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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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7.01.12 03:52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조회 수 340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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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시대> 기획연재 / 미국에서 쓰는 한국문학 (5)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홍인숙(Grace)

 

   내게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게 가장 불행했을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그 또한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나보면 행복했을 때나 불행했을 때나 그 모든 순간이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남아있는데.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삶은 흐르는 것. 살다 보니 절체절명의 순간도 어떻게 그 암울한 터널을 지나왔나 스스로 대견스레 생각하게 되었고, 힘든 시간을 지날 때마다 내 키도 훌쩍 자라 평범한 일상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상열 시인의 시 ‘새해 소망’에는 ‘새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게 하소서’라는 시구가 있다. 대다수의 사람이 무의식중에도 수없이 움직이는 열 손가락을 그것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만이라도 움직이게 해달라니.... 시인이자 구족화가인 그의 소망 앞에 열 손가락의 건강함에 감사함을 모르고 지낸 날들이 부끄럽기만 하다.

  모자를 사러 다닌 적이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따뜻해서 모자 파는 곳이 많지 않다. 며칠을 예쁘고 마음에 드는 모자를 사러 다니다 쇼핑센터도 아닌 거리 한 곳에서 유난히 모자가 많이 진열된 가게를 보게 되었다.

  모자와 가발 전문점이었다. 나이 지긋한 백인 점원은 친절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모자를 찾기 위해 거울을 보고 이것저것 써보기도 하며 예쁜 모자를 고르고 있었다. 여인들이 하나, 둘 가게로 들어왔다. 젊거나, 학생으로 보이는 그들을 본 순간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곳은 암 환자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그녀들은 방사능 치료와 화학요법의 결과로 아름답고 무성했던 머리카락을 모두 잃었지만 밝은 모습으로 모자를 사러 왔고, 나는 무성한 머리카락에 더 모양을 부린다고 모자를 고르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만난 우리지만 필요의 조건이 너무나도 달랐다. 백인 점원이 왜 내게 그렇게 친절했는지 금방 이해가 갔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사치스런 욕심을 부렸나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 망각의 능력이라고 했다. 나 역시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지난날이 잊혀졌지만 남들에게는 사소한 일이 내게는 오래도록 절실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좋은 나이었던 삼십 대에 나는 집 마당의 잔디를 밟아보는 게 큰 소망이었다.
조금만 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으면, 조금만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었으면,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창문으로만 바라보며 나도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으면..하는 안타까운 바램을 매일같이 안고 살았다.

  몇 번의 수술 때마다 척추 마취를 한 것이 문제였다, 의료보험이 비싸고, 간병인이란 제도 없이 수술 후 응급상황만 넘기면 곧바로 퇴원시키는 미국 병원의 시스템도 문제였다. 이민와서 돌봐줄 사람 한 사람도 없었던 나는 수술 때마다 퇴원 후 안정을 못 하고 움직이다 보니 제대로 몸 보호를 못 한 것의 후유증이 컸는지 늘 허리 통증으로 시달렸다. 수년을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던 그 당시 나의 정신세계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온통 나의 불행으로만 집중되어 있었다. 긴 암흑 속에서 하면 안 될 생각까지 하였지만, 지금은 그 때의 불행을 잊고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지금도 남들처럼 허리가 튼튼하지는 않지만 조심만 하면 별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다. 한창 젊었던 날의 고통이 내게 일찌감치 부터 가치관의 변화를 안겨주었다. 물질의 욕심에서부터 해방, 이해타산 없는 인관관계의 너그러움, 여러 가지로 느슨하게 사는 편안한 삶의 방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특별한 욕심 없이 살다보니 비록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나름대로 자족감도 있어 후회는 없다. 오히려 전보다 매사에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감각적이 아닌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며칠 전, 오십대 초반의 여인을 만났다. 내가 알기로는 직장도 든든하고, 영어권에, 활기찬 여인이었다. 그녀는 뜻밖의 힘든 이야기를 꺼냈다.
이혼을 하고, 아이들은 자리를 못 잡은 채 뿔뿔이 흩어져 살고, 그나마 의지했던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혼자 사는 집에 이야기할 상대라곤 강아지밖에 없다며 무척 외로워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정신적으로나, 건강적으로나 문제가 많은데 주위의 몇 사람으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까지 겹쳐 무척이나 힘들다고 호소했다.
자존심에 오랜 시간 혼자서 그 고통을 견디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나서 스스로 일어나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교회도 다시 다닌다고 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섣부른 감정이입이 오히려 상처를 주거나 더욱 외롭게 할지 몰라 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간간이 그저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일, 그 일을 헤쳐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긍정적인 에너지만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영어에 ‘위기는 기회’(crisis is chance)라는 말이 있다. 비록 오늘이 불행하더라도 그 오늘이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오늘을 보낼 것인가.

