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팔꽃 피는 창가에
2007.01.22 20:25
두 권의 책, 그 속에 넘실거리는 히말라야의 바람
글. 신영철<소설가>
15년 만이다. 김홍성(52)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 나온 것은. 두번 째를 기념하듯 산문집도 함께 나왔다.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문학동네)가 나왔고, 뒤이어 산문집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세상의 아침)도 발간되었다. 두 권의 책을 펴낸 김홍성 시인은 소심한 사람이다. 이십 년 전, 고은 시인의 추천을 받아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자신의 책을 만드는 일에는 무척 소심했다. 글 쓰는 게 직업인 잡지사 기자와 편집장을 거친 이력을 보면, 그동안 책 몇 권쯤 나왔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소심한 성격 그대로, 안으로만 삭힌 그의 시와 산문은,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을 훌쩍 넘기고 이제야 나왔다.
출간 된 그의 책을 들고 나는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 아무나 출판을 해 대는 책 홍수 속에 그의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의 책은 히말라야를 떠돌았던 시인의 방랑이, 네팔에 부는 바람이 만들어 준 것이다. 아니, 그 말은 틀렸다. 그의 책은 그의 아내가 만들어 준 울음의 저작이다.
10여년이 넘도록 김시인은 아시아의 오지이자 히말라야 들머리인 네팔에 살았다. 거기서 그의 아내 정명경씨와 ‘소풍’이라는 조그마한 밥집을 운영했다. 그러다 작년 4월에 시인의 고향 포천 산정호수 인근으로 귀향했다. 아내 손을 잡고 네팔을 오 갈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그러다 소심하고 겁 많은 시인은, 자신의 몸이 불편하여 평소 히말라야 병을 함께 앓던 지인 임현담 병원을 들렸다. 그러나 막상 시인은 이상이 없었고 “난 건강한데 뭘...”이라고 손사래를 쳤던 아내는, 거기서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희망은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것일까. 그러므로 이 책들은 그의 아내를 위해 서둘러 출간 된 것이다. 십년이 넘게 묵히고 곱씹었던 그의 글은, 시인의 소심함을 생각건대 발간이 더 늦어 질 수도 있었다. 한 줌 희망도 없는 투병 일 년을 넘기며 시인은 서둘렀다. 가난한 시인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번듯하게 출간된 책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길어야 육 개월이란 선고를 내렸지만, 그의 아내는 일 년 삼 개월을 기다려 주었다. “죽기 전 당신의 책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뜻은 이루어져, 임종하기 직전에 책이 세상에 나왔다.
두 부부만 살던 산골 집에서 어둠이 밀려오면, 시인은 자신의 책을 낭송해 주었다고 했다. 네팔에서 함께 히말라야 산록을 걷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되살아 난 그의 시, 혹은 산문을 들으며 그녀는 “참 좋다! 참 좋아.” 라고 말했고. 책이 나온 나흘 후인 7월 2일 세상을 접었다.
“어젯밤 내 머리맡엔/ 냉수 한 사발이 있었다/ 목마른 새벽에 마시라고/ 아내가 놓아준/ 냉수 한 사발이 있었다/ 어지러운 꿈꾸며/ 몸부림치다 엎지른/ 냉수 한사발이 있었다/ 언제 였던가/ 베게가 젖도록/ 울어 본 일은.”
‘냉수 한 사발’의 시를 읽으며, 시인도 그의 아내도 피할 수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고즈넉한 산속의 밤, 이 시를 읽어주는 시인과 그의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그림이 떠오르면 갑자기 먹먹해지고 코가 매워진다.
말기 암 환자가 그렇듯 다량의 진통제가 필요한 아내에게 시를 읽어주는 남편. 시를 썻던 배경을 훤히 꿰고 있는 아내. 다시 못 올 길을 천천히 준비했던 부부. 떠날 준비와 보낼 준비를 하는 부부. 시인은 ‘부부’라는 시에서 이렇게 현생의 삶을 규명한다.
“서로 바라봅니다/ 눈을, 어깨를, 손과 가슴을 바라봅니다/ 밝은 미소와 슬픈 눈물을, 기쁜 노래와 우울한 독백을/ 뒷모습이나 그림자도 바라봅니다/ 세월이 지나 갑니다/ 고통스런 침묵의 날, 공연히 들떠서 낄낄대던 날/ 불같이 치미는 분노의 날. -중략-
여늬 부부들처럼 이들 역시 그렇게 웃고 분노하고 실없이 낄낄 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투병 일 년 삼 개월은, 이들에게 이별 연습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었을게다. 이들 부부는 독실한 불교도였다. 그들의 부처님은 힘이 세다. 부처님 말씀으로 지난했던 방랑의 세월을 견디어냈듯 그 말씀으로, 다가서는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했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때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맑게 웃던 얼굴에서 담담히 운명을 받아 드리는 인간의 아우라를 봤고, 그 힘은 그녀가 한시도 놓지 않았던 염주에서 나 온 것을 알았다.
