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09.0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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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지음 [-g-alstjstkfkd-j-]마종기 지음
2006년08월31일
규격외 변형판, 158 쪽
ISBN : 89-320-1725-5 03810
6,000 원






책 소개

깊고 투명한 언어에 아로새긴 삶의 켜
“외로움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그리움을 통해 그리움을 깨우는”
마종기 시인 새 시집


따뜻한 서정과 맑은 지성, 담박하고 쉽지만 세련된 언어로 오랜 시작 활동을 해온 마종기 시인의 열한번째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되었다.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이후 4년 만에 묶는 새 시집이다. 그간의 그의 시집 발간이 5~7년 정도의 간극을 두고 이뤄졌던 사실을 상기하면 조금 일찍 찾아온 반가움이겠지만, 2002년에 의사직과 의대 교수직에서 완전히 퇴임한 시인이 시작에만 열의와 열정을 쏟아부었다는 데 생각이 이르면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시집 출간(8월 31일)에 맞춰 마종기 시인 역시 짧은 체류 일정으로 서울에 왔다. 먼 타국에서 써보낸 시가 시인과 함께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여 우리에게 도착한 셈이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마종기는 올해로 등단한 지 47년째 되는 중진 시인이다. 마종기 시인은 오랜 해외 체류에도 불구하고(그의 도미는 1966년이다. 올해로 꼬박 40년을 채운 셈이다.) 『조용한 개선』(1960) 『변경의 꽃』(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1991) 『이슬의 눈』(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등 10권의 시집과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2004) 외에도 몇 편의 산문집을 선보여왔다. 핍진(逼眞)한 언어로 핍진(乏盡)한 우리들 영혼을 따뜻이 보듬고 안정과 자기 침잠의 세계로 이끌어온 마흔일곱 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권 두 권 시집으로 채워진 그의 생의 궤적 역시 어느덧 고희를 두 해 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 이름 석자만 들어도 쉬이 알 수 있는 유명한 문인과 예술가의 아들로, 의사라는 특별한 직업인으로, 고국을 떠나 이억 만리 먼 타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써온 시인으로서의 그의 평범하지 않은 이력은 그의 시를 읽고 해석하는 데 크고 작은 잣대로 작용해왔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오랜 시간 독자들 가까이에서 깊은 울림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지식인 특유의 현학성을 배제한 염결하고 진솔한 삶의 토로, 구체적 생체험에서 길어올린 쉽고 분명한 그러나 담백하고 아름다운 시어, 애써 벗으려 하지 않은 유랑 의식에서 발현된 삶과 죽음의 고독한 이치 등으로 집약된다. “내 시가 내 안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내가 책임지고 내가 울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마종기 깊이 읽기』, 정과리와의 대담 中)는 시인의 고백처럼, 그에게 있어 시가 진정한 힘, 삶의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힘이자, 생의 무한한 원천으로서의 힘이었듯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독자에게 전해지는 기운 또한 그러했다는 이야기다. 혹은 평생을 의사로 지내오면서 인간의 육체적 조건(살과 피, 죽음)과 항상 가깝게 어울려 살아왔기에 역으로 생명(의 따스함)과 사랑(의 열정과 희열)을 좇았던 시인의 어찌할 수 없는 기움이 독자에게 전이됐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3부로 나뉘어 총 54편의 시를 담고 있는 이번 시집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젊고 감수성 예민한 의학도의 음성이 담긴 초기시들, 도미한 이국 땅에서 의사와 시인으로서의 한 생애를 과유불급의 자세로 관조해온 시들로 굳이 분류해본다면, 이제 온전히 시인의 자리로 돌아와 나름 생의 큰 변화를 또 한번 겪은 그의 지난 4년의 시간이 점점이 찍힌 시편들을 이번 시집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뒤안길로 접어든 중진 시인(고희를 눈앞에 둔, 시력으로나 연배로나 마종기 시인은 황동규나 정현종, 오규원 시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정작 그와 마주하면 아직 청년의 기운을 품은 ‘푸른’ 시인임을 확인케 된다)에게 있을 법한 예의 달관, 쓸쓸함의 정조만을 보리라 섣불리 예단하면 안 된다. 한쪽에는 “집 없는 노후의 새”(「새에 대한 명상」)로, “이름 모를”(「풍경화」) “둥치에 깊은 상처를 가진 나무”(「상처 4」)로 깊은 자성(自省)의 산물인 뼈아픈 자화상에 해당하는 시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일상의 굴레를 벗고 가벼워진 그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숨쉬는/ 신선하고 정결한 단어”(「귀향」)를 찾아 낚싯줄을 드리우고, “자꾸 내 잠을 깨우는” 노을 속으로 “내 몸 안에 사는 방랑자”(「캄보디아 저녁 1」)가 되어 떠도는 시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발 아래 따뜻한 서정의 눈으로 새롭게 그려지는 서울의 한귀퉁이, 남해와 다도해의 끝, 베트남, 네팔, 몬태나 평원, 알래스카, 포르투갈의 정경이 우리 앞에 다가온다.

