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더불어 2
2007.05.22 01:41
꽃과 더불어 2 "글마루“ 2002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신문에서 떠들던 그 벚꽃을 보고 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어떻게 어떻게 건너와서 여기 ‘볼보아’ 공원에 뿌리박게 되었다고 선전이 대단했던 그 벚꽃이다. 이번 주말로 꽃구경은 끝 날 것이라 했다. 나는 그 호들갑을 믿었다. 봄이면 눈 깜박 할 사이에 피고 지는 그 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한국이다 어디다 하며 떠나고 나서 일까. 허전하다. 나는 오랫만에 나만의 날을 가지리라 생각하며, 벚꽃 나무 아래서 책도 읽고, 구상이 떠오르면 글도 쓰리라 마음먹었다. 공책도 넣고 간이 의자도 차에 실었다. 고국의 화려한 봄맞이를 생각하며 만감을 싣고 차를 달렸다.
벚꽃을 찾아 떠나는 차 속에서는, 토요일 아침의 음악 프로로 오페라중의 사랑의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오페라 속의 주인공이 되어 같이 사랑을 노래했다. 꼭 창경원 벚꽃 나무 아래서 연애를 한 것 같은 애잔함이 나를 감싼다. 그러나 벚꽃 아래서 연애를 한 기억은 내게 없다. 그렇지만 더 한 사랑을 했다고 생각했다. 봄이면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때문이었겠지. 벚꽃 아래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을 사랑했고, 남편과 자식들을 사랑했다. 풀풀히 눈 같이 흩날리던 꽃나무 아래서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던 그들. 또 꽃잎과 함께 먹던 도시락의 단 맛. 실큰 사 먹지도 못했던 아이스케익과 솜사탕의 감미로움. 각색 차림의 사람들의 봄의 찬미는 창경원을 불꽃으로 터뜨린 듯 했다. 하늘 보고 땅 보고, 땅 보고 하늘 보며, 가는 하루가 아쉬웠던 봄나들이의 기쁨과 서글픔이 교차 된 날들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봄이면 봄마다 갖는 조바심은 “창경원 벚꽃이 지기 전에...”였다. 그 때를 놓칠까 보아, 또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될까 봐서 조바심하며 봄을 맞았다. 봄을 맞는 설레임은 추운 겨울을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맞는 봄이다. 어떻게 해서든 봄을 찾아 나서야 했다. 여기 ‘로스앤젤레스’에서 맞는 김이 빠진 봄이 아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쁨이다. ‘데스 밸리’의 사막 꽃 필 때의 설레임도 이보다는 덜 하다.
그랬는데 찾아간 그곳은 내가 그렸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파란 하늘을 밀어 올리고 핀 가지에서 기쁨의 꽃잎파리를 날리던 곳. 땅에도 온통 꽃잎이 쌓여서 하늘과 땅을 서로 바꿔 놓아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런 내 나라의 봄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대로 꽃은 피었다. 하늘 높이 활짝 핀 것이 아니라 애송이 나무에 가냘프게 피었다. 훤칠하게 나이테를 얹은 내 나라 벚나무에 비하면 빈약해서 측은하기까지 한 나무들. 내 기대가 송두리째 뽑힌 봄나들이었다. 내려서 의자를 펼 기분도 나지 않아, 빙빙 주위를 차로 돌다가 집으로 돌아섰다.
하루를 잡쳤을까. 아니다. 벚꽃 만치 아름다운 꽃이 또 있었을까 생각하고 있는 다음 순간이다. 벌써 튜립이 필 ‘데스칸소 가든’을 떠올린다. 이월 달에 피는 동백꽃부터 시작해서, 계절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는 그 정원에 가 보고 싶다. 천방지축 꽃광인 나는 벌써 딴 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좋아하는 꽃 하면, 나는 들판에 하찮게 핀 야생화도 좋아한다. 때에 따라 기분에 따라, 또 새로운 꽃이 필 때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된다. 그 꽃들은 청량제요 사색의 원동력이다. 아무리 고달파도 꽃을 대하면 구겨졌던 마음이 다름 질 된다. 또 꽃을 대할 때마다의 경이로움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삼십 년을 꽃 만지는 일로 몽땅 세월을 보냈어도 후회하지 않지만, 그러나 어느새 세월은 훌쩍 가 버렸다.
