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천년산행
2007.11.13 18:28
서평 천년산행
신영철
박원식은 전생(前生)에 분명 스님이었을 것이다. 안경알 속에서 빛나는 그윽한 눈빛이 그렇고 매사 삼가는 몸가짐이 그렇다. 가만 바라보고 있자면 역시 동가숙 서가식하는 운수납자(雲水衲子)상(像)이다. 박원식은 정말 운수납자가 되어 몇 년간 전국의 산을 떠돌았고 그 결과물을 이제 세상에 내 놓았다.
바로 <천년산행>이다. 그의 전생에 대한 상상이 맞을 것 같은 혐의(嫌疑)는 그의 글에서 나타난다. 이번에 세상에 내 놓은 책은 세상을 달관한 선사들의 오도송처럼 정중동이다. 결코 과장되거나 현란한 수사가 아닌, 샘 깊은 물에서 갓 길어 올려 그런지 서늘한 청빈이 묻어나는 글이다.
그가 지금껏 펴낸 책 역시 그 혐의를 돕고 있다. <속리산> <산 깊은 강> <바닷가에 절이 있었네> <산촌여행의 황홀>이 그런 거 아닌가. 속세를 떠났다는 속리(俗離). 성철스님의 트레이드 마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한번 더 압축한 산 깊은 강. 처처에 부처님이 있다는 뜻의 바닷가에 절이 있다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 궁벽한 산촌여행이 황홀하다는 사람은 스님 네가 제격이다.
그러므로 박원식이 전생에 탁발 다니던 스님이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현세의 박원식을 들여다보면 안 보이던 부분도 보일 것 같다.
물론 현세의 박원식은 스님이 아니고 자연주의자다. 그가 써낸 르포도 그렇고 여행기도 그렇다.
박원식의 신간 <천년산행>은 묵직한 책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인공은 바보 온달에서부터 최치원, 김시습, 정약용, 이매창, 김삿갓, 근대 선종을 이르킨 경허, 만공스님. 거기에 증산도의 시조 강증산에 이르기까지 이십 여명의 선지식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책 속에서 깨워 궤적을 좇고 그들을 앞장 세워 산을 오른다. 그 정신적 스승들이 보고, 느꼈고, 만졌을 산을 저자는 함께 관조한다.
그것은 시공을 떠나 선지식들과 교감할 수 있는, 자연의 이법을 함께 나누려는 작가의 상상력이 쌓은 피안의 산이다. 더불어 고맙게도 저자는 독자들도 천년산행에 동참시키는 장치를 은밀하게 책 속에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천년산행>은 묵직한 책인 동시에 술술 읽히는 가벼운 책이다. 도인들이 풍류했던 산을 자신의 눈이라는 창을 통해 엿보는 박원식은 스승을 가끔 비틀기도 하고 꼬집기도 한다. 그러므로 독자는 근대적으로 재해석이 된 선인들 생각을 읽으며 미소를 머금는다. 현모양처로 추앙받고 급기야는 한국은행 오천원권 모델로 선정된 신사임당의 해석도 그렇다.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밀어내는 풍속과 규율에 딴지를 걸지 않고서도 우아한 생애를 경험했으니까 그런 점에서(사임당은) 어쩌면 고급 속물이거나 여우였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왜 손가락을 보냐는 박원식 식의 선문답 표현이다. 그리고 영원한 어머니상으로 기억하는 사임당에 대한 독자들 생각에 오금을 지른다.
“이런 사임당을 오직 현모양처의 대표모델로서만 추켜세운다면 그건 썰렁한 올드 뉴스다.”라고.
작가에게 연필은 무장의 칼과 같다. 혹자는 필(筆)이 검(劍)을 능가한다고 하지만 박원식은 필도 칼도 궁구하는 궁극의 목적은 같다고 넌지시 말한다. 임경업 장군을 오랜 잠에서 깨워 함께 오른 속리산에서의 단상이다.
때여! 다시 오지 않나니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 것이 이와 같네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석 자 추련검을 십년 동안 갈고 닦았네
임경업이 쓴 검명시를 인용하며 장부의 인생을 논하지만 결국 그 말은 저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인연이 아닐까? 기실 중앙대 문창과를 나와 평생 글을 써야 될 운명으로서, 검과 필의 차이를 작가는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검명시를 채록한 작가의 의도는 진솔한 메타포로 볼 수 있다. 그렇듯 박원식 검, 필 끝은 예리하다. 문헌을 뒤지고 인터넷 서핑을 통하여 쉽게 얻은 정보를 재가공하는 그런 가벼움이 <천년산행>에는 없다.
