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소리<토요연재5>

2009.05.01 16:29

김영강 조회 수:55 추천:2

   아버지로부터 미국유학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진 후에도 이민우의 태도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감정이 현실에 따라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아버지께 불려가 불벼락을 맞았다면 그의 자존심이 땅바닥에 내팽개쳐 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그처럼 냉랭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미국에 온 후로, 그에게서는 완전 연락 두절이었다. 같은 학교에 유학을 오면서도 어쩌면 내게는 한 마디 상의가 없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의는커녕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 것조차도 내게는 비밀로 한 것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식을 알리면 내가 너무 신경을 쓸 것이 뻔해 나를 위해서였다고. 그리고 공부 외에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도무지 모르는 나이기 때문에 상의 같은 것을 할 상대가 못 된다는 것이었다. 온실 속의 연약한 화초가 바깥 세상을 어찌 알겠냐고.

   어쨌든 우린 다시 만나 새로 시작을 했지만 역시 미래는 불투명했고, 강미경이 등장을 한 후부터는 캄캄한 터널이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대학원까지 졸업을 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똑똑하고 예쁜 여자, 같은 여자가 보아도 어딘가에 끌리는 매력을 가진 강미경, 그리고 그녀는 부잣집 딸이었다. 나하고는 도저히 게임이 안 되는 상대였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내 형편은 뛰어도 뛰어도 넘어야 할 험난한 고개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강미경은 확 뚫린 고속도로를 승용차를 타고 달리고 있었으니, 이민우는 그녀의 옆자리에 타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단 시일에 목적지에 닿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민우를 사랑했다.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그가 떠날 즈음에야 더 절실히 깨달았다. 그로부터 전해오는 싸늘한 냉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초조한 가슴을 안고 전화를 기다렸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그의 그림자라도 찾으려고 학교의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살피고 다녔었다. 약속시간이 지나 한 시간씩 기다리기는 보통이었고, 그가 나타나면 화를 내기는커녕 그냥 반갑기만 했다. 그는 항상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그는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거대란 푸른 나무였다. 그리고 그 푸른 나무는 내 맘속에서 늘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뇌에서는 분명히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장에 켜진 빨간 신호등이 그대로 멈추어 선 채, 내 인생은 비를 맞고 있었다. 몇 남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이파리들이 후득후득 떨어지고 있는 교정의 구석진 모퉁이를 돌며, 그리고 수북이 쌓인 바짝 마른 나뭇잎을 밟으면서, 나는 나의 숙명을 보는 듯해 눈물을 흘렸다.

   그가 강미경에게로 가버린 후, 참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초라한 방에서 허리를 꺾고 통곡을 했다. 고아가 되어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것을 실감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행여 누구에게라도 들킬까봐 라디오의 볼륨을 아주 작게 낮춘 것처럼 숨을 죽여 울었다. 뭔가 억울하고 분하고 비참하고 슬프고 괴로워서 울고 또 울었다. 길을 가다가도 그냥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밤마다 시커먼 돌덩이 하나를 삼킨 듯한 무거움에 가슴이 짓눌려 나는 신음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막막해서 창문의 커튼조차도 젖히기가 두려웠고, 숨을 쉴 때마다 바늘로 속을 긁어내는 듯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작은 바람에도 부들거리는 갸날픈 가지처럼 온몸을 떨면서 울었다. ‘엄마, 엄마.’ 하고 어머니를 부르며 울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차올라 사진틀 속에서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흐느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이럴 때 어머니가 곁에 있기만 해도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였고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떠올리며 또 울었다. “아버지, 아버지 말이 다 맞았어요. 이민우가 나를 버렸어요. 그는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어요.” 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민우 때문에 흘린 눈물, 그것은 분명히 그리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리워서 울었다. 퇴색되어 갈 줄 알았던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더 짙어졌고, 가슴이 저미게 보고 싶어 어떤 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신기한 인생이지만 내 20대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을 치리라고는 참말로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이민우마저 떠나고 나니 부모의 자리가 내게는 우주였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부모가 떠난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내 인생만 생각했지 그들의 인생은 염두에도 없었고 내가 부모님께 해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어 뼈저린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바보스럽게도 나는 가끔, 그가 ‘미안해’ 하고 내게 도로 돌아올 것 같아 침묵하는 전화통에 매달려 있다가 벨 소리가 나면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곤 했다. 그러나 그는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바짓가랑이에 매어있는 내 옷고름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강미경과 결혼을 했다. 온실 속의 연약한 화초라고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그는 나를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들판에 내동댕이를 처버린 것이다.

   신이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 남녀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사랑하면 그 상대방도 전기에 감전되어 자연히 서로 같이 사랑하게 되도록 할 것이지, 왜 나처럼 이렇게 고통받는 한쪽만의 사랑을 창조해 냈을까? 그 한쪽 사랑의 창조는 실수라고 억지를 쓰면서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나와 이민우를 갈아놓았어요. 교회에 안 나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예요. 책임지세요. 하나님이 책임지세요.

