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면

2007.05.12 00:03

배희경 조회 수:59

      
    마음을 비우면      “여성중앙”2001년, “미주문학”2005년


   이제까지 해 보지 않았던 시도였다. 글 쓸 자료를 찾아 나서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낀 것을 새롭게 쓰고 싶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혼자 차를 몰고 갈 마땅한 곳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쓸 생각일랑 말고 그새 찾아보지 못한 옛 친구나 만나 보자 고 생각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기나 한 듯 퍽 반가와 했고, 우리는 밖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또 다른 한 친구, 이십 여 년을 같이 일했던 동료를 찾아보기로 뜻이 맞았다. 그 친구는 당뇨의 후유증으로 한 쪽 다리를 무릎 밑까지 자르고 치료회복 쎈터에서 요양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 곳으로 차를 달렸다.
   병원 문을 들어섰다. 나는 이런 곳이 어떠한 데라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섬뜻했다. 그 곳은 라스베가스 가는 도중에 있는 캘리코 폐광과 같았다. 침침하고 우울하며 숨 막히고 황폐했다. 그곳 사람들은 한 때 활동 사진관에서 영화도 즐겼고 주막집에서 대포도 마셨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되살아나서 과거를 그리며 이 병원에 모여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휠체어에 실려 봇짐처럼 끌려가는 사람, 침대에서 한쪽 다리가 떨어진 후, 옴싹달싹 못하고 버둥거리며 신음하는 사람, 흑인 영가의 가사를 연상시키듯 내 집으로 날 보내달라며 집을 그리워하는 백발의 노인네가 울부짖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찾는 그녀는 자기 침대에 없었다. 간호원은 그녀가 오락실에 있을 것이라며 일어났다. 우리도 간호원의 뒤를 따라 나섰다. 오락실 앞이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간호원 뒤에서 우리를 보고 “추추”하며 반긴다. 예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밝은 표정이다.
   그러나 나는 당황했다. 반바지를 입은 그녀의 한 쪽 다리가 가느다란 쇠다리로 바뀌어 있지 않은가. 끔찍하여 머리를 돌리고 싶었고, 하마터면 또 내 그 헤픈 눈물을 보일 번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장난기 섞인 말투에 나를 되찾았다. “하이 추추” 내 남편의 성을 딴 내 별명을 들으며 가까스로 나도 그녀에게 “하이 라이사” 라고 답했다.

   우리는 손바닥만한 패티오에 그녀를 몰고 나와 앉았다. 그녀는 그 새 일어난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남의 말을 하듯 다리를 자른 경위부터 설명했다. 먼저 발가락을 잘랐고, 계속 염증이 생겨서 다리까지 자르게 되었단다. 그 사이 의족도 끼고 좋아진 것 같지만 아직까지도 다리에 구멍을 뚫어 놓고 진물을 빼고 있단다. 만약 그 구멍이 그대로 아물지 않는다면 하고, 그녀는 자기 팔로 어떤 시늉을 했다. 오른 쪽 손을 사타구니 밑에 대고 석 석 자르는 흉내를 내며 웃었다. 아찔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이런 아프고 슬픈 사연과는 아랑곳없이 푸르기만 했다.  
   같이 간 친구는 말을 돌려 그녀에게 다른 것을 묻었다. “너 지금도 경마에 거니?” 그녀가 대답했다. “말이 달리는 한 나도 달리지.” 한 다리를 잘리고 난 여자의 말이다. 이 명쾌한 대답에 나는 그녀가 경마장이 아니라, 나래 달린 말을 타고 하늘로 훨훨 날고 있다고 착각하고 싶었다.
   이런 암담한 환경에서 이런 유쾌한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강인하고 확고한 생각 없이는 될 수 없다. 아무런 종교도 없는 그녀지만 오늘 하루를 인생의 전부로 알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내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만 보고 기쁘게 사는 여자다. 그녀의 다리에서 드디어 얻어낸 인생철학은 폐광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승리자였다. 그녀는 폐인들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며 그 곳을 떠났다. 같이 간 친구를 그녀의 집에 내려주고 내 집으로 차를 몰았다. 아까부터 아팠던 가슴이 더 아파 왔다. 내 어머니도 종내에는 양다리를 못 쓰게 되었지. 우리에게 영원한 아픔을 남기고 간 어머니 생각을 또 했다. 어머니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미국 여권을 어머니 영전에 놓고, 목이 컥컥 메었던 삼십 년 전 일이 어제 일 같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겨울철만 되면 찢어진 손마디에 하얀 실이 챙챙 감겨 있었다. 소금보다도 짠 시베리아 바람이 전선대에서 신들린 것 같이 춤을 춰대면, 실을 맨 어머니 손가락 마디에는 피가 맺혔다. 나는 그것이 너무 끔찍해 실 좀 감지 마시라고 애원하지만 어머니는 이래야 덜 아프다며 오히려 내게 위로의 눈을 던지셨다. 나는 지금까지도 왜 덜 아픈지 그 이유를 모른다. 손마디가 터져 본 일이 없으니 알 수가 없지.
   엄동설한에도 어머니는 따듯한 아랫목에서 몸을 녹이는 일이 없으셨다. 한 소대도 더 되는 식솔의 이불 호청을 잿물에 푹푹 삶았다. 하늘 닿게 함지에 이고, 아재(친척 아주머니)와 같이 성천강에 나가셨다. 강은 다 얼어붙었고,  물이 깊어 얼지 못한 만세교 다리 밑에서 빨래를 하셨다. 아직도 김이 나는 누런 빨래에 얼음장의 물을 끼얹으며 있는 힘을 다해 방치로 내리치고 비벼댔다. 그런 후 시퍼렇게 흘러내리는 얼음물 속에 빨래를 던져 넣으면 빨래는 주리를 틀다 놓여난 문어다. 다리를 흐물흐물 길게 뻗어가며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잿물로 누렇던 빨래는 눈덩이 같이 희어 물에서 건져졌고, 나는 빨래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강가 가장사리에 얼어붙은 얼음조박을 바작바작 밟는 것이 재미있어, 킥킥거리며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일에 지친 그 날 저녁, 어머니의 소가죽 같은 양손에는 더 많은 실이 감겨 힘들게 잠을 청했으리라. 그런 성천강을 오십 여 년 만에 T.V에서 보았다. 이북의 특별 프로그램 ‘고향 땅’에서 잠깐 비쳐주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성천강이 아니었다. 물이 없었다.

