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밸리
2007.05.07 16:41
데스벨리 명상 기행
글: 신영철
단테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데스벨리. 멀리 보이는 시에라 산군(텔레스코프봉)에서 내려온 물들은 증발되어 소금 호수와 소금강만 남았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멀지 않다. 유리창 한 장 차이다. 적어도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벨리에서는 그렇다. 냉방이 잘 된 차안에서 홀짝거리는 맥주 맛이 천국이라면, 차 밖을 나올 적마다 후끈 달구어진 열풍과 햇볕은 지옥이다. 지금이 겨울로 닥아서는 계절인데도 이 정도면 여름에는 틀림없이 지옥일 터였다.
허풍이 아니다. 만약 내가 허풍이라면 시인 단테도,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전망대에 그런 이름을 붙인 작명가도 허풍쟁이다. 데스벨리를 조망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가 해발 1600미터 정도에 있는데 그 이름이 '단테스 뷰'라는 곳이다.
단테가 누군가. 시인의 조국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 Divina ommedia'을 남긴 사람이다. 신곡으로 중세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의 정신적 선구자가 되어 기독교 문화뿐만 아니라 인류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시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시는 도저히 사람이 쓸 수 없다는 뜻에서 신곡神曲이다. 신곡은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편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연옥'은 그의 발명품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을 차입한 카톨릭은 연옥을 믿지만 기독교는 그 주장을 이단시한다. 어찌 되었던 그는 신곡에서 시인답게 실감나는 연옥과 지옥의 아비규환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시인의 의도대로 우리는 기름이 펄펄 끓는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상상하게 되었다.
얼마나 데스벨리의 더위와 조갈증이 지독했으면 단테의 전망대라고 이름을 붙었을까.
눈앞에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소금밭과 광포한 햇빛의 폭력 앞에 달구어진 검은 돌과, 황갈색의 대지는 어느 혹성에라도 온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올랐던 시에라네바다 산군의 텔레스코프 봉이 여기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때 산행 중 당연하게 받아드린 초록은 환상이었다.
상상 할 수 있어 온갖 아름다운 걸 그려 놓은 상상화를 일컬어, 나는 '이발소 그림'이라 부른다. 발 품 팔며 찬탄을 금치 못했던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이발소 그림도, 그 산맥도 이곳에서 보면 삭막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팔뚝만한 송어가 우글거리고 거대한 세코이아 나무가 살고 그 사이 곰이 어슬렁거렸던 시에라네바다 산군은 죄다 신기루요 한바탕 꿈이었다.
블랙홀처럼 그렇게 데스벨리는 모든 걸 녹여 내어 하얀 소금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름과 내림, 높이와 깊이가 갖는 수직의 개념이 혼란스럽다. 이곳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본토 내륙에서 제일 높은 곳과 제일 낮은 곳이 함께 있다. 몇 일전 올랐던 마운틴 휘트니(Mount Whitney)는14,494피트, 4412미터고. 데스벨리에서 제일 낮은 곳은 해수면 아래 86 미터다. 텔레스코프봉을 비롯한 시에라 산군에서 데스벨리로 흘러내린 물은 그것으로 끝이다. 들어오는 것인 있지만 나가는 길은 없다. 흘러내린 물은 고스란히 증발된다. 데스벨리는 거대한 건조기인 셈이다. 사위가 생경했고 바다처럼 넓은 하얀 소금밭이 믿기지 않았다.수직 오름 짓만 알았던 내가 해수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저소증에라도 걸린 듯 했다.