  발상의 전환만 있으면 우린 얼마든지 고통을 승화시킬 수 있다. 불행에 집착하다 보면 그 불행에 사로잡혀 불행의 끝까지 매달려가는 형국이 된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지난날의 후회에 사로잡혀 미래로 향하는 소중한 순간까지 저당 잡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이 일을 겪으므로 내게 어떤 교훈이 될 것인가 깊게 생각하고 나를 돌이켜보면, 그 또한 좋은 자양분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힘들었던 순간을 보상받고, 그로 인해 더 나은 미래를 갖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경험상으로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각각 그릇의 크기가 다르듯이 행복을 느끼는데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모든, 행복에 대한, 물질에 대한, 자녀에 대한...이러한 욕구의 기대치가 높을수록 행복은 한없이 멀어지기만 한다. 행복의 기대치를 두어 눈금만 내려놓아도 훨씬 가볍고, 만족도가 높은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닉 부이치치’, 그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과 양다리가 없는 신체장애인이지만 각종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전문분야에 학위까지 갖고 있다. 그뿐인가. 그러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삶을 증거하며 온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강연을 다닌다. 그를 생각하면 나는 어떠한 상황에도 불평을 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삼십 대 가장 청청했을 시절에 고단한 이민생활과 오랜 병치레로 힘든 시련을 딛고 지금의 난 너무도 많은 것을 가졌다. 멀쩡한 온몸과, 무의식중에도 열심히 움직이는 열 손가락과 이만큼 나이 들었어도 스타일을 바꿔가며 모양을 낼 수 있는 무성한 머리카락도 있다. 넉넉하진 않아도 궁색하지 않게 살 수 있고, 함께 기대어 갈 가족도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누가 내게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아마도 거의 나의 삶이 행복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백지장 한 장 차이, 앞뒤의 연결고리, 이란성 쌍둥이가 아닌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볼 때 지금의 나의 행복이 지난 불행의 순간까지 모두 보듬어 안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졌다 해도 지속적으로 지키기는 쉽지 않다. 나는 책상 정면에 [좋은 생각은 좋은 미래,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좌우명을 붙여놓고 늘 마주하고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긍정적인 사고로 남은 날을 보람있게 살도록 노력하고 싶다.

  창문을 활짝 연다. 거리 가득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고 힘차다. 정든 친구와 담소도 나누고 싶고, 베토벤의 ‘로망스’가 아름답게 흐르는 카페에 앉아 글도 쓰고 싶다. 오랜만에 들어온 한국영화 상영관에도 가고 싶고, 드넓은 하늘가 갈매기의 비상이 평화로운 바다로 훌쩍 떠나고도 싶다. 일상의 작은 부분일지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찾아 누리며 살다 보면 삶이 한결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수필시대> 통권 70호  9/1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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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uck 2017.01.1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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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uck 2017.01.17 11:09

    좋은 시 감상에  Net로 공유하는 이 기쁨


    



    비오는 날 / 천양희 

    잠실 롯데백화점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괴테를 생각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그토록 사랑한 롯데가 
    백화점이 되어 있다. 
    그 백화점에서 바겐세일하는 실크옷 한벌을 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의 승용차 소나타Ⅲ를 타면서 
    문득 베토벤을 생각한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3악장을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소나타가 
    자동차가 되어 있다. 
    그 자동차로 강변을 달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은 여자 
    고흐의 그림 '슬픔'을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슬픔'이 
    어느새 내 슬픔이 되어 있다 
    그 슬픔으로 하루를 견뎠다 
    비가 오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embed/q6L2MyUy5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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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인숙(Grace) 2017.01.19 10:21

    비 오는 날 좋은 시와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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