책을 읽어가며 다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덕숭산 만공(滿空)선사 이야기다. 만공(滿空)을 현대 조계종을 일으켜 세운 무애탕탕 견성한 선사라고 보는 시각과 풍류객이라고 폄하하는 입방아가 존재한다. 나는 후자고 작가는 물론 전자다. 그 이야기는 연전 작가가 거주하는 청주 목로주점에서 한번 회자가 된 적이 있다. 스님 만공이 행했던 수많은 기행과 만행. 대취하기를 즐기고 안주로 고기를 먹고 여자를 품는, 그 상황 넘어 도달한 선지식을 보라는 것이다.
만공이 만든 소림초당에 이르려면 갱진교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달 밝은 밤이면 만공은 황실에서 뜯던 거문고를 타며 홀로 즐겼다고 했다. 갱진교는 갱진일보(更進一步)라는 불가의 말이고 그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즉, 절벽 끝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라는 말이다. 작가는 깨우쳤다는 그 지점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석을 붙여 놓는다. 그러나 그런 천근만근 같은 선문답을 모른 채 현상 그대로 본 나는 소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소인이면 어떻고 대인이면 어떨까. 박원식이 다산 정약용 편의 귀결에 ‘다산이 관 뚜껑 확- 열고 나오면 제일 먼저 낮은 곳에 임’할 거라고 말했잖은가.
사람이 있음으로 산을 사유할 수 있다. 산은 사람을 품으므로 서 한층 풍요로워진다. 이 책을 곰곰 읽다보면 높이가 갖는 상징성보다 깊이가 주는 울림이 심연처럼 깊다.
<천년산행>은 능선, 바위, 풀, 골짜기, 오솔길, 들꽃등 총 6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세심한 고증과 고문헌의 발굴과 함께 저자는 독자들과 함께 직접 그 산을 오른다. 산의 나라, 산의 민족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산의 또 다른 풍경을 작가는 슬며시 끄집어 내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오름짓으로 끝낼 산이 아니라 역사와 삶이 숨쉬었던 공간으로서의 산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스쳐 지나칠 풍경에도 작가는 시나브로 감성이 번지는 글로, 때로는 웃음끼 어린 표정으로 그리고 있다.
박원식은 원래 소설을 쓰는 작가다. 199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모래의 섬>으로 당선된 어엿한 소설가다. 그러므로 작가적 상상력과 서사 구조로 독자를 한 눈팔지 못하게 관리하며 목적한 산정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런 배려와 마음 씀씀이가 <천년산행>에선 곳곳에 빛을 발하고 있다. 책은 읽지만 그림은 본다. <천년산행>에서 소개하는 배경이 ‘사람과 산’ 신준식 사진기자등이 찍은 사진으로 더 풍성해진다.
마지막으로 박원식은 보너스를 준비한다. 저자가 소개한 산행 가이드 ‘자연과 역사의 감동 드라마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 산 안내’를 책의 말미에 붙였다. 등산안내와 함께, 교통정보, 먹을거리와 볼거리등 주변도 함께 수록한 배려를 해 놓은 것이다.
박원식은 산정에서 홀딱 벗고 춤추기를 좋아한다고 밝힌다. 그게 몸에 걸친 옷을 모두 벗는다는 것인지 풍진 마음의 옷을 벗는다는 말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게 박원식 사유의 지평을 넓혀준 산에 대한 헌무(獻舞)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발로 써 내려간 글. 구름이 자유롭듯 운수(雲水)의 길 역시 자유롭다. 그리고 작가가 도달하려는 그 길의 끝은 영원한 자연과 합일을 이루려는 길이다.
그의 책에서 고단한 잠을 깬 지혜로운 선조들의 입을 빌려 ‘사람은 자연과 둘이 아니다’고 하는 박원식의 할!(曷)은 얼마나 시원한 일갈이냐.
박원식은 그의 책에 불러낸 선지식들을 다시 돌려보내며 능청스레 삼가는 말을 덧붙인다.
“그렇다면 이 화려한 강사진의 협찬으로 말미암아 산을 바라보는 나의 안목이 좀 트였나? 어림없다.”