데스벨리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서부개척시대에 백인들이 이곳을 횡단하다가 무수한 목숨 죽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번 데스벨리 기행은 미주문협회원들과 함께 했는데 우리도 그 꼴 면하려면 숙소를 찾아야 했다. 일행들이 오늘 밤 묵을 모텔과 캠프장을 찾아 광막한 데스벨리를 횡단하다 보니 어느 사이 해거름이다. 쨍- 빛나는 무망한 빛의 천지, 데스벨리를 횡단하는 차안에서 난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눈에 익은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피어 난 죽은 풀 덩굴 가지 사이로 하얀 보푸라기가, 역광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무릅에 겨우 닿을 만한 작은 덩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누렇게 탈색 된 그것들은 이미 말라 비틀어져 이미 죽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죽은 것이 아니라는 일행의 말을 들었을 때 데스벨리는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살아 있는 초목들은 모두 초록색이라고 생각했을까. 깊은 가을 단풍이 빛 바래면서 변했던 누런 색감에서 온 한국적 고정관념이었다. 등산길에 밟히는 누렇게 탈색 된 것은 한 생을 마치고 돌아가는 죽음의 색이라고 지레 짐작한 오류였다. 광포한 사막에서의 생존 방법으로 덩굴 더미들은 녹색을 버리고 누런 색을 찾았다. 나름대로의 진화고 생존을 위한 슬기였다. 죽은 줄 알았던 덩굴들이 누런 색으로도 살아간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소리친 것은 아니다. 그 덩굴 사이에 달린 손톱 크기의 무수한 잎들이 넘어 가는 햇살에, 물 비늘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눈에 익은 사자평 억새평원에서 보았던 것과 똑 같았다. '눈물 꽃 억새를 보려면 역광에 보아야 한다'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 기억이 오소소 살아났다. 사막에서 억새를 떠올린 것이 나중에 일행을 고생시킨 빌미가 되었다. 덩굴 풀이름을 알아야 기록 할 것 아닌가.
데스벨리에 완전히 어둠이 내리고 나니 하늘 땅 사이에 빛이라고는 별 빛뿐이다. 외길인 것 같은 길 위에서도 몇 대의 차가 헤어졌다 다시 만날 만큼 데스벨리의 어둠은 짙었다. 겨우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자들은 모텔에 들고 우리는 캠핑을 하기로 했다.
역시 데스벨리다. 캠프장 이름이 '스토브 파이프'였다. 얼마나 뜨거우면 '연통'일까. 그러나 어둠이 점령한 스토브 파이프는 불꺼진 아궁이에 달린 연통 일뿐이다. 온기는커녕 캠프장은 서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사막이라도 밤엔 제법 쌀쌀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낮의 폭염이 언제였느냐는 듯 우리는 긴 팔을 꺼내 입었다. 그러나 건조한 날씨 덕분에 텐트를 치던 매트리스 하나로 비박을 하던 사막은 야영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모닥불을 피웠다. 미국이 부러운 것은 캠프장마다 당연히 모닥불 피울 화덕을 만들어 놓은 점이다. 성성한 사막의 별 빛 아래 모닥불에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렸다. 여행은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한 동료는 열을 냈고 또 다른 동료는, 인류를 구원 할 모든 성인들 역시 길에서 '도道'를 얻었다고 맞장구를 친다.
도를 찾는다는 것이 '구도求道'라면, 그리 어려 울 것이 없다. 말 그대로 '길 찾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산쟁이는 길을 참 많이도 찾았다. 내가 올랐던 히말라야도 길 끝에 있었고 이 데스벨리도 길 끝에 있었다.
어디서인가 여우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막의 여우라... 문득 생떽쥬베리의 여우가 떠오른다. 그가 쓴 우화, 어린왕자에도 '길'은 나온다. 사막을 어슬렁거리던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묻는다. '길들인다라는 게 뭐지?,'라고. 그렇게 묻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라고 대답한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산과 몸살나는 관계를 맺는 것도 곰곰 따지고 보면 길들여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우라니. 볼모의 땅 데스벨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런 덩굴 풀이 살아 있듯 여우도 사는 곳이라면 데스벨리라는 이름은 허풍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사막의 어린왕자처럼 오늘밤 그 여우를 만날 수도 있을지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빛이 홑겹 텐트를 뚫고 들어와 텐트 안을 푸르게 물들였다. 기분 좋은 잠이 깨고 나니 희끄므리한 윤곽과 함께 새벽의 서늘함이 찾아왔다. 간밤의 기분 좋은 과음에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홀로 사막을 걸었다. 사막은 사람으로 하여금 묵상을 강요한다. 누군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막에서는 무엇이든 외롭다. 미명의 사막은 시선 둘 데 없는 넓음과 삭막함으로 시선 마저 외롭게 한다. 생떽쥬베리의 불시착한 비행기가 혹시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고요뿐이다. 밤 새 사막 어딘가에서 짖어 대던 여우도 만나지 못했다.