   사실, 내가 교회에 나간 기간은 극히 짧았다. 이민우가 내게서 등을 돌렸을 때, 나도 교회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도 없었고 목사와도 별 안면이 없는 처지였는지라 내가 발길을 끊은 것을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나중에 애경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그들도 교회에 안 나왔으나 결혼식은 어느 미국교회에서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고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보이프렌드 걸프렌드 사이였는데도 이상하게도 우리는 동격이 아니었고 일종의 주종관계 같았다. 그래서 ‘저 바보 같은 건, 내가 언제든지 버려도 괜찮다.’ 라는 사고를 가졌기에 그는 내게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강미경과 결혼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땐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가 나를 버린 것이 나한테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만일 결혼을 했더라도 평생을 주종관계로 내가 가슴을 졸이며 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느 날, 나는 애경에게 말했다.

   “아냐. 차라리 잘 된 일이었어. 언니도 더 살아 보라 그래. 지금은 알콩달콩 재미나게 잘살고 있지만 반드시 눈물 흘리는 날이 올 거야.”

   그들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잘산다고 한 애경의 말이 마음 깊숙이 잠재해 있었던지 그냥 그렇게 말이 나왔다. 애경이 깜짝 놀라 손으로 내 무릎을 치면서 신이나 죽겠다는 듯이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언성을 높였다.

   “어마나 네가 웬 일이니? 악담을 다하고?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네가 어떤 땐 언니랑 너무 닮아 기분이 되게 안 좋았었는데, 이제야 네가 내 친구 같다야.”

   그러고 보니 정말 악담이 돼버렸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언젠가는 이민우 때문에 언니가 꼭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서 한 말이었다.  
          
   소설을 읽은 그 다음날 바로 나는 한국 타운의 책방엘 갔다. 혹시 강미경이 펴낸 책이라도 있나 싶었서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으로 출판된 소설책은 한 권도 없었다. 수필집이나 시집 쪽도 다 훑어보았으나 강미경의 이름은 없었다.  

   언제부터 글을 썼을까? 사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었고, 동생인 애경이한테, 또 나한테도 무슨무슨 책을 읽으라고 권한 적도 있었다. 물론 영어로 된 책이었다. 우리가 미국 주류 사회에 끼이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며, 잡지나 신문도 열심히 읽으라고 강조했었다.

   갑자기 언니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경의 죽음을 캐자는 것은 아니다. 언니를 그냥 한번 보고 싶었다. 주소는 신문사에 연락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언니에 대해서도, 아니 이민우에 대해서도 그간에 소식을 통 모르고 살았다. 그에게 배신을 당한 후, 나는 공부에만 매달려 살았다. 박사 학위를 받았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지금은 반세기 이상을 산 인생길에 접어들었다.

   그들이 결혼을 했다는 엄연한 현실을 실감하면서도 나는 가끔씩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치르는 행사처럼 눈물병은 한참동안이나 내게서 떠나지를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다 귀가를 하고 연구실에 홀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울음이 복받쳤다. 나는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좁은 아파트 방에서는 소리를 죽여 흐느꼈지만 텅 빈 커다란 방, 그 안에 칸칸이 막혀있는 나의 공간에서 나는 통곡했다. 그가 나를 떠난 서러움에 겹쳐 앞길이 막막해서 더 울었다. 사방이 꽉꽉 막혀 있는 내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이제는 그리움에 지쳐, 나 혼자 남겨두고 같이 떠나버린 부모님이 원망스러워 울었다. 통곡 소리가 나의 공간을 넘어 온 연구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 팔을 책상에 고이고 머리를 움켜쥔 채 울고 또 울었다. 울 만큼 다 울었는데도 눈물은 마를 줄을 몰랐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 고개를 들었는데 웬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석양을 등 뒤로 받고 서 있는 그의 모습에 눈이 부셨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막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자는 티슈 박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물리학과 교수인 윌헴 박사였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나는 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몸으로 부딪쳤다면 얼마든지 살길이 있었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울기만한 나 자신이 정말로 바보스러웠다. 그가 나를 절망에서 구해준 것이었다.

   심장에 켜 있던 빨간 신호등이 서서히 파란불로 바뀌면서 내 인생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눈앞을 뿌옇게 가렸던 비안개가 조금씩 조금씩 걷혔다. 몸체에서 떨어져 바짝 말라 최후를 장식했던 나뭇잎이 땅에 묻혀 다시 생명을 전승하고 있었다. 벗은 나목의 가늘디가는 줄기가 긴 겨울의 침묵에서 벗어나 계절의 순환기에 접어들 듯, 나의 삶도 또 하나의 부활인 봄을 맞게 된 것이다.  


   그동안에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이민우의 모양새는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 분명, 어마어마한 호사를 누리며 소설에서 모양 대저택에서 잘살고 있을 것이다. 이민우도 호리호리하고, 깍아놓은 조각 같은 인상을 벗어나 이제는 부와 지위에 이력이 붙어 중후하고 듬직한 모습으로 변했겠지. 강미경 역시 별로 안 늙었을 거야. 아이는 몇이나 나았을까? 그들의 결혼생활은 과연 외면처럼 행복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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