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2007.06.13 08:54
쌀 “글마루” 1998년
며칠 째 경학원(經學院)목조건물 안의 마카오 양복지가 불에 타고 있었다. 이조시대 의 고서적들을 모두 던져 불사르고, 그 책이 놓였던 선반에 필로 쌓아놓은 마카오지가 불에 타고 있었다. 실수로 붙은 불이 아니라 인민군이 지른 불이었다.
해방이 되고 사람들은 총천연색의 구제품에 넋을 잃다가 마침내 그 노린내에 진저리치며 더 나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나타난 것이 마카오에서 수입해 온 마카오 양복지였다. 살갗에 분내 같이 부드럽게 닿는 촉감이며 은밀한 색깔은 미국 구제품과는 달랐다.
일제시대의 국방색 옷들을 벗어버리고, 구제품에 몸을 맞추던 때도 지나고, 이젠 내 몸에 맞게 옷을 맞춰 입을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입고 마카오 신사 숙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소망의 마카오지가 불에 타고 있다. 빨강 불길을 뿜으며 훨훨 타는 것이 아니라, 진회색 연기를 피우며 부실 부실 타고 있었다. 젊음과 꿈도 함께 타고 있었다.
그러나 동내 사람들은 마카오지가 타는 것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다만 숨을 죽이고 딴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것은 경학원 마당 한 쪽에 쌓인 수 백 섬의 쌀가마에 절대로 불이 질려져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바람이었다. 인민군의 동정을 시초를 세어가며 살피는 사람들의 마음은 안절부절 했다. 그들이 쳐들어와서 석달째 접어든지 오래였고, 서울 장안에서는 다이아몬드 반지로도 쌀 사기 힘들어졌다. 그러니 저 쌀이 불에 탄다면 너 죽고 나 죽을 노릇이었다.
마카오지가 타기 시작해서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연합군이 인천 상륙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는 벌써 기뻐서 태극기를 내 걸겠다고 야단이시다. 침착하신 어머니는 사생결단으로 말리신다. 죽은 듯 숨어있던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나와 쌀가마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인민군은 꼬리대가리도 안 보였다.
한 사람이 쌀 섬 옆구리를 뜯기 시작했다. 눈치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왕벌이 뒤따르던 일벌 떼들이었다. 왕하고 까맣게 달라붙어 쌀섬을 쏘아댔다. 집안에서 망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삽시간에 합세했다. 모두 아무 연장도 없이 얼떨결에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손톱으로 이빨로 쌀가마를 뜯기 시작했다. 나도 비집고 들어가서 스커트 치마 한 자락 끝을 한 손으로 잡고 또 한 손으로 쌀섬을 후벼대며 쬘쬘 떨어지는 쌀을 스커트 폭에 담고 있었다.
그때였다. 찌지직 찌지직 흙모래 바닥을 긁으며 달려오는 구루마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돌아다보고 나는 있을 수 없는 사실에 놀랐다. 아는 얼굴이 거기에 있지 않은가. 의용군을 피해 두 달여 숨어있던 백지장 같이 흰 얼굴의 남동생과 그날도 대학봉사대로 나간 줄 알았던 작은 오빠가. 어디서 구한 구루마인지 끌고 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 아홉 식구는 어머니가 난생 처음 시작한 장사로 연명하고 있었다. 동대문 시장 땟볕 아래에 돗자리 깔고, 고무신을 도매가로 받아다 팔았다. 그것도 돈이 없어 여 남 켤레 놓고 거기서 몇 푼을 남겼다. 그 돈으로 보리 한 되를 사면 그날은 성공이었고, 보리 한 되 값이 모자랐을 때는 아마 본전을 떼었을 것이다. 나중엔 그 밑천도 까먹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보리 한 되에 듬뿍 물을 부어 보리죽을 쒔다. 식구 아홉수대로 사발에 떠서 큰 둥그런 상에 올려놓는다. 일곱 살 먹은 막내동생은 아홉 그릇을 두루 살핀 후 가장 많아 보이는 죽 앞에 앉았다는 일화도 있다. 가장 양이 적었을 동생도 그 죽이 모자랐다.
나는 치마폭에 받아 담은 몇 줌의 쌀을 획 쏟아버리고 동생과 함께 쌀가마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칼, 칼” “바께쓰 가져와” “빨리, 빨리” 여기저기서 고함지르는 소리, 다급한 나머지 부딧치고, 넘어지고 아수라장이었다. 몇 사람은 벌써 질질 쌀가마를 끄고 가고 있는 것이 펏듯 시야에 들어왔다 살아졌다. 우리는 우리의 쌀가마를 싣는데 온 정신이 팔렸다.
여섯 가마니를 실었다. 셋이 이구동성으로 “가자”하고 뛰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기뻤던 순간은 있은 것 같지 않다. 보리죽도 모자라 나중엔 도토리 죽까지 써 먹은 사람들이다. 현관에다 마지막 쌀가마를 부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민군 셋이 땅땅 공중에 총을 쏘며 경학원 마당에 들어섰다. 우리는 공포에 떨고 기쁨에 떨었다. 어찌 되었던 쌀이 우리 집 문지방에 들어왔다.