만날 수 없던 것은 내가 늙은 왕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애초에 여우는 없었다. 그건 여우가 아니라 이곳 텃 짐승인 코요테라고 했다. 그러나 저러나 육식성 코요테가 우글우글 산다면 정말 데스벨리가 아니다. 먹이 사슬이 존재하는 생태계가 있기에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산책에서 돌아오니 일행 한 명이 금방 발로 밟아 죽인 '스콜피온'을 보여준다. 전갈이다. 전갈은 손가락보다 적었다. 영화에서는 전갈이 무시무시했는데, 물려도 벌에 물린 정도의 고통 정도라고 했다. 물론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잘못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리면 영화처럼 다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가재 닮은 앙증맞은 집게 손이 귀여웠다.
태양이 떠오르니 소금 밭 하얀 색과 파란 하늘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일행을 재촉하여 데스벨리 뮤지엄으로 향했다. 억새처럼 빛나던 덩굴식물 이름도 알아야 했고 코요테가 뭘 먹고사는 가도 알아야 했으며, 물 것이 있어 살아가는 전갈의 먹이도 봐야 했다.
미국박물관에서는 무료로 데스벨리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 관람 후 여직원을 괴롭혀 억새처럼 역광에 빛나던 덩굴 이름을 겨우 알아냈다. 두 종류였는데 신더덩굴(cinder bush)과 클레어스트 덩굴(creosote bush)이라 불린다고 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데스벨리라는 이름은 백인들의 상상력이 붙인 이름이었다. 그들에게는 가혹한 땅이었겠으나 박물관은 이곳도 사람 사는 곳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국립박물관에서나 봄직한 구석기 시대의 돌도끼, 긁개. 밀개. 밀가루를 만들었던 맷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한 인디언들이 있었다. 금광 개발에 나선 백인 등살에 더러는 죽고 더러는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하여 사라졌을 뿐이다. 광산이 경기가 좋을 때는 촌락도 있었다 했다. 그런 이곳을 누가 데스벨리라 이름 붙였는가.
하루 종일 돌아 다녀도 데스벨리 지도에 소개된 볼거리를 다 보지 못했다. 다시 막영지로 돌아 올 때는 또 하루가 접혀진다는 듯 석양이 아름다웠다. 신더덩굴더미에 역광이 드니 잎새들이 보석 같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덩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소리 닮은 미루나무의 잎새 부대끼는 소리가 들릴 듯도 했다. 해가 지니 벌써 추워진다. 이곳은 일교차가 40도까지 이른다는 게 사실이다.
뮤지엄 다큐멘타리 영화에서 보았던 소금 호수 즉, 솔트크릭을 찾았을 땐 석양도 지고 있었고 사막의 그 쓸쓸한 풍경에 모두 길들여 진 듯 말이 없다. 바닷물 보다 몇 배 짠물에서 산다는 물고기는 어둠 때문에 보질 못했다. 물고기까지 사는 이곳은 죽음의 계곡일 수가 없다. 곁의 문우가 그예 한마디한다. 데스벨리에 '데스'는 없다고.
데스벨리 가는 길.
데스벨리는 전체가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이다. LA에서 2백50마일 북동쪽에 위치하며 LA와 라스베가스 중간지점에 있다.
LA에서는 5번 프리웨이 북쪽방향으로 가다 14번 팜데일을 지나 모하비 사막을 거쳐 395번으로 들어서면 데스벨리로 들어가는 오랜차(Olancha) 마을이 나온다. 마을이라 해도 상가와 집 10여채가 고작인데 여기에서 190번 도로가 갈라진다.
이 길로 들어서면 데스벨리까지는 외길이다.
190번으로 한참을 달려가면 스토브파이프(Stove Pipe) 캠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모텔 하나와 기념품 가게 그리고 작은 식당과 주유소 등이 있다. 여기서부터 시간을 두고 데스벨리 공원을 답사하는 것이 좋다. 광활한 넓이만큼 볼만한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데스벨리 비지터센터에서는 60마리의 말들이 끌며 운반하던 거대한 물수송 마차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개척민들이 사용하던 일용품 과 인디안들의 유적 등 원형품들이 보존된 박물관과 역사를 보게 된다. 여기에는 안내소, 공중전화, 우체국 등이 있다. 데스벨리 특징을 담은 기록 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1백 50여년 전에 쓰다버린 마차의 앙상한 잔해며 지금은 이미 폐광이 되어버린 금 광, 한 두채 남아있는 토담 집 등을 볼 수 있다. 캠프장은 선착순이다.
