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은 컸으나

2007.05.12 09:33

배희경 조회 수:54

                                                    
                까닭은 컸으나                 “미주문학” 1999년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처음 맞는 부활절이었다. 나는 천주교에 입적하
신 아버지께 부활절카드를 보내려고 상점의 진열대 앞에 섰다. 연보라,연초
록, 연분홍색의 카드 위에 어머니의 상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지
며 그 영롱한 색들이 물감으로 풀려 가슴에 번졌다. 부활이란 뜻에도 물들
고 있었다.

        다시 살아난다. 얼마나 엄청난 기쁨인가 하고 생각했다. 예수가 다시 살
아 났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여기에서 예수교는 시작된다고 했었
지. 나는 만일 내 어머니도 다시 살아나신다면 하고 생각해 보았다. 순간 눈
물이 비오듯 쏟아 졌다. 넘치는 격정을 막을 길이 없었다. 카드를 고르지 못
하고 그냥 걸어 나온 것은 이십 팔 년 전 일이다.

        그후 나는 이 날이면 마법사의 뱀이 된 양 교회로 빨려들어 간다.  부활
이란 분위기에 젖고 싶어서 이다. 옛날의 격정도 그대로 거기에 있다. 복음
찬송 인도를 하던 딸이 나를 보자 눈에 물기가 돈다. 오늘 나간다고 예고를
했는데도 퍽 기쁜 모양이다.
        딸은 길 잃은 양을  거둘려고 부다듯 한다. 날이 어두어 옴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은 들 판에서 뜨지를 않는다. 그 울림이 가슴 밑  
에 와서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딸은 마음을 적시며 나를 맞는다.

        교회 안에 앉아 있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공중에 양손을 처들며 부
활하신 예수님을 불 도듯 보는 그분의 모습에 찬탄이 나왔다. 거기에는 믿음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예술 과학 문학이라도 좋다. 사람이 자기 생을 바쳐 무엇인가를 열중하는 그 모습 이상의 아름다움은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 순간 믿음 도담도 아름다움에 초점이 가 있는 내가 서글펐다.


        어머니를 잃은 애통함으로 연고를 맺은 이 부활절! 나는 하루의 경건한
신자가 되어 제단 앞에 엎드린다. 두활절이 내게 믿힌 까닭은 컸으나 그 뜻
은 가늠할 길이 없이 어렵다.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생각으로 얻어지
는 것이 아님을 안다. 느끼려 한다. 그것도 아니다. 성경을 외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하나 이것은 더 요원하다.
그러나 언제라도 이 어려움이 풀릴 때가 오면, 인간 나의 서글픔도  휫파람 같이 깨끗이 사라질 때가 오겠지 하고 기대를 걸어 본다.
  
     <어머니날은 내일. 이 글을 올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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