우리 꽃 일 하는 사람들은 가끔 무료할 때,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너 죽으면 관 꽃 뭣으로 해 줄까. 그러면 나는 “흰 꽃”하고 대답한다. 부슨 흰 꽃? 죽은 사람이 뭘 가리겠어, 아무 흰 꽃이라도 좋아. 그래도? 하고 물으면, 글쎄 내가 봄에 죽어야 벚꽃을 꽂아 주겠지? 관에 어떻게 벚꽃을 꽂니? 나는 말한다. 걱정하지마. 벚꽃 본 후에 죽을 테니까. 그러나 다음에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관 꽃 없이 묻었다가 봄에 벚꽃이 피면 한 아름 꺾어다 비석 위에 놔 달라고 말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벚꽃이 되었다. 나는 벚꽃을 틀림없이 참 좋아한다. 그러나 튜립도 틀림없이 좋아한다. 장미도, 나르시사스, 그리고 수선화, 후리지아, 아네모네도 다 좋아한다. 그러나 이 꽃이 가장 좋아...하고 나올 답이 있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 신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벚꽃에 대해서, 미 국립 수목원 연구생이 쓴 글이 실려 있었다. 아무리 일본 사람들이 떠들어대지만 워싱턴의 cherry blossom인 벚꽃은 제주도가 고향이란다. 이름을 “왕 벚꽃 나무”라 했다. 그 꽃이 아주 커서 “왕” 자를 붙인 모양이다. 먼저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좀 더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지 못 했을까. 수풀 뒤의 소요라던가 별의 그림자이라던가 하는 꿈이 있는 이름, 아무리 크고 아름답다 해도 “왕 벚꽃” 하면 향수가 없지 않은가. 또 그 아픔다운 제주도 왕 벚꽃을 어느만큼 파생시켜 사람들을 즐기게 했는지 연수생님도 아쉬워했다. 모르기는 몰라도, 홑겹으로 새털 같은 창경원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심고 간 일본 종자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그 나무가 좋아서 백 년 전에 벌써 미국에 가져왔다. 지금도 여기에다 심어놓고 호들갑을 떨어 멀리까지 갖다 오지 않았는가. 또 막 보고 온 가냘픈 나무들도 백년 후에는 워싱턴의 벚나무 같이 자라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와 보게 되리라. 연수생 말대로 부러운 일이다.
-꽃과 더불어- 는 두 번째 쓰는 글이다. 다음은 야생화에 대해 쓰고 싶다. 내 나라에서 봄마다 설레이며 맞았던 벚꽃 놀이는 내 꽃 추억 속의 으뜸이다. 벚꽃이여! 영원하라.
추기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들 가족이 한국 여행에서 돌아왔다. 들고 온 사진 속에는 벚꽃이 하얗게 아주 하얗게 피고 있었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경주라 했다. 웬 벚꽃이 이렇게도... 했더니, 눈이 닿은데가 다 벚꽃 세상이었단다. 또 벚꽃과 개나리가 곁 드린 사이로 석양이 뚫고 비친 경치는 바로 한 편의 동양화였다고도 했다. 동양화가 상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고, 벚꽃은 지금도 계속 심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내게 알렸다.
