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9 10:55

가을, 그 낭만의 징검다리
홍인숙 (Grace)
아침 출근길이었다.
무엇인가 파르르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그 미동(微動)이 아기 잠자리 같기도 하고
철 이른 가랑잎 같기도 했다.
조심스레 차에 올라 백 미러를 보니
어느새 노랗게 익은 가로수 잎새 하나가
작은 왕관처럼 머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가을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긴 여름 황홀한 자태를 잃지 않던 꽃들과
풀잎마다 초록을 머금던 무성한 숲들이
어느 날 일제히 잎을 내리고
여윈 몸 가득, 하얀 눈가루를 덮고 웅크리고 있다면
그 황당함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고사리 손가락 같던 봄 햇살에서
태양의 일렁임이 충만했던 여름이 막바지로 들어서기 전
나는 서둘러 가을을 준비했어야 했다.
지는 꽃과, 허전한 바람, 타지도 못하는 저녁놀,
내 곁을 떠나는 정든 사람의 몸짓에도
가을이라는 이름을 안고 성숙해져야 했다.
가을은 헤어짐이 아름답도록 준비된 자연의 질서이며
'허무'라는 단어가 얼마나 낭만적인지 가르쳐주는
향기로운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 가을에 또 얼마나 많은 시인이 태어나고
얼마나 많은 쓸쓸함이 그들의 가슴속을
십자수 놓듯 촘촘한 그리움으로 영글어 들것인가.
무수히 반복되는 여름과 겨울,
그 상반(相反)의 계절을 이어주는 낭만의 징검다리를
살며시 딛고 선 아침에
백 미러 속에는 노란 잎새 하나 왕관처럼 쓴
철없는 여자의 눈망울이 스쳐 가는 가을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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