관광시즌.
시즌. 보통 한여름에는 화씨 1백20~130도씩 오르내리는 더위 때문에 관광객이 뚝 끊어지지만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는 관광의 최적기라 하겠다. 가벼운 운동화와 선그라스, 충분한 식수와 챙이 넓은 모자는 필수. 1913년에 기록한 섭시57도와, 지상측정온도 섭시 94도는 현재까지 미국에서 측정된 최고기록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9백여종의 식물과 지구상에 유일한 희귀식물이 20여종이 자라고 있다.
볼거리.
베드워터(Bad Water). 데스벨리를 횡단하다 갈증을 못 이겨 이 물을 먹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바닷물보다 농도가 짙은 짠물이며 그 주위에는 광활한 소금벌판이 전개된다. 미국대륙에서 가장 낮은 지점으로 바다수평에서 86미터 내려가는 지점이다. Lowest Elevation in the US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테스 뷰 (Dante's View)
데스벨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해발1600미터에 위치한다. 크고 작은 구릉으로 어우러진 이곳에 올라서면 하얀 소금밭 과 소금으로 이루어진 연못(Bad Water)을 볼 수 있다.
모래언덕 (Sand Dunes)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막의 정경을 볼 수 있다. 거센 바람에 의하여 모래무늬와 능선이 바뀌며, 일몰과 일출경관이 장관이다.
스코티 캐슬 (Scotty's Castle)
1920년대 후반에 알버트존슨(Albert M.Johnson)에 의해서 건축되어 1970년도에 국립공원이 구입한 건물이다. 스페인 풍으로 지어진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관람하며, 약 50분간이 소요된다. 성수기 때 는 관광 티켓을 구입하고 한시간 정도 기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기의 장소 이외에도The Wildrose Charcoal Kilns, Death Valley Ghost Towns, Harmony Borax Works, Chloride, Gold Valley, Panamint Range 등의 유적지가 있다.
참고 홈페이지: http://www.death.valley.national-park.com
단테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데스벨리. 멀리 보이는 시에라 산군(텔레스코프봉)에서 내려온 물들은 증발되어 소금 호수와 소금강만 남았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멀지 않다. 유리창 한 장 차이다. 적어도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벨리에서는 그렇다. 냉방이 잘 된 차안에서 홀짝거리는 맥주 맛이 천국이라면, 차 밖을 나올 적마다 후끈 달구어진 열풍과 햇볕은 지옥이다. 지금이 겨울로 닥아서는 계절인데도 이 정도면 여름에는 틀림없이 지옥일 터였다.
허풍이 아니다. 만약 내가 허풍이라면 시인 단테도,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전망대에 그런 이름을 붙인 작명가도 허풍쟁이다. 데스벨리를 조망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가 해발 1600미터 정도에 있는데 그 이름이 '단테스 뷰'라는 곳이다.
단테가 누군가. 시인의 조국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 Divina ommedia'을 남긴 사람이다. 신곡으로 중세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의 정신적 선구자가 되어 기독교 문화뿐만 아니라 인류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시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시는 도저히 사람이 쓸 수 없다는 뜻에서 신곡神曲이다. 신곡은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편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연옥'은 그의 발명품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을 차입한 카톨릭은 연옥을 믿지만 기독교는 그 주장을 이단시한다. 어찌 되었던 그는 신곡에서 시인답게 실감나는 연옥과 지옥의 아비규환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시인의 의도대로 우리는 기름이 펄펄 끓는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상상하게 되었다.
얼마나 데스벨리의 더위와 조갈증이 지독했으면 단테의 전망대라고 이름을 붙었을까.
눈앞에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소금밭과 광포한 햇빛의 폭력 앞에 달구어진 검은 돌과, 황갈색의 대지는 어느 혹성에라도 온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올랐던 시에라네바다 산군의 텔레스코프 봉이 여기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때 산행 중 당연하게 받아드린 초록은 환상이었다.