신영철
박원식은 전생(前生)에 분명 스님이었을 것이다. 안경알 속에서 빛나는 그윽한 눈빛이 그렇고 매사 삼가는 몸가짐이 그렇다. 가만 바라보고 있자면 역시 동가숙 서가식하는 운수납자(雲水衲子)상(像)이다. 박원식은 정말 운수납자가 되어 몇 년간 전국의 산을 떠돌았고 그 결과물을 이제 세상에 내 놓았다.
바로 <천년산행>이다. 그의 전생에 대한 상상이 맞을 것 같은 혐의(嫌疑)는 그의 글에서 나타난다. 이번에 세상에 내 놓은 책은 세상을 달관한 선사들의 오도송처럼 정중동이다. 결코 과장되거나 현란한 수사가 아닌, 샘 깊은 물에서 갓 길어 올려 그런지 서늘한 청빈이 묻어나는 글이다.
그가 지금껏 펴낸 책 역시 그 혐의를 돕고 있다. <속리산> <산 깊은 강> <바닷가에 절이 있었네> <산촌여행의 황홀>이 그런 거 아닌가. 속세를 떠났다는 속리(俗離). 성철스님의 트레이드 마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한번 더 압축한 산 깊은 강. 처처에 부처님이 있다는 뜻의 바닷가에 절이 있다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 궁벽한 산촌여행이 황홀하다는 사람은 스님 네가 제격이다.
그러므로 박원식이 전생에 탁발 다니던 스님이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현세의 박원식을 들여다보면 안 보이던 부분도 보일 것 같다.
물론 현세의 박원식은 스님이 아니고 자연주의자다. 그가 써낸 르포도 그렇고 여행기도 그렇다.
박원식의 신간 <천년산행>은 묵직한 책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인공은 바보 온달에서부터 최치원, 김시습, 정약용, 이매창, 김삿갓, 근대 선종을 이르킨 경허, 만공스님. 거기에 증산도의 시조 강증산에 이르기까지 이십 여명의 선지식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책 속에서 깨워 궤적을 좇고 그들을 앞장 세워 산을 오른다. 그 정신적 스승들이 보고, 느꼈고, 만졌을 산을 저자는 함께 관조한다.
그것은 시공을 떠나 선지식들과 교감할 수 있는, 자연의 이법을 함께 나누려는 작가의 상상력이 쌓은 피안의 산이다. 더불어 고맙게도 저자는 독자들도 천년산행에 동참시키는 장치를 은밀하게 책 속에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천년산행>은 묵직한 책인 동시에 술술 읽히는 가벼운 책이다. 도인들이 풍류했던 산을 자신의 눈이라는 창을 통해 엿보는 박원식은 스승을 가끔 비틀기도 하고 꼬집기도 한다. 그러므로 독자는 근대적으로 재해석이 된 선인들 생각을 읽으며 미소를 머금는다. 현모양처로 추앙받고 급기야는 한국은행 오천원권 모델로 선정된 신사임당의 해석도 그렇다.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밀어내는 풍속과 규율에 딴지를 걸지 않고서도 우아한 생애를 경험했으니까 그런 점에서(사임당은) 어쩌면 고급 속물이거나 여우였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왜 손가락을 보냐는 박원식 식의 선문답 표현이다. 그리고 영원한 어머니상으로 기억하는 사임당에 대한 독자들 생각에 오금을 지른다.
“이런 사임당을 오직 현모양처의 대표모델로서만 추켜세운다면 그건 썰렁한 올드 뉴스다.”라고.
작가에게 연필은 무장의 칼과 같다. 혹자는 필(筆)이 검(劍)을 능가한다고 하지만 박원식은 필도 칼도 궁구하는 궁극의 목적은 같다고 넌지시 말한다. 임경업 장군을 오랜 잠에서 깨워 함께 오른 속리산에서의 단상이다.
때여! 다시 오지 않나니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 것이 이와 같네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석 자 추련검을 십년 동안 갈고 닦았네
임경업이 쓴 검명시를 인용하며 장부의 인생을 논하지만 결국 그 말은 저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인연이 아닐까? 기실 중앙대 문창과를 나와 평생 글을 써야 될 운명으로서, 검과 필의 차이를 작가는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검명시를 채록한 작가의 의도는 진솔한 메타포로 볼 수 있다. 그렇듯 박원식 검, 필 끝은 예리하다. 문헌을 뒤지고 인터넷 서핑을 통하여 쉽게 얻은 정보를 재가공하는 그런 가벼움이 <천년산행>에는 없다.