삼십 여 년 전의 한국만을 생각하고, 글을 쓴 나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벚꽃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해 온 내 나라의 봄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 보다도 훨씬 더 풍만하게 피었다는데 대해 나는 지금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머릿속에서만 들락날락하던 내 나라 사 계절을 오늘도 꿈꾸고 있는 중이다. 가보고 싶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신문에서 떠들던 그 벚꽃을 보고 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어떻게 어떻게 건너와서 여기 ‘볼보아’ 공원에 뿌리박게 되었다고 선전이 대단했던 그 벚꽃이다. 이번 주말로 꽃구경은 끝 날 것이라 했다. 나는 그 호들갑을 믿었다. 봄이면 눈 깜박 할 사이에 피고 지는 그 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한국이다 어디다 하며 떠나고 나서 일까. 허전하다. 나는 오랫만에 나만의 날을 가지리라 생각하며, 벚꽃 나무 아래서 책도 읽고, 구상이 떠오르면 글도 쓰리라 마음먹었다. 공책도 넣고 간이 의자도 차에 실었다. 고국의 화려한 봄맞이를 생각하며 만감을 싣고 차를 달렸다.
벚꽃을 찾아 떠나는 차 속에서는, 토요일 아침의 음악 프로로 오페라중의 사랑의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오페라 속의 주인공이 되어 같이 사랑을 노래했다. 꼭 창경원 벚꽃 나무 아래서 연애를 한 것 같은 애잔함이 나를 감싼다. 그러나 벚꽃 아래서 연애를 한 기억은 내게 없다. 그렇지만 더 한 사랑을 했다고 생각했다. 봄이면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때문이었겠지. 벚꽃 아래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을 사랑했고, 남편과 자식들을 사랑했다. 풀풀히 눈 같이 흩날리던 꽃나무 아래서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던 그들. 또 꽃잎과 함께 먹던 도시락의 단 맛. 실큰 사 먹지도 못했던 아이스케익과 솜사탕의 감미로움. 각색 차림의 사람들의 봄의 찬미는 창경원을 불꽃으로 터뜨린 듯 했다. 하늘 보고 땅 보고, 땅 보고 하늘 보며, 가는 하루가 아쉬웠던 봄나들이의 기쁨과 서글픔이 교차 된 날들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봄이면 봄마다 갖는 조바심은 “창경원 벚꽃이 지기 전에...”였다. 그 때를 놓칠까 보아, 또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될까 봐서 조바심하며 봄을 맞았다. 봄을 맞는 설레임은 추운 겨울을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맞는 봄이다. 어떻게 해서든 봄을 찾아 나서야 했다. 여기 ‘로스앤젤레스’에서 맞는 김이 빠진 봄이 아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쁨이다. ‘데스 밸리’의 사막 꽃 필 때의 설레임도 이보다는 덜 하다.
그랬는데 찾아간 그곳은 내가 그렸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파란 하늘을 밀어 올리고 핀 가지에서 기쁨의 꽃잎파리를 날리던 곳. 땅에도 온통 꽃잎이 쌓여서 하늘과 땅을 서로 바꿔 놓아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런 내 나라의 봄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대로 꽃은 피었다. 하늘 높이 활짝 핀 것이 아니라 애송이 나무에 가냘프게 피었다. 훤칠하게 나이테를 얹은 내 나라 벚나무에 비하면 빈약해서 측은하기까지 한 나무들. 내 기대가 송두리째 뽑힌 봄나들이었다. 내려서 의자를 펼 기분도 나지 않아, 빙빙 주위를 차로 돌다가 집으로 돌아섰다.
하루를 잡쳤을까. 아니다. 벚꽃 만치 아름다운 꽃이 또 있었을까 생각하고 있는 다음 순간이다. 벌써 튜립이 필 ‘데스칸소 가든’을 떠올린다. 이월 달에 피는 동백꽃부터 시작해서, 계절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는 그 정원에 가 보고 싶다. 천방지축 꽃광인 나는 벌써 딴 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좋아하는 꽃 하면, 나는 들판에 하찮게 핀 야생화도 좋아한다. 때에 따라 기분에 따라, 또 새로운 꽃이 필 때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된다. 그 꽃들은 청량제요 사색의 원동력이다. 아무리 고달파도 꽃을 대하면 구겨졌던 마음이 다름 질 된다. 또 꽃을 대할 때마다의 경이로움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삼십 년을 꽃 만지는 일로 몽땅 세월을 보냈어도 후회하지 않지만, 그러나 어느새 세월은 훌쩍 가 버렸다.