고통, 회한, 고독, 쓸쓸함과 공존하는―애써 품고보고픈―시적 아름다움과 삶의 이상이 그의 시에는 여전하다. 하여 이 시집은 우리가 겉으론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된 것처럼 연기하지만, “아직(혹은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있는”(「이름 부르기」) 세상에 발딛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만든다.


그러니 살아온 평생은 운명일밖에.
눈을 뜬 육신의 마주침도 팔자일밖에.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이 가늠되지 않는
야 정말, 아득한 것만 살아남는 이 가을,
어렵게 살아온 천지간의 이 가을. ―「가을, 아득한」 부분


세상에는 팔팔하던 몸이 죽어 겨우 검은 점 하나로 남는 생명이 많다. 나도 그럴까. 그러니 함부로 슬퍼하지도 울지도 말 것. 눈물 한 방울에 시신이 완전히 씻길 수도 있다. 한 슬픈 감정이 남을 씻어 없애기도 한다. 저 함부로 내뱉는 슬픔의 잔인성, 저 함부로 내뱉는 외로움의 음흉스러움, 저 함부로 내뱉는…… ―「검은 점의 장례」 부분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요,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꿈꾸는 당신」 부분


내 몸 하나 던지기.
던진 몸들 발 앞에 쌓여
앞산이 한 발작쯤
물러설 때까지.
아니면 뒷산이 목을 돌려
뒤돌아볼 때까지.
아득한 맥박을 깨워
내 몸 하나 더……. ―「시쓰기」 부분


■ 시집 해설(문학평론가 권혁웅), 「너무 먼 이쪽」에서
너무 먼 저쪽이 이쪽의 좌표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한 시절은 돌이키지 않는 지금의 원형이 되고, 그래서 마침내 불행은 행복의 전제가 된다. 그것은 아주 여린 강인함이다. 한 줌의 온기로 한겨울을 견뎌내는 이의 간절함이 거기에 있다. [……] 바오밥은 무시무시한 고독과 슬픔을 견디고 자란 나무이며, 수많은 상처를 받아낸 나무이며, 긴 세월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마저 끌어안은 나무이며, 그 모든 ‘너무 먼 이쪽’의 삶을 추억으로 바꾸어낸 나무이며, 마침내 “귀환의 낮과 밤을” 비추는 나무다. 이 나무에 자신을 빗대면서, 드디어 시인은 지나온 모든 세월과 떨어져 살았던 모든 거리와 죽음으로 잃었던 모든 이들을 끌어안는다. 끌어안고 귀환한다, 저 붙박인 나무처럼, ‘제자리’에 서서.

■ 시인의 말
지난번 시집 발간 이후, 만 4년간 쓰고 발표한 시들을 여기에 묶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시집을 만든 것은 내게 처음이지만, 아마도 의사 생활에서 은퇴한 후 내 게으름을 은폐하고 싶었던 무의식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모아놓은 시들을 다시 읽어보니 비틀거리고 억지스러운 시가 많은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든다. 그러나 아쉬운 것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이런 것이 내게 오히려 자극이 되어 하찮은 것도 다시 유심히 볼 수 있는 나머지 날들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뒤표지-시인의 산문 中
그렇다. 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 함부로 총 쏴 사람을 죽이는 자, 표정도 없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꽃과 나비에 대한 시를 읽고 눈물 흘리겠는가, 노을이 아름다워 목적지 없는 여행에 나서겠는가.
시인이 모든 사람의 위에 선다는 말이 아니다. 시가 위에 선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자주 시를 읽어 넋 놓고 꿈꾸는 자가 되어 자연과 인연을 노래하며 즐기는 고결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지껏 성심을 다해 시를 써왔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적 성공과 능률만 계산하는 인간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겨우 한 번 사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꿈꾸는 자만이 자아(自我)를 온전히 가진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 및 역자소개

마종기
시인 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조용한 개선』(1960),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1991), 『이슬의 눈』(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등의 시집과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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