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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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에세이
2003.12.26 10:26

만남과 마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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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마주침  / 홍인숙 (Grace)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의미가)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깊은 생각을 심어준다. 이제까지 하나의 몸짓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관심을 가져주자 비로소 꽃처럼 아름다운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 해도 우리가 관심을 갖고 바라봐 주기 전에는 꽃이 지닌 참 아름다움과 향기를 알 수가 없듯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무관심으로 지나쳤던 사람들도 어느 날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각별히 느껴지고,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평범했던 그의 모습이 신기하리만치 환하게 켜진 등불처럼 내 안으로 들어와 일상의 빛이 되고 각별한 의미가 되어진다. 그리고 그가 내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처럼 나 또한 그에게 소중한 의미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진정한 뜻의 서로에게 다가가는 소중한 "의미"란 무엇일까. 단순히 스치는 시선과 관심 없는 마주침에서도 같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법정 스님은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며,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 것은 만남이 아니라 한 때의 마주침이라고 <만남>과 <마주침>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저마다 좀더 특별한 존재이고자 고집하고, 후세에까지 그 이름을 길이 남기려는 욕심을 부린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공존하며 태어난 의미를 오직 이름 석자 남기는 일에만 급급해한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사회, 가진 자에게는 억지로라도 만나려고 애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필연의 만남조차도 거부하며, 세상에 조급히 자기의 의미를 부각시키려는 욕심들이 점점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개인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해(利害)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진솔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각자의 지닌 의미가 참으로 아름답게 전해지는 것을.. 나의 관점으로만 판단하고 내 의미만 부각시키려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교감하는 만남을 위해서는 올바르게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몇 시간을 안 남기고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다. 하루가 저문다는 것은 그만큼 물리적으로 내가 살아갈 날이 줄어든다는 허무감이 따른다. 하지만 이러한 허무함 뒤에도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의미)들을 안게되는 희망이 있다.

지난해는 내게 특별히 변화가 많았던 해였다. 새로운 만남과 보람된 일, 그 안에서 많은 의미를 안았다. 많은 인연들이 부족한 나를 마주침으로 스쳐가지 않고 내 안에 들어와 환한 불을 켜주고 따습게 마음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 남은 생의 날을 각별한 의미로, 소중한 인연으로, 내 안에 불을 밝혀준 사람들과 또 나의 관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고 싶다. 무심한 마주침이 아니라 영혼이 진동하는 만남의 인연으로 애정을 갖고 바라보며 서로에게 소중한 의미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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