책을 읽어가며 다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덕숭산 만공(滿空)선사 이야기다. 만공(滿空)을 현대 조계종을 일으켜 세운 무애탕탕 견성한 선사라고 보는 시각과 풍류객이라고 폄하하는 입방아가 존재한다. 나는 후자고 작가는 물론 전자다. 그 이야기는 연전 작가가 거주하는 청주 목로주점에서 한번 회자가 된 적이 있다. 스님 만공이 행했던 수많은 기행과 만행. 대취하기를 즐기고 안주로 고기를 먹고 여자를 품는, 그 상황 넘어 도달한 선지식을 보라는 것이다.
만공이 만든 소림초당에 이르려면 갱진교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달 밝은 밤이면 만공은 황실에서 뜯던 거문고를 타며 홀로 즐겼다고 했다. 갱진교는 갱진일보(更進一步)라는 불가의 말이고 그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즉, 절벽 끝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라는 말이다. 작가는 깨우쳤다는 그 지점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석을 붙여 놓는다. 그러나 그런 천근만근 같은 선문답을 모른 채 현상 그대로 본 나는 소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소인이면 어떻고 대인이면 어떨까. 박원식이 다산 정약용 편의 귀결에 ‘다산이 관 뚜껑 확- 열고 나오면 제일 먼저 낮은 곳에 임’할 거라고 말했잖은가.
사람이 있음으로 산을 사유할 수 있다. 산은 사람을 품으므로 서 한층 풍요로워진다. 이 책을 곰곰 읽다보면 높이가 갖는 상징성보다 깊이가 주는 울림이 심연처럼 깊다.
<천년산행>은 능선, 바위, 풀, 골짜기, 오솔길, 들꽃등 총 6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세심한 고증과 고문헌의 발굴과 함께 저자는 독자들과 함께 직접 그 산을 오른다. 산의 나라, 산의 민족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산의 또 다른 풍경을 작가는 슬며시 끄집어 내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오름짓으로 끝낼 산이 아니라 역사와 삶이 숨쉬었던 공간으로서의 산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스쳐 지나칠 풍경에도 작가는 시나브로 감성이 번지는 글로, 때로는 웃음끼 어린 표정으로 그리고 있다.
박원식은 원래 소설을 쓰는 작가다. 199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모래의 섬>으로 당선된 어엿한 소설가다. 그러므로 작가적 상상력과 서사 구조로 독자를 한 눈팔지 못하게 관리하며 목적한 산정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런 배려와 마음 씀씀이가 <천년산행>에선 곳곳에 빛을 발하고 있다. 책은 읽지만 그림은 본다. <천년산행>에서 소개하는 배경이 ‘사람과 산’ 신준식 사진기자등이 찍은 사진으로 더 풍성해진다.
마지막으로 박원식은 보너스를 준비한다. 저자가 소개한 산행 가이드 ‘자연과 역사의 감동 드라마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 산 안내’를 책의 말미에 붙였다. 등산안내와 함께, 교통정보, 먹을거리와 볼거리등 주변도 함께 수록한 배려를 해 놓은 것이다.
박원식은 산정에서 홀딱 벗고 춤추기를 좋아한다고 밝힌다. 그게 몸에 걸친 옷을 모두 벗는다는 것인지 풍진 마음의 옷을 벗는다는 말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게 박원식 사유의 지평을 넓혀준 산에 대한 헌무(獻舞)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발로 써 내려간 글. 구름이 자유롭듯 운수(雲水)의 길 역시 자유롭다. 그리고 작가가 도달하려는 그 길의 끝은 영원한 자연과 합일을 이루려는 길이다.
그의 책에서 고단한 잠을 깬 지혜로운 선조들의 입을 빌려 ‘사람은 자연과 둘이 아니다’고 하는 박원식의 할!(曷)은 얼마나 시원한 일갈이냐.
박원식은 그의 책에 불러낸 선지식들을 다시 돌려보내며 능청스레 삼가는 말을 덧붙인다.
“그렇다면 이 화려한 강사진의 협찬으로 말미암아 산을 바라보는 나의 안목이 좀 트였나?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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