상상 할 수 있어 온갖 아름다운 걸 그려 놓은 상상화를 일컬어, 나는 '이발소 그림'이라 부른다. 발 품 팔며 찬탄을 금치 못했던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이발소 그림도, 그 산맥도 이곳에서 보면 삭막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팔뚝만한 송어가 우글거리고 거대한 세코이아 나무가 살고 그 사이 곰이 어슬렁거렸던 시에라네바다 산군은 죄다 신기루요 한바탕 꿈이었다.
블랙홀처럼 그렇게 데스벨리는 모든 걸 녹여 내어 하얀 소금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름과 내림, 높이와 깊이가 갖는 수직의 개념이 혼란스럽다. 이곳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본토 내륙에서 제일 높은 곳과 제일 낮은 곳이 함께 있다. 몇 일전 올랐던 마운틴 휘트니(Mount Whitney)는14,494피트, 4412미터고. 데스벨리에서 제일 낮은 곳은 해수면 아래 86 미터다. 텔레스코프봉을 비롯한 시에라 산군에서 데스벨리로 흘러내린 물은 그것으로 끝이다. 들어오는 것인 있지만 나가는 길은 없다. 흘러내린 물은 고스란히 증발된다. 데스벨리는 거대한 건조기인 셈이다. 사위가 생경했고 바다처럼 넓은 하얀 소금밭이 믿기지 않았다.수직 오름 짓만 알았던 내가 해수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저소증에라도 걸린 듯 했다.
데스벨리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서부개척시대에 백인들이 이곳을 횡단하다가 무수한 목숨 죽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번 데스벨리 기행은 미주문협회원들과 함께 했는데 우리도 그 꼴 면하려면 숙소를 찾아야 했다. 일행들이 오늘 밤 묵을 모텔과 캠프장을 찾아 광막한 데스벨리를 횡단하다 보니 어느 사이 해거름이다. 쨍- 빛나는 무망한 빛의 천지, 데스벨리를 횡단하는 차안에서 난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눈에 익은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피어 난 죽은 풀 덩굴 가지 사이로 하얀 보푸라기가, 역광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무릅에 겨우 닿을 만한 작은 덩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누렇게 탈색 된 그것들은 이미 말라 비틀어져 이미 죽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죽은 것이 아니라는 일행의 말을 들었을 때 데스벨리는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살아 있는 초목들은 모두 초록색이라고 생각했을까. 깊은 가을 단풍이 빛 바래면서 변했던 누런 색감에서 온 한국적 고정관념이었다. 등산길에 밟히는 누렇게 탈색 된 것은 한 생을 마치고 돌아가는 죽음의 색이라고 지레 짐작한 오류였다. 광포한 사막에서의 생존 방법으로 덩굴 더미들은 녹색을 버리고 누런 색을 찾았다. 나름대로의 진화고 생존을 위한 슬기였다. 죽은 줄 알았던 덩굴들이 누런 색으로도 살아간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소리친 것은 아니다. 그 덩굴 사이에 달린 손톱 크기의 무수한 잎들이 넘어 가는 햇살에, 물 비늘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눈에 익은 사자평 억새평원에서 보았던 것과 똑 같았다. '눈물 꽃 억새를 보려면 역광에 보아야 한다'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 기억이 오소소 살아났다. 사막에서 억새를 떠올린 것이 나중에 일행을 고생시킨 빌미가 되었다. 덩굴 풀이름을 알아야 기록 할 것 아닌가.
데스벨리에 완전히 어둠이 내리고 나니 하늘 땅 사이에 빛이라고는 별 빛뿐이다. 외길인 것 같은 길 위에서도 몇 대의 차가 헤어졌다 다시 만날 만큼 데스벨리의 어둠은 짙었다. 겨우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자들은 모텔에 들고 우리는 캠핑을 하기로 했다.
역시 데스벨리다. 캠프장 이름이 '스토브 파이프'였다. 얼마나 뜨거우면 '연통'일까. 그러나 어둠이 점령한 스토브 파이프는 불꺼진 아궁이에 달린 연통 일뿐이다. 온기는커녕 캠프장은 서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사막이라도 밤엔 제법 쌀쌀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낮의 폭염이 언제였느냐는 듯 우리는 긴 팔을 꺼내 입었다. 그러나 건조한 날씨 덕분에 텐트를 치던 매트리스 하나로 비박을 하던 사막은 야영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모닥불을 피웠다. 미국이 부러운 것은 캠프장마다 당연히 모닥불 피울 화덕을 만들어 놓은 점이다. 성성한 사막의 별 빛 아래 모닥불에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렸다. 여행은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한 동료는 열을 냈고 또 다른 동료는, 인류를 구원 할 모든 성인들 역시 길에서 '도道'를 얻었다고 맞장구를 친다.
