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8.11.08 04:28

한길수 조회 수: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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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아홉번째 시집. 시인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소재들을 뛰어난 감성으로 노래하며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버린 기억들을 호명하고 있다. 특히 음식을 통해 편안하고 따뜻했던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는 고운 마음의 세계를 고스란히 살려내었다.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밥을 짓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잔잔히 마음의 양식을 만드는 시인의 시들은 그리움을 전달받은 독자들의 가슴을 배불려준다.


저 :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같은해 전북 이리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첫 번째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출간하였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지 5년만에 복직되었으며, 1996년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 전업작가가 되었다. 2004년 이후에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전임강사로 재직중이다.

안도현 시인은 맑은 시심을 바탕으로 낭만적 정서를 뛰어난 현실감으로 포착해온 시인이다. 그의 시는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곤궁한 삶의 현장의 비애를 담아냈던 시인은 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직접적인 현실 묘사에 한발 거리를 두면서 자연과 소박한 삶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시인 권혁웅은 안도현의 시에서 삶과 사랑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밝히면서 “성근 것, 비어 있는 것, 그늘을 드리운 것, 나란히 선 것 들이 모두 사랑의 아이콘”이며 이것들은 “넓은 것, 휑하니 뚫린 것, 쭉쭉 뻗어 있는 것들 사이에 끼어들어 숨구멍을 만들어놓는다”고 평했다. 황동규 시인은 “안도현은 불화 속에서도 화해의 틈새를 찾아낸다”고 말하면서 “적막에 간절한 모습을 주고 산불이 쓸고 간 폐허의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에서 숲의 원구조를 찾는 것”이 바로 화해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1981년「낙동강」으로 등단한 후, 가혹한 시대의 현실과 민중적 정서를 그린 초기시부터 낭만적 정서와 유려한 시의 질감을 보여준 안도현 시인은『그리운 여우』이후, 소담스러운 언어 미학과 삶의 소박한 풍경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선보여 왔다. 언제나 작은 것에 대한 각별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던 안도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라는 시집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한 섬세한 발견의 기쁨과 그것을 통한 삶의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생뚱맞고도 능청스러운 입담을 통하여 질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인이란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자의 운명을 지닌 존재임을 은연중에 역설하면서, 낡은 배를 산으로 데려가기 위해 20년 간 끙끙대며 시를 써왔고, 배를 뭍에 올리자 배도 바다도 모두 환해졌으며, 배를 밀고 국도와 보리밭으로 갈 때 그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귓구멍이 뻥 뚫리도록 뱃고동을 울려주"겠다는 말을 통해 자신의 시가 퇴행이나 도피와는 다른, 무한한 꿈의 과정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어』는 시인 안도현의 섬세한 시적 감수성이 산문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작품이다. 연어의 모천회귀라는 존재 방식에 따른 성장의 고통과 아프고 간절한 사랑을 시인은 깊은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은빛연어' 한 마리가 동료들과 함께 머나먼 모천 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누나연어를 여의고 '눈맑은연어'와 사랑에 빠지고 폭포를 거슬러오르며 성장해가는 내용의 <연어>는 숨지기 직전 산란과 수정을 마치는 연어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운명이 시적이고 따뜻한 문체 속에 들어있다.

또다른 저서로는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리운 여우』『바닷가 우체국』『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관계』『사진첩』『짜장면』『증기기관차 미카』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사람』이 있다. 2002년 『만복이는 풀잎이다』를 시작으로 그림동화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 뿐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를 내고 있으며, 소월시문학상, 원광문학상, 모악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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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공양
가을의 소원
독거
월식
세상의 모든 여인숙
명자꽃
빗소리
기차
고니의 시작(詩作)
공부
사라진 똥
탁족도(濯足圖)
곡비
고양이뼈 한 마리
조문(弔文)
기러기 알
구절초의 북쪽
목판화

제2부
수제비
무말랭이
북방(北方)
물외냉국
닭개장
갱죽
안동식혜
진흙메기
건진국수
예천 태평추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염소 한 마리
스며드는 것
무밥
콩밭짓거리
민어회
물메기탕
병어회와 깻잎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전어속젓
눈 많이 온 날
매생이국