그녀는 시인에게, 곧 세상을 버릴 자신을 지켜 볼 수 있게 격려했다. 사후 처리 방법과 홀로 버틸 수 있는 지혜를 나누었다. 그리고 부처님 고향 네팔 룸비니에 있는 한국 절 대성석가사에 자신의 유골을 안치해 달라고 말했다.
시인은 사십 구제를 마치는 다음 달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네팔로 떠난다. 시인이 사랑했던 아내는 한 줌 하얀 추억으로 남았으나, 예전처럼 함께 여행을 할 것이다.
시인의 산문집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역시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의 길이다. 비록 그녀와 동행 했던 길은 아니지만 황량한 라닥과 잔스카르 트레킹을 하며 시인은 끊임없이 용서를 구한다. 자고 깨면 걷고 또 걷는 행정에서 ‘자고 깨는 짧은 꿈과, 나고 죽는 긴 꿈’에 대한 사유를 한다. 체력의 한계치까지 자신의 몸을 혹사하면서 시인은 무엇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원했을까. 시인은 구도자처럼 희박한 공기 속을 걸으며 만다라처럼 피어난 하얀 화엄의 봉우리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찍었다. 시인의 감성 필터를 지난 사진은 그러므로 따듯하다. 용서와 화해를 화두처럼 안고 길을 가는 시인의 가슴에는 늘 그 아내가 도사리고 있었다.
시인이 아내를 보낸 산정호수 근처에는 울음산이 있다. 꼭 시인에게 맞춤인 그 울음산에서는 그때 네팔에서 부부가 들었던 뻐국이가 울었다. 운 게 뻐국이 뿐일까. 시인도 아내도 참 많이 울었다. 그런 감성들에 더 해 발로 쓴 산문은 그래서 절절하다.
시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시인의 지인이었던 이목일, 강찬모 화가와 자신의 사진 전시회를 인사동에서 열었다. 그 전시회 이름이 ‘미움 사랑 그리고 우정’이었다. 그녀의 투병을 돕고자 마련된 지인들의 정성을 나흘 앞두고, 서둘러 그녀는 길을 떠났다.
이제 하늘나라로 돌아 간 그녀에게 시인과 함께 걷던 히말라야는 없다. 시인이 노랫말을 썻고 그녀가 불렀던 ‘푸른 룽다’처럼 히말라야에 부는 바람에서 그녀를 기억하거나, 소설 같은 순정 속에 세상 살다 간, 추모 시집 혹은 산문에서 그녀를 생각 할 일이다. 시인은 그래서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
“다시 저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 가 지쳐서 쓰러 질 때까지 걸어 보고 싶은 건 무슨 까닭일까요?”
글. 신영철<소설가>
15년 만이다. 김홍성(52)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 나온 것은. 두번 째를 기념하듯 산문집도 함께 나왔다.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문학동네)가 나왔고, 뒤이어 산문집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세상의 아침)도 발간되었다. 두 권의 책을 펴낸 김홍성 시인은 소심한 사람이다. 이십 년 전, 고은 시인의 추천을 받아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자신의 책을 만드는 일에는 무척 소심했다. 글 쓰는 게 직업인 잡지사 기자와 편집장을 거친 이력을 보면, 그동안 책 몇 권쯤 나왔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소심한 성격 그대로, 안으로만 삭힌 그의 시와 산문은,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을 훌쩍 넘기고 이제야 나왔다.
출간 된 그의 책을 들고 나는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 아무나 출판을 해 대는 책 홍수 속에 그의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의 책은 히말라야를 떠돌았던 시인의 방랑이, 네팔에 부는 바람이 만들어 준 것이다. 아니, 그 말은 틀렸다. 그의 책은 그의 아내가 만들어 준 울음의 저작이다.
10여년이 넘도록 김시인은 아시아의 오지이자 히말라야 들머리인 네팔에 살았다. 거기서 그의 아내 정명경씨와 ‘소풍’이라는 조그마한 밥집을 운영했다. 그러다 작년 4월에 시인의 고향 포천 산정호수 인근으로 귀향했다. 아내 손을 잡고 네팔을 오 갈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그러다 소심하고 겁 많은 시인은, 자신의 몸이 불편하여 평소 히말라야 병을 함께 앓던 지인 임현담 병원을 들렸다. 그러나 막상 시인은 이상이 없었고 “난 건강한데 뭘...”이라고 손사래를 쳤던 아내는, 거기서 말기 암 진단을 받는다.
희망은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것일까. 그러므로 이 책들은 그의 아내를 위해 서둘러 출간 된 것이다. 십년이 넘게 묵히고 곱씹었던 그의 글은, 시인의 소심함을 생각건대 발간이 더 늦어 질 수도 있었다. 한 줌 희망도 없는 투병 일 년을 넘기며 시인은 서둘렀다. 가난한 시인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번듯하게 출간된 책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길어야 육 개월이란 선고를 내렸지만, 그의 아내는 일 년 삼 개월을 기다려 주었다. “죽기 전 당신의 책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뜻은 이루어져, 임종하기 직전에 책이 세상에 나왔다.