도를 찾는다는 것이 '구도求道'라면, 그리 어려 울 것이 없다. 말 그대로 '길 찾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산쟁이는 길을 참 많이도 찾았다. 내가 올랐던 히말라야도 길 끝에 있었고 이 데스벨리도 길 끝에 있었다.
어디서인가 여우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막의 여우라... 문득 생떽쥬베리의 여우가 떠오른다. 그가 쓴 우화, 어린왕자에도 '길'은 나온다. 사막을 어슬렁거리던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묻는다. '길들인다라는 게 뭐지?,'라고. 그렇게 묻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라고 대답한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산과 몸살나는 관계를 맺는 것도 곰곰 따지고 보면 길들여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우라니. 볼모의 땅 데스벨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런 덩굴 풀이 살아 있듯 여우도 사는 곳이라면 데스벨리라는 이름은 허풍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사막의 어린왕자처럼 오늘밤 그 여우를 만날 수도 있을지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빛이 홑겹 텐트를 뚫고 들어와 텐트 안을 푸르게 물들였다. 기분 좋은 잠이 깨고 나니 희끄므리한 윤곽과 함께 새벽의 서늘함이 찾아왔다. 간밤의 기분 좋은 과음에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홀로 사막을 걸었다. 사막은 사람으로 하여금 묵상을 강요한다. 누군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막에서는 무엇이든 외롭다. 미명의 사막은 시선 둘 데 없는 넓음과 삭막함으로 시선 마저 외롭게 한다. 생떽쥬베리의 불시착한 비행기가 혹시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고요뿐이다. 밤 새 사막 어딘가에서 짖어 대던 여우도 만나지 못했다.
만날 수 없던 것은 내가 늙은 왕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애초에 여우는 없었다. 그건 여우가 아니라 이곳 텃 짐승인 코요테라고 했다. 그러나 저러나 육식성 코요테가 우글우글 산다면 정말 데스벨리가 아니다. 먹이 사슬이 존재하는 생태계가 있기에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산책에서 돌아오니 일행 한 명이 금방 발로 밟아 죽인 '스콜피온'을 보여준다. 전갈이다. 전갈은 손가락보다 적었다. 영화에서는 전갈이 무시무시했는데, 물려도 벌에 물린 정도의 고통 정도라고 했다. 물론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잘못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리면 영화처럼 다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가재 닮은 앙증맞은 집게 손이 귀여웠다.
태양이 떠오르니 소금 밭 하얀 색과 파란 하늘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일행을 재촉하여 데스벨리 뮤지엄으로 향했다. 억새처럼 빛나던 덩굴식물 이름도 알아야 했고 코요테가 뭘 먹고사는 가도 알아야 했으며, 물 것이 있어 살아가는 전갈의 먹이도 봐야 했다.
미국박물관에서는 무료로 데스벨리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 관람 후 여직원을 괴롭혀 억새처럼 역광에 빛나던 덩굴 이름을 겨우 알아냈다. 두 종류였는데 신더덩굴(cinder bush)과 클레어스트 덩굴(creosote bush)이라 불린다고 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데스벨리라는 이름은 백인들의 상상력이 붙인 이름이었다. 그들에게는 가혹한 땅이었겠으나 박물관은 이곳도 사람 사는 곳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국립박물관에서나 봄직한 구석기 시대의 돌도끼, 긁개. 밀개. 밀가루를 만들었던 맷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한 인디언들이 있었다. 금광 개발에 나선 백인 등살에 더러는 죽고 더러는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하여 사라졌을 뿐이다. 광산이 경기가 좋을 때는 촌락도 있었다 했다. 그런 이곳을 누가 데스벨리라 이름 붙였는가.