제3부
백석(白石) 생각
허기
산가(山家) 1
산가(山家) 2
수련
응답
금낭화
둥근 방
칡꽃
나비의 눈
곡선들
겨울 삽화
오래된 발자국
쇄빙선
눈길
숭어
식구
물 건너는 자작나무
검은 리본

발문|박형준
시인의 말


• 출판사 리뷰
잊었던 추억과 풍경들로 차려낸 따스한 시의 밥상!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안도현 시인이 아홉번째 신작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출간했다. 지난 2004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펴낸 이후 4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소재들을 뛰어난 감성으로 노래하며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버린 추억과 풍경들을 되살려낸다.
특히 먹거리(음식)라는 소재를 끌어와 아름다운 추억의 향기로 가득 채운 2부의 시편들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이 시들은 음식을 통해 편안하고 따뜻했던 옛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며 기리는 고운 마음의 세계를 고스란히 살려낸다. 살림의 매개가 되는 다양한 음식들은 저마다 풍요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끊임없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현대의 속도전과 사뭇 거리가 먼 느리고 여유로운 행보를 생각게 한다. 시인은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밥을 짓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잔잔히 마음의 양식을 만든다. 그리고 다양한 음식의 추억과 이야기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오래전에 상실했던 시간들을 되찾게 한다.

이 세계를 복원하고 공동체험을 환기시키는 시의 힘
이번 시집의 특장은 박형준 시인의 면밀한 분석과 애정이 담긴 발문 「구름과 길과 기억을 버무린 음식의 시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안도현 시인은 이 집단, 저 집단, 그 집단의 철학이 아닌, 이 땅의 말씀을 시로 펼친다. 그래서 물과 바다가 우리와 형제지간이며, 우리가 할일은 현대문명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되돌아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아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고 그 느낌과 생각을 선언적으로 강조하거나 극적인 구성으로 부풀리지도 않는다. 그저 고요하고 잔잔하게 어루만져 끝내 따스해지도록 만들 뿐이다. 손맛으로 밥상을 풍요롭게 일구었던 어머니, 그 밥상에 곡물을 대던 아버지처럼 말이다.
시인은 한 대담에서 자신이 음식시편을 쓴 내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음식이라는 것은 기본은 미각이지만 음식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이 필요하고, 후각도 필요하죠. 음식을 씹을 때는 청각도 필요합니다. 모든 감각의 총결집체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욕망이 한데 엉켜 있지요.”(『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7년 11·12월호) 시인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 음식은 기억과 관계가 있다.
유년시절의 훼손되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은 음식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렇게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망각하고 있던 추억과 사람에 대한 새로운 환기를 이끌어내는 힘, 그것이 이번 안도현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인의 독특한 시선과 깊은 몽상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각자의 체험이 얼마나 유사한지, 혹은 공동체험이라 부를 수 있는 경이로운 지대가 존재할 수 있음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이다.