   어머니의 의지는 용광로와 같았으나 어머니의 몸은 연약한 병아리였다. 쌍둥이까지 일곱 자식을 낳은 그 분의 허리는 차츰 구부러져 갔고 드디어 허리뼈가 신경을 눌러 다리에 마비가 왔다.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이다. 척추 디스크라 했다. 이 세상에서 이름도 없이 죽도록 아픈 병이 디스크라는 것도 후에 알았다.  
   어머니는 드디어 양다리를 못 쓰게 되셨고,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라이사와 같이 의족으로라도 살아주셨다면 우리의 이 아픔은 좀 덜 했을까. 그러나 어머니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슬픔이겠지. 당신 몸으로 봉사하는 기쁨으로 삶의 보람을 느낀 어머니가 내 몸으로 베풀지 못하고 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허리를 기역자로 구부리고 끝의 끝날 까지 움직이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죽음을 택한 거와 다름없었다.
   이런 어머니와 정 반대이신 안사돈 한 분은 지금까지 생존해 계시다. 그 분은 딸집에 오셔도 손님이셨다. 전해 오는 속담에 남편 밥은 누워서, 아들 밥은 앉아서, 딸네 밥은 서서 먹는다고 했다. 딸을 돕느라 서서 일하며 먹는 그런 딸의 밥이다. 진지를 잡수시고 상을 물리는 일도 없었다 한다. 얼마나 편안하게 사셨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다. 아들집에 가서도 딸을 돕듯, 며느리를 돕느라 서서 사셨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구부러진 허리를 등에 업고 장독대를 만진다, 툇마루 밑을 쓴다, 쉴 사이 없이 움직였다.
   옆집 여주인은 오래도록 어머니가 올케의 친정어머니인 줄로만 알았다 했다. 이런 얘기는 모두 직접 올케가 들려준 말이다.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의 목숨을 남편과 새끼를 위해 거침없이 깎으셨다.

   어머니는 돼지 셈을 잘 세었다. 자기를 뺀 셈말이다. 잡목에 파롯 파롯 햇잎이 돋아나는 봄날이었다. 돌차기를 하며 노는 내게 뒷산에 가지 않겠는가고 소리하신다. 쳐다보니 어머니는 노란 “한찌”를 덮은 함지를 이고 계셨다. 나는 금세 어머니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차렸다. 연거푸 외발 걸음을 뛰며 어머니 뒤를 따라나선다. 어머니는 들기름을 발라 몇 겹으로 붙인 보자기 즉 한찌를 깔고, 가져간 음식물을 차려 놓았다. 콩나물, 무나물, 오이나물, 삶은 계란, 노랗게 닦은 두부, 그리고 하얀 쌀밥 등 어느 것 하나 맛있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손을 비비고 절하고, 절하고 또 손을 비비며, 대주의 성함과 나이, 큰오빠의 생년일 갑자생 부터 시작해서 무슨 생, 무슨 생하며 자식들 생일을 외었다. 오만가지 산신령과 땅 귀신을 부르며, 물에 빠지지 말라 빌고, 차에 치지 말라 빌고, 병 없이 무탈하고 공부 잘 하게 해 달라고 비셨다. 그런데 왜 자신의 이름은 없을까. 듣지 못했다. 귀로 흘려 넘긴 것일까. 아니면 또 자신을 빼먹은 돼지 셈인가. 아마도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들만 편안하면 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 화사한 봄날, 산신령이 정말로 있다고 생각한 어린 딸과 어머니는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나는 그저 계란이 맛있었던 기억뿐이다.

   빈 마음으로 사는 의족의 라이사를 경이의 눈으로 만났고, 거기 이어 당신을 버리고 사신 내 어머니의 가슴 아린 기억들은 오늘 하루를 벅차게 했다. 글을 쓴다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얻으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이 낮은 데로 흘러 고이듯, 마음을 비우면 채워지지 않겠는가. 오늘은 채워진 하루여서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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