하루 종일 돌아 다녀도 데스벨리 지도에 소개된 볼거리를 다 보지 못했다. 다시 막영지로 돌아 올 때는 또 하루가 접혀진다는 듯 석양이 아름다웠다. 신더덩굴더미에 역광이 드니 잎새들이 보석 같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덩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소리 닮은 미루나무의 잎새 부대끼는 소리가 들릴 듯도 했다. 해가 지니 벌써 추워진다. 이곳은 일교차가 40도까지 이른다는 게 사실이다.
뮤지엄 다큐멘타리 영화에서 보았던 소금 호수 즉, 솔트크릭을 찾았을 땐 석양도 지고 있었고 사막의 그 쓸쓸한 풍경에 모두 길들여 진 듯 말이 없다. 바닷물 보다 몇 배 짠물에서 산다는 물고기는 어둠 때문에 보질 못했다. 물고기까지 사는 이곳은 죽음의 계곡일 수가 없다. 곁의 문우가 그예 한마디한다. 데스벨리에 '데스'는 없다고.
데스벨리 가는 길.
데스벨리는 전체가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이다. LA에서 2백50마일 북동쪽에 위치하며 LA와 라스베가스 중간지점에 있다.
LA에서는 5번 프리웨이 북쪽방향으로 가다 14번 팜데일을 지나 모하비 사막을 거쳐 395번으로 들어서면 데스벨리로 들어가는 오랜차(Olancha) 마을이 나온다. 마을이라 해도 상가와 집 10여채가 고작인데 여기에서 190번 도로가 갈라진다.
이 길로 들어서면 데스벨리까지는 외길이다.
190번으로 한참을 달려가면 스토브파이프(Stove Pipe) 캠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모텔 하나와 기념품 가게 그리고 작은 식당과 주유소 등이 있다. 여기서부터 시간을 두고 데스벨리 공원을 답사하는 것이 좋다. 광활한 넓이만큼 볼만한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데스벨리 비지터센터에서는 60마리의 말들이 끌며 운반하던 거대한 물수송 마차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개척민들이 사용하던 일용품 과 인디안들의 유적 등 원형품들이 보존된 박물관과 역사를 보게 된다. 여기에는 안내소, 공중전화, 우체국 등이 있다. 데스벨리 특징을 담은 기록 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1백 50여년 전에 쓰다버린 마차의 앙상한 잔해며 지금은 이미 폐광이 되어버린 금 광, 한 두채 남아있는 토담 집 등을 볼 수 있다. 캠프장은 선착순이다.
관광시즌.
시즌. 보통 한여름에는 화씨 1백20~130도씩 오르내리는 더위 때문에 관광객이 뚝 끊어지지만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는 관광의 최적기라 하겠다. 가벼운 운동화와 선그라스, 충분한 식수와 챙이 넓은 모자는 필수. 1913년에 기록한 섭시57도와, 지상측정온도 섭시 94도는 현재까지 미국에서 측정된 최고기록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9백여종의 식물과 지구상에 유일한 희귀식물이 20여종이 자라고 있다.
볼거리.
베드워터(Bad Water). 데스벨리를 횡단하다 갈증을 못 이겨 이 물을 먹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바닷물보다 농도가 짙은 짠물이며 그 주위에는 광활한 소금벌판이 전개된다. 미국대륙에서 가장 낮은 지점으로 바다수평에서 86미터 내려가는 지점이다. Lowest Elevation in the US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테스 뷰 (Dante's View)
데스벨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해발1600미터에 위치한다. 크고 작은 구릉으로 어우러진 이곳에 올라서면 하얀 소금밭 과 소금으로 이루어진 연못(Bad Water)을 볼 수 있다.
모래언덕 (Sand Dunes)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막의 정경을 볼 수 있다. 거센 바람에 의하여 모래무늬와 능선이 바뀌며, 일몰과 일출경관이 장관이다.
스코티 캐슬 (Scotty's Castle)
1920년대 후반에 알버트존슨(Albert M.Johnson)에 의해서 건축되어 1970년도에 국립공원이 구입한 건물이다. 스페인 풍으로 지어진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관람하며, 약 50분간이 소요된다. 성수기 때 는 관광 티켓을 구입하고 한시간 정도 기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기의 장소 이외에도The Wildrose Charcoal Kilns, Death Valley Ghost Towns, Harmony Borax Works, Chloride, Gold Valley, Panamint Range 등의 유적지가 있다.
참고 홈페이지: http://www.death.valley.national-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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