우리는 아랫 윗이가 다각다각 부딧칠 정도로 공포에 떨면서도, 큰 솥 하나가득히 쌀을 씻어 불을 지폈다. 도토리 죽이 아니라 되직한 쌀밥 먹을 생각을 하며 모두가 가마솥 불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호령호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져간 쌀을 다 내 놓으라는 엄포다. 쌀 세가마를 현관문 밖에 밀어 내놓고, 다른 세 가마는 우리가 방공호라 부르는 마루 밑에 숨겼다. 그리고 사방 문을 꽁꽁 닫아 잠갔다. 땀이 비 오듯 했다. 밥이 되자 모두 부들부들 떨며 먹기 시작했다. 그 밥은 입에서 솔솔 녹아 굶주린 뱃속에 비단같이 포개졌다. 다음 순간이 어찌될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었다. 먹는 욕망이 죽는 공포보다 더 크다는 것은 웃지못할 사실이었다. 밥 한 그릇의 포만감에서 오는 행복감은 그 후 어떤 기쁨에도 비할 바 되지 못했다.
옛 사람들 표현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전 까지는 무슨 과장된 말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이 아니라 바로 이런 지경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맛있을 때 쓰는 그런 때의 말이 아니었고, 허기진 배의 암담한 순간을 두고 한 말이었다. 우리 선조는 벌써 지금 같은 이런 경지를 당해 온 사람들이었다.
인민군은 각 집에서 내놓은 쌀을 몽땅 걷어서 다른 수백가마 쌀과 함께 불 지르고 사라졌고, 패잔병들은 우리 집 옆 창경원 뒷문에서, 머리 다리에 붕대를 감고, 상처가 심한 부상자는 동료병사의 부축을 받으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속에 인민군이 있었다는 것도 우리는 처음 알았다. 태극기를 걸을 뻔 했던 아버지의 다혈질에 어머니의 만류가 없었다면 우리는 일가몰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드디어 마카오지가 탄 노린내와 쌀이 탄 숯내를 뚫고 이상한 모자를 쓴 연합군이 일렬로, 그것도 천천히 경학원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반갑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반가와 하기엔 넉달 동안의 아픔과 희생이 너무나 컸다. 우리 집의 기둥같이 든든하고, 내겐 어느 청년 보담도 잘 생겨 보였던 큰 오빠가 의용군에 나가 없었고, 윗집의 귀중한 외아들이 대학교 봉사대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 길목 입구의 “장생여관”주인은 그 이름과는 반대로 장생하지 못하고 죽었다. 수백 년 묵은 경학원 마당 오동나무 밑에서 인민재판을 받고 총살당해 죽었다. 이맛박 한가운데 총을 맞고 피를 수평으로 분수 같이 뿜으며 죽었다. 일곱 살 먹은 막내 동생은 그 현장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밤마다 “장생여관주인 나온다” 하며 헛떴다. 말로만 들어왔던 인민재판이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어서 내 동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어떻게 그것을 믿었을까.
그런 속에서 아버지와 둘째오빠와 남동생은 살아남았지만, 우리는 잃은 양 한 마리가 어쩌면 그리도 크고 소중했을까. 어머니와 나는 맥을 놓고 연합군을 쳐다보며 속에서 복받치는 슬픔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경학원 마당에 누가 들어섰건 귀중한 사람이 없는 이 세상은 반가운 것이 없었다. 내 피붙이가 북에 가담한 사람은 북이 이기기를 바랐을 것이고, 피붙이를 국군으로 보낸 사람은 연합군을 얼마나 반갑게 맞이했겠는가. 이북에 가족을 납치당한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도 좋으니 한 나라가 되어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이다. 궁극에는 사상도 이념도 아니다. 먼저 핏줄이 앞선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그때나 이때나 여전히 안타깝다. 지금 겪고 있는 이 현실, 쌀이 없어서 굶는 이북동포나, 일터를 쫓기어 방황하는 우리 한국국민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때같이 잿더미 위는 아니어도, 그리고 또 고층건물이 찬란히 솟아 있어도 절망된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다르겠는가.
몸둥아리에 가리개 하나만 차고, 다 빠진 이빨로 환하게 웃고 있는 오지의 나인(裸人)을 화면에서 본다. 무일푼의 행복과 억만장자의 행복이 얼마나 다를까 하고 생각한다.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가리개 하나로도 나인은 행복하지 않은가. 천년을 먹고 발라도 다 못 쓸 돈을 치부해 감옥에 가고, 인민은 다 죽어도 싸울 대포만 더 갖고 싶은 미련한 사람들- 인간은 욕망이라는 괴물이다.
그러나 한줌의 쌀이 얼마나 귀중했던가를 절감했던 그 당시를 일깨우며, 최소한의 것으로도 기쁘게 살려는 마음으로 또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암담했던 때를 어제 일같이 기억하는 나는 내 나라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불꽃 보듯 확실하고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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