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슬퍼지는 날 / 홍인숙(그레이스)
새해 맞아 일주일. 86세 생신을 하루 앞두고 쓰러지신 아버지는 천근만근
굳은 바위가 되셨다. 추적추적 겨울비 내리는 아침에 서둘러 병원으로 모
시고 아버지의 빈방에서 한평생 정결하셨던 분이 적셔놓은 이부자리를 정
리하는 손등 위로 숭숭 찬바람이 몰아친다.
주인 없이 돌아가는 텔레비젼에서는 십년세월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아름다
움을 잃지 않던 고국의 젊은 여가수 사망 뉴스가 또 한줄기 거센 빗줄기
로 쏟아져 내린다.
우리 모두 환한 꽃처럼 살다가 어느 한 날, 그 날이 이 세상 마지막 날로
정해진 날이라면, 바로 그날, 자는 듯 한순간에 떠나면 좋으련만. 삶의 등
짐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 뿌리 깊숙이 미지의 세상을 향해 침묵하며 겨울
산자락을 지키는 나목의 의연함이 부럽구나.