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색깔을 입히니

2007.05.04 02:41

배희경 조회 수:48

    사랑에 색깔을 입히니     "문학세계2005                                

  어느 한 가족의 비밀이 벗겨지는 날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양 귀가 없었다. 어릴 때 그가 친구들에게서 받은 놀림의 쓰라림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귀의 기증자가 나타났다. 그는 귀를 기증 받고 처음 정상인으로 세상을 살게 되었고 결혼도 했다.
   그런 그에게는 나이 드신 어머니가 계셨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장례식 날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와 마지막 작별 키쓰를 하기 위해 관에 다가갔다. 언제부터선가 풍성히 머리를 길러 양쪽 볼을 가리고 있던 어머니의 머리 밑에 손을 넣는 순간, 아들은 사색이 되어 관에서 물러났다. 어머니의 귀가 없어졌다. 어머니가 영원히 묻고 가고 싶었던 비밀을 알아 낸 아들은 대성통곡 하였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의 모습이 있다. 어떤 사랑이 크고 작다고 할 수 없는 사랑들이다. 나는 이 사랑을 색깔로 표현 해 보고 싶었다. 그러면 그 아들에게 귀를 떼어준 어머니의 사랑은 무슨 색일까. 자연 속에서 항상 보는 초원의 색이라면 어떨까. 환희로 덮은 생명의 색 초록색 말이다.
  
   색에 대해 말한다면 앙드레지드의 “전원 교향곡”이다. 장님 소녀에게 음악으로 색깔을 알려주는 장면이 있는 소설. 각 악기는 각각의 음색을 갖고 있다고 썼다. 트론본의 음색은 빨강과 주홍이고, 바이올린은 노랑과 연두색이며, 크라리넷이나 오오보에는 보라나 파랑색이라 했다. 장님소녀가 베도벤의 전원 교향곡을 들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저 음악 속의 시냇물가의 경치같이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음으로 색을 다 보았다. 우리들은 보고 듣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많으나, 그녀는 다 보았다.
   나는 옛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놀랐다. 음으로 색을 말하는 대목이 너무 신기해서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작품이다.  

  다시 T.V에서 본 또 한 사랑의 얘기를 말하고 싶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자가 어떤 알지 못하는 여자헌데서 골수를 이식 받았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자 이 여자는 또 신장이 나빠졌다. 신장을 이식 받지 못하면 죽게 되었다. 생각한 끝에 자기와 혈액형이 맞는 먼저 여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여자는 다시 자기의 신장 하나를 기꺼이 그녀에게 주었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자기의 몸을 떼어준 이런 사랑은 무슨 색깔일까. 폭포에 걸린 무지개, 흩어지는 포말에 빛을 받고 포물선으로 선 신비의 무지개 색이다.

   나는 어떤 하루,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로 가슴이 메었다. 한 남매는 방과 후면 식품점을 하는 부모를 돕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강도가 들어와서 남동생에게 권총을 겨눴다. 그것을 본 누나는 동생을 가로막으며 총대 앞에 섰다. 그리고 자기는 총에 맞아 죽고 동생을 살렸다. 내 자신이 땅이 되어 동생을 딛고 서게 한 사랑이다. 땅 색임에 틀림없다.

  사랑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하듯 나도 내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린다. 내 어머니는 자식에게 귀를 떼어 준 일도, 남의 앞을 가로막아 총알을 받아 준 일도 없는 어머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사랑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세검정 종점에서 신림동 종점으로 어머니를 찾아 갔다. 어머니는 집에 계서도 되는데, 언제나 버스 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시간에 맞춰 나와 주셨는지, 아마도 몇 시간이고 기다리고 있었을 런지도 모른다.
   종점에서 어머니 집까지는 이십 분 이 걸렸다. 그 동안의 일이다. 길 주변에서 연탄장수, 구두 닦기, 허름한 복장의 남정네와 아낙네들을 본다. 그런 그들은 하나같이 어머니께 꾸뻑 꾸뻑 인사를 하고 있다. 힘들게 사시는 어머니가 남에게 베풀 것도 없었을 텐데 나는 이상해서 물었다. 저 사람들은 다 누구에요? 어머니는 미소로 내 물음에 답했다. 저 미소다. 저 미소로 어머니가 품은 사랑을 전했다. 그것은 바다였다. 온갖 것을 다 걷어 들여도 자국도 없는 바다의 깊은 색이었다.

   또 한 사랑이다. 내 큰딸은 항상 예수님의 사랑을 말한다. 성경책에 무엇을 그리도 많이 적어 넣었는지 몇 권 째 너덜 해 졌다. 그 성경책을 한 권 씩 넘겨주는 것이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산이란다. 하루는 학교에서 아들이 숨을 잘 쉬지 못한다고 연락이 왔다. 퍽 당황했을 것이다. 딸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아들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니, 아들도 자기도 평온을 찾으며 고비를 넘겼다고. 나는 보통 사람이 하나님께 자기 자식의 목숨을 건다는 말을 그리 믿지 않는다. 딸의 말도 반신반의로 들어 넘겼다. 그러나 엄청난 한 사랑만은 나도 상상할 수가 있다. 자식을 바친 아부라함 만이 할 수 있었던 엄청난 믿음의 사랑이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슨 색일까, 자식에 대한 사랑을 넘어선 더 한 사랑의 색은?  공기와 같이 무색의 색, 믿음의 색이다.

   이 글에 아직 사랑의 불인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적지 않았다. 그 사랑은 틀림없이 붉은 색이다. 소련의 한쌍(pair)스케이터가 피나는 노력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네 번이나 우승을 했다. 십사 년이란 세월을 둘이 붙잡고 얼음을 탔다. 그랬는데 갑자기 남자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아내는 그녀의 구구절절한 그리움과 아픔을 책으로 엮어, 그 외침은 부부애의 절정을 말해 주는 기록이었다.

   해가 솟았다 지고 또 다시 오를 때 까지 사람들은 각가지 색의 사랑을 한다. 글에 옮긴 이 사랑들이 가슴에 닿는 이유는 사랑 위에 빛깔을 얹은 때문일 까. 달무리로 달이 은은하듯, 푸른 잎이 햇살을 받아 더욱 푸르듯 색깔을 입은 그것들은 더욱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