을 시켜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지나는 차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들 모두를 데려다 시킬 만한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도 저래도 눈물 때문에 주체스럽다. 새해 들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많은 뉴스들이 안쓰럽고 눈물겹다.
며칠 전 보스턴의 큰 딸 내외가 한 살 반이 된 손자를 데리고 다녀갔다. 벌써 그 녀석 생각에 혼자서 눈물이 핑 돌다가 웃다가 한다. 이 세상 안타깝고 슬픈 일도 많으나 그보다 감사한 일들로 눈물을 또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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