우리 꽃 일 하는 사람들은 가끔 무료할 때,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너 죽으면 관 꽃 뭣으로 해 줄까. 그러면 나는 “흰 꽃”하고 대답한다. 부슨 흰 꽃? 죽은 사람이 뭘 가리겠어, 아무 흰 꽃이라도 좋아. 그래도? 하고 물으면, 글쎄 내가 봄에 죽어야 벚꽃을 꽂아 주겠지? 관에 어떻게 벚꽃을 꽂니? 나는 말한다. 걱정하지마. 벚꽃 본 후에 죽을 테니까. 그러나 다음에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관 꽃 없이 묻었다가 봄에 벚꽃이 피면 한 아름 꺾어다 비석 위에 놔 달라고 말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벚꽃이 되었다. 나는 벚꽃을 틀림없이 참 좋아한다. 그러나 튜립도 틀림없이 좋아한다. 장미도, 나르시사스, 그리고 수선화, 후리지아, 아네모네도 다 좋아한다. 그러나 이 꽃이 가장 좋아...하고 나올 답이 있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 신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벚꽃에 대해서, 미 국립 수목원 연구생이 쓴 글이 실려 있었다. 아무리 일본 사람들이 떠들어대지만 워싱턴의 cherry blossom인 벚꽃은 제주도가 고향이란다. 이름을 “왕 벚꽃 나무”라 했다. 그 꽃이 아주 커서 “왕” 자를 붙인 모양이다. 먼저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좀 더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지 못 했을까. 수풀 뒤의 소요라던가 별의 그림자이라던가 하는 꿈이 있는 이름, 아무리 크고 아름답다 해도 “왕 벚꽃” 하면 향수가 없지 않은가. 또 그 아픔다운 제주도 왕 벚꽃을 어느만큼 파생시켜 사람들을 즐기게 했는지 연수생님도 아쉬워했다. 모르기는 몰라도, 홑겹으로 새털 같은 창경원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심고 간 일본 종자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그 나무가 좋아서 백 년 전에 벌써 미국에 가져왔다. 지금도 여기에다 심어놓고 호들갑을 떨어 멀리까지 갖다 오지 않았는가. 또 막 보고 온 가냘픈 나무들도 백년 후에는 워싱턴의 벚나무 같이 자라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와 보게 되리라. 연수생 말대로 부러운 일이다.
-꽃과 더불어- 는 두 번째 쓰는 글이다. 다음은 야생화에 대해 쓰고 싶다. 내 나라에서 봄마다 설레이며 맞았던 벚꽃 놀이는 내 꽃 추억 속의 으뜸이다. 벚꽃이여! 영원하라.
추기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들 가족이 한국 여행에서 돌아왔다. 들고 온 사진 속에는 벚꽃이 하얗게 아주 하얗게 피고 있었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경주라 했다. 웬 벚꽃이 이렇게도... 했더니, 눈이 닿은데가 다 벚꽃 세상이었단다. 또 벚꽃과 개나리가 곁 드린 사이로 석양이 뚫고 비친 경치는 바로 한 편의 동양화였다고도 했다. 동양화가 상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고, 벚꽃은 지금도 계속 심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내게 알렸다.
삼십 여 년 전의 한국만을 생각하고, 글을 쓴 나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벚꽃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해 온 내 나라의 봄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 보다도 훨씬 더 풍만하게 피었다는데 대해 나는 지금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머릿속에서만 들락날락하던 내 나라 사 계절을 오늘도 꿈꾸고 있는 중이다.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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