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흐르는 세월이 어디 있으랴 / 홍인숙(Grace)
붙박이장처럼 혼자의 공간에만 집착하다 남편의 팔짱을 끼고 쇼핑을 나섰다. 삼대가 생일이 같으면 길(吉)하다는데, 환갑인 오빠가 팔순 넘은 아버지를 모시고 태평양을 갓 건너온 며느리와 함께 맞이하는 생일은, 삼대로 이어진 세월의 폭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따습게 엮어 지는 날. 세 사람에게로 향한 선물을 안고 바라보는 하늘 가득 평화로운 노을.
“올해도 금방 갈 것 같아” “맞아. 부활절 지나고, 추수감사절 지나면 그다음부턴 금방금방 ...또 한 해가 가는거지” 이제 막 새해 맞아 첫 달밖에 안 됐는데 우린 벌써 한 해의 끝자락을 서성거렸다. 또 다시 안게 될 섬광 같은 세월일지라도 이유 없이 흐르는 세월이 어디 있으랴. 꽃과 바람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더불어 흐르며 사랑을 이어가는 가족이 되는 것을.
(2006년 1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