두 부부만 살던 산골 집에서 어둠이 밀려오면, 시인은 자신의 책을 낭송해 주었다고 했다. 네팔에서 함께 히말라야 산록을 걷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되살아 난 그의 시, 혹은 산문을 들으며 그녀는 “참 좋다! 참 좋아.” 라고 말했고. 책이 나온 나흘 후인 7월 2일 세상을 접었다.
“어젯밤 내 머리맡엔/ 냉수 한 사발이 있었다/ 목마른 새벽에 마시라고/ 아내가 놓아준/ 냉수 한 사발이 있었다/ 어지러운 꿈꾸며/ 몸부림치다 엎지른/ 냉수 한사발이 있었다/ 언제 였던가/ 베게가 젖도록/ 울어 본 일은.”
‘냉수 한 사발’의 시를 읽으며, 시인도 그의 아내도 피할 수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고즈넉한 산속의 밤, 이 시를 읽어주는 시인과 그의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그림이 떠오르면 갑자기 먹먹해지고 코가 매워진다.
말기 암 환자가 그렇듯 다량의 진통제가 필요한 아내에게 시를 읽어주는 남편. 시를 썻던 배경을 훤히 꿰고 있는 아내. 다시 못 올 길을 천천히 준비했던 부부. 떠날 준비와 보낼 준비를 하는 부부. 시인은 ‘부부’라는 시에서 이렇게 현생의 삶을 규명한다.
“서로 바라봅니다/ 눈을, 어깨를, 손과 가슴을 바라봅니다/ 밝은 미소와 슬픈 눈물을, 기쁜 노래와 우울한 독백을/ 뒷모습이나 그림자도 바라봅니다/ 세월이 지나 갑니다/ 고통스런 침묵의 날, 공연히 들떠서 낄낄대던 날/ 불같이 치미는 분노의 날. -중략-
여늬 부부들처럼 이들 역시 그렇게 웃고 분노하고 실없이 낄낄 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투병 일 년 삼 개월은, 이들에게 이별 연습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었을게다. 이들 부부는 독실한 불교도였다. 그들의 부처님은 힘이 세다. 부처님 말씀으로 지난했던 방랑의 세월을 견디어냈듯 그 말씀으로, 다가서는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했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때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맑게 웃던 얼굴에서 담담히 운명을 받아 드리는 인간의 아우라를 봤고, 그 힘은 그녀가 한시도 놓지 않았던 염주에서 나 온 것을 알았다.
그녀는 시인에게, 곧 세상을 버릴 자신을 지켜 볼 수 있게 격려했다. 사후 처리 방법과 홀로 버틸 수 있는 지혜를 나누었다. 그리고 부처님 고향 네팔 룸비니에 있는 한국 절 대성석가사에 자신의 유골을 안치해 달라고 말했다.
시인은 사십 구제를 마치는 다음 달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네팔로 떠난다. 시인이 사랑했던 아내는 한 줌 하얀 추억으로 남았으나, 예전처럼 함께 여행을 할 것이다.
시인의 산문집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역시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의 길이다. 비록 그녀와 동행 했던 길은 아니지만 황량한 라닥과 잔스카르 트레킹을 하며 시인은 끊임없이 용서를 구한다. 자고 깨면 걷고 또 걷는 행정에서 ‘자고 깨는 짧은 꿈과, 나고 죽는 긴 꿈’에 대한 사유를 한다. 체력의 한계치까지 자신의 몸을 혹사하면서 시인은 무엇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원했을까. 시인은 구도자처럼 희박한 공기 속을 걸으며 만다라처럼 피어난 하얀 화엄의 봉우리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찍었다. 시인의 감성 필터를 지난 사진은 그러므로 따듯하다. 용서와 화해를 화두처럼 안고 길을 가는 시인의 가슴에는 늘 그 아내가 도사리고 있었다.
시인이 아내를 보낸 산정호수 근처에는 울음산이 있다. 꼭 시인에게 맞춤인 그 울음산에서는 그때 네팔에서 부부가 들었던 뻐국이가 울었다. 운 게 뻐국이 뿐일까. 시인도 아내도 참 많이 울었다. 그런 감성들에 더 해 발로 쓴 산문은 그래서 절절하다.
시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시인의 지인이었던 이목일, 강찬모 화가와 자신의 사진 전시회를 인사동에서 열었다. 그 전시회 이름이 ‘미움 사랑 그리고 우정’이었다. 그녀의 투병을 돕고자 마련된 지인들의 정성을 나흘 앞두고, 서둘러 그녀는 길을 떠났다.
이제 하늘나라로 돌아 간 그녀에게 시인과 함께 걷던 히말라야는 없다. 시인이 노랫말을 썻고 그녀가 불렀던 ‘푸른 룽다’처럼 히말라야에 부는 바람에서 그녀를 기억하거나, 소설 같은 순정 속에 세상 살다 간, 추모 시집 혹은 산문에서 그녀를 생각 할 일이다. 시인은 그래서 ‘천년 순정의 땅, 히말라야를 걷다’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
“다시 저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 가 지쳐서 쓰러 질 때까지 걸어 보고 싶은 건 무슨 까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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