추억이 담긴 음식은 잘못된 지구화시대를 향한 아름다운 저항
오늘날 세계에서 초강대국의 경제 전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식욕이 굴지의 거대기업이 생산한 농산물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녹색혁명이라는 허울 좋은 수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안다. 유전자조작곡물로 전 세계의 밥상을 거머쥐려 하고,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으로 현대인을 속도전으로 내몬다. 우리가 손끝으로 눈길로 혀로 천천히 음미하는 먹을거리들은 기계화된 농업국가의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런 거창한 정세의 변화에 시인은 반응한다. 하지만 그 반응이 한낱 구호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그가 좀더 뿌리 깊고 은근한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음식시편을 구사한 대표적인 시인은 백석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북의 음식을 시 안에 차려낸 백석에 호응하는, 남쪽 음식을 아름답고 뛰어난 시로 일궈낸 안도현이라는 시인을 얻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도현의 음식시편은 매우 래디컬한 정신에 더듬이를 대고 있다. 오래전 백석의 시세계가 그러했듯이 안도현 역시 가장 전통적인 정서의 표출을 가장하여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진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진단은 의사의 것처럼 단정적이지 않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사랑하는 마음의 함양과 추억으로의 회귀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드높임과 파고듦에는 사람에게 갖는 무한한 신뢰가 배어 있다. 상대를 믿지 못해서 생기는 다변이 없이 오래 묵은 장맛처럼 그의 시는 천천히 깊게 여운을 남기며 퍼진다. 그리고 편안함을 준다. 이 편안함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인이 부릅뜬 눈으로 지새웠을 밤들을 생각하거나, 그가 지켜보고 있었을 시간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특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빗소리에 비벼지는 밥 짓는 연기, 시인은 밥 끓는 냄새에서 모두들 먹여살리는 공경심을 느끼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마저 궁금해한다. 인간이 모든 것을 움직이고 다스릴 수 있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인간이 살려면 인간에게 희생하는 것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모든 것이 서로를 돕고 아름답게 연대되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편안히 읽어가다 어느새 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시편들
실감나게 입 안에 감기는 맛을 선사하는 음식시편 외에도 시인은 잊었던 첫사랑(「명자꽃」)이나 사물과 자연의 여백과 향기(「공양」「칡꽃」), 허공의 깊이(「나비의 눈」), 길과 삶에 대한 깊은 사유(「조성오 할아버지」) 등을 아련한 울림으로 형상화해낸다. 그가 호명해내는 추억들을 따라 읽다보면 시집제목처럼 ‘간절하게 참 철없이’(「예천 태평추」) 그리워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아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금 음미할 수 있다. 안도현의 시를 통해 우리는 나직이 내면으로 스며드는 회복과 치유의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이 안도현의 작품은 즐겨 찾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는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추억의 시간여행을 떠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든 시인은 독자들을 태우고 말을 몰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보았던 세상과 추억 속으로 이끌어간다. 그 여행에서 독자는 단순한 추억의 기록이 아닌 삶의 주름을 어루만지게 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 선보인 작품들이 주는 편안함은 손쉬운 화해의 몸짓이 아니다. 섣불리 삶의 깨달음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거기엔 삶과 인간사의 근원적인 물음과 대답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미 사라져 없거나 죽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 기억과 풍경, 그리고 음식에 담긴 혼을 불러내고 부활시킴으로써 현대인들이 진정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따스하고 편안한 시세계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한편, 밀도높은 완성도로 말미암아 당대의 한국시사의 한 획을 긋는다고 평가될 만하다. 시인은 수준 높은 시적 경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시를 집어든 사람까지도 깊은 시적 세계로 자연스레 빠져들게 하는 흔치 않는 장인적 솜씨를 보여준다.

추천평
안도현 시인이 ‘구름의 독거’ (「독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빈 술잔은 채워주고 불쑥 떠나는 것들에겐 자기 살을 덜어주고 그러다 덜컥, 달라 하지도 않은 숨결이며 노래며 심장 속 눈빛까지 다 내어주게 되는 일을 시인 역시 마다하지 않기 때문. ‘곡진함’이라는 말이 아직도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면 드물게 남은 이러한 시의 마음 앞일 것이니. 안 보이는 곳까지 사무치게 바라보는 이 지독한 마음의 병이 시업(詩業)이라면, 병든 자리 참 좋다. ‘길을 달려왔으나 정작 길을 데리고 오지는 못하였다는 자책이 물소리가 되어 발목을 묶는’(「탁족도)) 이런 풍경을 시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얻어 우리가 물속 깊이 젖을까. 잊었던, 혹은 잃었던 풍경들을 섬세하게 복원하며 시인이 읊조리는 노래들엔 감각의 깊이가 내장된 안 보이는 풍경들 가득하다. 무 명태 오이 갱죽 간장게장 시락국…… 별별 소소한 풍경들이 차곡차곡 쟁여진 시의 밥상 앞에서 한참을 놀다보니 ‘눈맛’ ‘손맛’ ‘입맛’이 모두 새로워진다. 추억이라고 믿었던 추억까지도 새로워진다. 햐! 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즐거움을 얻을까. ㅡ 김선우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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